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의 첫번째 편지
저에게는 늘 가까이 두고 자주 펼쳐보는 책이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침대 머리맡에 놓여있구요, 짧거나 긴 여행을 떠날 때도 빈 노트와 함께 꼭 챙겨가는 책이예요. 얇고 가벼워 지니고 다니는데 부담이 없는 덕분도 있죠.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어느 페이지를 펼쳐 읽더라도 제게 신중함과 용기를 건네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삶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하거나 쉽게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어려운 고민에 봉착했을 때, 답을 구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곤 했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다정한 편지글 말이죠.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시로 독일어권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꼽히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시인을 꿈꾸는 청년 프란스 크사버 카푸츠가 보낸 고민이 가득한 편지에 대한 릴케의 답장을 엮은 책입니다. 카푸츠는 릴케가 나온 사관학교의 후배로 당시 문학에 대한 동경과 전문직업 사이에서 고민하고, 또 자신의 시작 능력에 대해서도 자신 없어하죠. 그러나 대문호 릴케는 청년의 걱정과 불안을 사려깊게 대합니다. 청년에게 건네는 다정한 조언들은 시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아닌 이들에게도 충분히 와닿아요. 릴케는 좋은 작품을 쓰는 시인이 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지혜롭고 참된 인간이 되어야한다고 말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의 편지는 훌륭한 시를 쓰기 위한 기술적인 조언보다 삶을 위한 중요한 자세와 태도를 더 많이 담고 있습니다. 그의 편지가 보편적으로 읽힐 수 있는 이유인거죠.
당신에겐 단 한 가지 길밖에는 없습니다. 당신의 마음 깊은 곳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가서 당신에게 글을 쓰도록 명하는 그 근거를 캐보십시오. 그 근거가 당신의 심장의 가장 깊은 곳까지 뿌리를 뻗고 있는지 확인해보십시오. 글을 쓸 수 없게 되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이것을 무엇보다 당신이 맞이하는 밤 중 가장 조용한 시간에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글을 꼭 써야하는가?" 깊은 곳에서 나오는 답을 얻으려면 당신의 가슴 깊은 곳으로 파고 들어가십시오. 만약 이에 대한 답이 긍정적으로 나오면, 즉 이 더없이 진지한 질문에 대해 당신이 "나는 써야만 해"라는 강력하고도 짤막한 말로 답할 수 있으면, 당신의 삶을 이 필연성에 의거하여 만들어 가십시오. 당신의 삶은 당신의 정말 무심하고 하찮은 시간까지도 이 같은 열망에 대한 표시요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김재혁 옮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고려대학교출판부, 2006. pp.14
청년의 시작詩作에 대한 조언에서 릴케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기를 요청합니다. '내가 얼마나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인이 아니예요. '내가 이 일을 반드시 해야하는가'라는 필연성과 의지의 확인이죠. 마음 가장 깊은 곳까지 이 질문을 물고 들어가 마지막까지 '해야한다'는 답을 얻게 되었을 때. 릴케는 그곳으로부터 삶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릴케는 '해결사'가 아니라 '안내자'입니다. 훌륭한 지혜와 가르침은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답을 내려야 하는 인생의 지점에서 정답을 대신 내려주지 않습니다. 좋은 답을 구할 수 있도록 그 방법을 알려주는 것 뿐이지요. 요새 치솟는 자기계발서의 인기가 답을 찾기 위한 사람들의 간절함을 대변해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짜 답은 펼친 그 책 어느 구석에 적혀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깊은 마음 속에서 찾아야하는 '나의 목소리'입니다.
내가 이 이상 무슨 말씀을 더 드리겠습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적절하게 다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면, 당신의 모든 성장과 발전을 조용하고도 진지하게 이어나가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자꾸만 바깥세계만을 쳐다보고, 당신의 가장 조용한 시간에 당신의 은밀한 감정을 통해서나 답해질 수 있는 성질의 질문에 대해 외부로부터 답을 얻으려 할 때처럼 당신의 발전에 심각한 해가 되는 것도 없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김재혁 옮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고려대학교출판부, 2006. pp.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