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밤 11시 라이브방송의 행복
매일밤 후줄근한 잠옷을 입고 민낯으로 방송을 하던 제가 오늘은 조금 다르죠?
*참고로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아닌 날들> 매거진 글은 그날의 인스타 라이브방송의 내용을 바탕으로 쓰여집니다. 자세한 배경 설명은 이 매거진의 첫번째와 두번째 글을 읽어주세요!* 네, 오늘은 술자리 약속이 있어서 오랜만에 와인바에 다녀왔구요. 신나게 맛있게 마시고 귀가했습니다. 사실 매일밤 11시에 방송을 시작한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하철역에서부터 뛰어왔어요. 집에 도착하자마자 라방을 틀고 핸드폰 앞에 앉아있어요. 그래서 오늘은 외출복 그대로, 그리 진하지 않지만 나름의 화장도 한 채로 인사드립니다. 하하.
어느덧 8월의 절반이 흘렀습니다. 1일부터 시작한 '매일밤 라방' 공약을 실천한지도 14일이 되었네요. 시간을 확인하고 방송에 늦을까봐 서둘러 달리는 저를 보며 깨달았어요. 제가 생각보다 훨씬 이 약속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요. 누가 강요한 적도 없는 이 약속이 (라방의 단골손님들과 방송을 하지 않을 경우의 벌칙을 얘기한 적 있었지만요) 어쩌다가 이렇게 중요한 규칙이 되었을까요. 곰곰하게 생각해보면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이 약속은 저 자신과의 약속만은 아니었죠. 8월의 'To Do List' 에 올라온 목록 중에 유일하게 공개적인 공약이었으니까요. 저의 라방을 알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건 약속과 다름 없는 셈입니다.
저는 극과 극의 생활패턴을 오가며 살아왔어요. 회사에 다닐 땐 늘 일이 몰려 야근과 주말근무를 밥먹듯 했고, 이직이나 퇴사의 기간에는 온전히 자유의 시간을 만끽하며 살았죠. 그러다보니 외부의 구속이 없는 저만의 시간이 쉽게 해이해지는 경험을 뼈저리게 했습니다. 멋대로의 취침과 기상, 몰아먹는 식사, 생산성 없고 배움도 없는 하루들.. 번아웃을 극복하기 위해 '무능하고 쓸모없는 휴식'은 중요하지만 그게 일상이 되면 오히려 더 큰 우울감이 몰려오기 마련이에요. 나 자신에 대한 회의나 부끄러움이 들기도 하고 계속 이래도 되나 싶은 불안도 스멀스멀 올라오죠. 그래서 저는 그런 위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자유의 시기에도 하루의 규칙들을 만들어 부과하곤 했습니다. 적당한 양의 스트레스는 오히려 자신을 관리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잖아요. 매일 아침 일어나면 5분의 요가를 한다거나 모닝커피는 직접 내리고, 자기 전 30분은 폰을 끄고 침대에서 책을 읽는 식의 소소한 규칙 말이에요. 규칙을 지키는 날들이 반복되면 그것들은 자연스레 습관이 되고, 또 결국은 저라는 사람을 형성하게 되죠.
라방은 이제 제게 그런 의미가 됐어요. 낭비하기 쉬운 여유분의 시간의 한 지점을 핀셋으로 꽉 고정시켜 놓은 규칙이요. 마음대로 펄럭이다가 제멋대로 날아가지 않게 저를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답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매일 이 시간에 함께해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거예요. 매일밤 11시부터 한시간은 제게 신기한 활력소입니다. 단골손님과는 더욱 끈끈해지고 오래동안 연락이 끊겼던 사람과 다시 안부를 묻거나 새로운 친구가 생기기도 하고요. 여러분과의 대화 속에서 늘 배우고 자극받는 부분이 많아요. 이야깃거리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저의 경험과 외부 세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에 대한 생각도 한층 깊이 해나가고 있고요. 마치 매일밤 쓰는 일기처럼 여러분과의 라방이 저의 하루를 반복되면서도 특별한 날로 만들어주는 듯 합니다.
일상의 소중함과 중요함은 제가 줄곧 강조해왔던 거죠.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한 사람을 형성하는 데는 어쩌다가 일어났던 인생의 특별한 사건보다 매일 반복되어 왔던 일상의 형태와 느낌이라고요. 사소한 규칙이나 습관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도 바로 여기있어요. 문득 묻고 싶어집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규칙들로 하루하루를 다듬어가고 있는지요. 그 규칙들은 여러분이 꿈꾸는 미래의 모습과 닮은 구석이 있는 것들인가요? 그 규칙을 지켜나가면서 그게 여러분의 습관이 되었을 때 여러분은 행복할 수 있나요? 만약 이 답에 바로 답할 수가 없다면 여러분은 좋은 규칙을 아직 세우지 못했거나, 혹은 자신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은 규칙을 강요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 오늘은 그 규칙들을 다시 생각하면서 서로에게 알맞은 규칙을 다시 만들어보는 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참고로 저는 지금의 규칙에 감사하며 만족하고 있답니다!
(라방 다음날 브런치 글을 올린다는 약속은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