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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Mar 31. 2017

3월-고향집(1)

백목련과의 재회

남쪽의 봄은 아직 따스하지 않았습니다. 제주도에 착륙하려는 비행기는 돌풍으로 몹시 흔들렸습니다. 가까스로 착륙한 제주의 땅은 흠뻑 젖어있었고, 아직 멎지 않은 빗줄기가 밤하늘에 모로 새겨지고 있었습니다. 이튿날과 그 다음날은 비가 내리지 않았지만 바람은 지나간 비의 서늘함을 머금고 있었습니다. 겨울 니트 위에 입은 트렌치코트가 사나운 바람에 펄럭여도 머리 위의 볕은 따듯하여 마냥 걸어도 좋았습니다. 


제주를 떠나기 전 날 고향집에 찾아갔습니다. 서귀포바다 초입의 작고 아늑한 마을은 어린 시절의 기억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널따란 도로가 새로 깔리고 공항 리무진 버스의 승차장이 세워졌습니다. 항구로 내려가는 해안길은 음식특화거리로 지정되어 횟집과 향토음식점이 덕지덕지 모여있었고요. 바닷길을 따라 소박한 공원이 조성되었고 공원의 둘레를 감싸고 도는 길에는 작가의 산책길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었습니다. 낮은 지붕의 집들은 대부분 헐려 당시에는 찾기 힘들었던 식당이나 카페가 들어서 있었습니다. 흔한 귤나무밭도 보이지 않아 어쩐지 휑한 모양새였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외가 친척들과 함께 살았고, 제주시로 이사를 가서도 주말이나 방학마다 내려와 시간을 보냈던 고향집은 몇 해 전 허물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터에 3층짜리 오피스텔 건물을 올렸습니다. 우리 가족의 겨울을 책임졌던 집 앞마당의 감귤나무들은 모두 베어졌습니다. 오며 가며 열매를 따 먹었던 비파나무, 낑깡나무, 무화과나무, 감나무도 이젠 없습니다. 마당에 있던 나무 중 살아남은 것은 목련 나무 두 그루 뿐입니다. 아버지가 간곡히 부탁하여 유일하게 옮겨 심은 나무들입니다. 지금 오피스텔 앞 작은 정원에는 키 큰 백목련과 자목련만이 오도카니 서 있습니다. 


두 목련 나무는 우리 자매의 탄생수입니다. 아버지는 나와 동생이 태어날 때 묘목 하나씩을 사서 마당에 심으셨습니다. 내가 태어난 해에는 하이얀 백목련을, 동생이 태어났을 때는 자줏빛의 자목련을 선택하셨지요. 백목련은 추위에 약한 자목련보다 1~2주 정도 먼저 꽃을 피웁니다. 생명력이 강해 자목련보다 더 크게 자라난다고 하고요. 한국에서는 나무의 연꽃이란 뜻으로 목련이라 불리고, 중국에서는 나무 위에 피는 난초라는 의미로 목란이라고 불리지요. 외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우리 자매의 이름에는 '난초 혜(蕙)'가 들어가니, 목련나무가 우리의 나무가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릅니다.  


3월의 셋째 주, 백목련은 만개해있었고 자목련은 막 봉우리를 맺고 있었습니다. 나무 등치에는 하얀 꽃잎이 우수수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 꽃잎을 가만 가만 밟으며, 나는 이모에게 썼던 오래된 편지와 최근의 편지들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필시 이모가 고향집에 찾아왔을 때, 낯선 광경에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앉을 자리는 이 나무일 뿐이라고 확신하면서. 


“새들이 다 먹어 불맨. 아이고, 자이네들이 다 먹어불면 필게 어실건디 어떵할꺼.”


큰이모가 공중에 팔을 휘휘 저으며 나뭇가지에 모여든 새들을 쫓고 있었습니다. 덩치 큰 새들이 높은가지 위에 앉아 하얀 꽃잎을 쪼아먹고 있었습니다. 아직 피지 않은 자목련의 꽃봉우리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목련의 봉우리는 예로부터 비염 치료를 위한 약재로 쓰였습니다. 그러고보면 새들의 입맛도 꽤 고급인 모양입니다. 그들은 덜 핀 꽃망울이나 봉우리를 쪼아 가운데를 파먹고 나머지 잎은 버려버렸습니다. 이모를 따라 나도 훠이, 훠이, 소리를 내며 쫓아냈지만 그들은 잠시 후 도로 와서는 새침을 떼며 식사를 계속 했습니다.   


큰이모는 새들이 굶주림에 지쳐 이곳까지 날아들어온 거라고 했습니다. 남의 먹고 사는 일은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며 이모는 새 쫓기를 멈추었습니다. 이모를 따라 나도 평상에 앉았습니다. 우리의 나무가 초대받지 못한 손님처럼 마당에 서 있는 게 나는 조금 속상하던 터였습니다. 분신처럼 느껴지는 나무가 베어져 나갈 곤경에 처하기까지 했으니 괜히 서글퍼졌지요. 그러나 나무가 피운 꽃이 어떤 생명의 밥이 되어준다니 조금 위안이 되었습니다. 새들이 먹다만 꽃잎들이 가지 끝에 너덜하게 걸려있었습니다. 설사 누군가의 눈길을 받지 못할 지라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으로도 생의 가치는 충분할 지 모릅니다. 목련나무가 온 힘을 다해 피웠던 꽃들을 바람이 살랑 살랑 어루만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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