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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Mar 31. 2017

3월-소리(2)

서울의 자취방

 서울에서 몇 차례 이사를 거쳐 지금의 집에 안착한지는 3년이 되어갑니다. 주인아주머니는 본래 한 가정집이 살던 다세대 주택의 2층을 반으로 나누어 각각을 아담한 투룸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집은 오래되어 천장과 벽 틈 사이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화장실의 타일도 금이 가고 몇 개는 아예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보수 공사는 나도 주인아주머니도 엄두를 못 내고 있습니다. 처음 이 집의 계약서를 쓸 때, 계약서 연도의 앞자리는 19 였습니다. 아주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19 위에 줄 두 개를 직- 긋고 나서 20이라고 썼습니다. 


 투룸의 큰 방은 작은 방의 2배 정도가 됩니다. 나는 안쪽에 있는 작은 방을 침실로 쓰고 있습니다. 작은 방은 작지 않은 창문이 있어 머리맡에 두고 잡니다. 창문은 나란히 서 있는 빌라의빌라 뒷면으로 난 커다란 창문에는 하늘색 암막 커튼을 달아놓았습니다. 창가를 머리맡에 두고 잠을 잡니다. 창 밖은 빌라의 주차장이기 때문에 간신히 도로의 소음에서 빗겨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요의 적은 더 가까이 있습니다. 바로 윗층입니다. 


 불을 끄고 이불을 턱 밑까지 끌어올린 후 눈을 감으면시작되는 완전한 어둠 속에서 나는 늘 코 고는 소리를 듣습니다. 차라리 도로를 질주하는 타이어의 마찰음이 낫다고 생각될 만큼 우렁찬 소리는 윗층에서 내려옵니다. 그녀의 고단한 하루의 무게가 소리로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이지요.  


 다세대주택의 단점이자 매력은 바로 소리의 무방비함입니다. 예전에 살았던 동교동 집은 마른 하천 옆에 위치한 3층 집이었고, 집 옆으론 하천을 건너는 다리가 나있었습니다. 하천은 물이 마른지 오래 되어 보이는 건 푸석한 흙뿐이었는데도 다리에는 신비한 힘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밤 늦게 그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을 퍽 감상적이게 만들었기 때문이죠. 그 다리를 머리맡에 두고 잤던 나는, 종종 새벽의 노랫소리에 잠이 깨곤 했습니다. 악에 받친 듯 불러대는 노래도 있지만, 조용히 혼자 곱씹듯 부르는 노래들이 이상하게 더 선명히 들려옵니다. 마치 그 노래를 위해 모든 소리들이 몸을 숙이고 있는 것처럼, 새까맣게 고요한 새벽에 그 노래들은 창문을 넘어 나의 침대로, 나의 꿈 속으로 밀려들어오곤 했습니다. 


 어쩌면 열악한 곳에 몸을 뉘어야 하는 사람일수록 타인의 소리를 붙잡아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청소기 소리로 주말의 평화를 확인하고 흥얼거리는 콧노래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비명을 통해 급박한 순간 도움을 요청하고 도움이 되어줄 수 있도록. 얇은 가벽만을 사이에 두고 살아가기에, 그것을 뚫고 흘러 들어오는 소리들로 함께 살아가는 온기를 나눠 갖는 게 아닐까요. 그런 이웃조차 없다면 쪽방의 삶은 너무 외롭고 적막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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