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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Mar 31. 2017

3월-소리(1)

나의 오래된 놀이

서울에 올라오기 전, 고향인 제주도에서는 두번 이사를 했습니다. 유치원을 다닐 적에 서귀포 외가댁에서 제주시 신제주의 낡은 아파트로 처음 이사를 했고, 초등학교 2학년 때 구제주의 신축아파트로 옮겨 간 것이 두번째이자 마지막 이사였습니다. 부모님은 여전히 구제주의 아파트에서, 출가한 두 딸의 방을 서재와 옷 방으로 바꾸어 살고 계십니다.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서 유년기를 보낸 나로선, 아파트라는 공간이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전 집보다 훨씬 높은 천장을 가진 아파트가 위압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처음 내 방을 갖고 혼자 잠을 자기 시작할때, 나는 방안의 붙박이장이 내 몸 위로 쓰러지는 악몽에 몇 달을 시달렸습니다. 그것이 폐소공포증과 비슷한 거였단 건 뒤늦게 알게 되었지요. 


문 대신 커다란 창문을 뛰어넘으며 집 안팎을 오갔던 장난을 아파트에서는 더는 칠 수 없었습니다. 답답할 때 달음질쳐 뛰어 나가면 바다향을 실은 축축한 바람이나 정원 가득 귤나무의 싱그러운 향에 받던 위로도 끝이 났습니다. 수업이 끝나 20분 정도를 걸어 단지에 도착하고 5층 계단을 올라 현관문을 열면, 학교에 있는 엄마, 아빠와 유치원에 있는 동생이 퇴원하기까지 나는 혼자였습니다. 높은 천장과 하얀색 벽지, 시큰둥한 가구들 속에서 내가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거라곤 책을 읽는 것 말고는 없었습니다. 


그때 무료함을 떨치기 위해 만든 놀이가 있었습니다.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리고 고개를 돌려 오른쪽 귀를 바닥에 닿게 합니다. 그리고 소리를 듣습니다. 나는 아래층에서 나는 소리를 훔치곤 했습니다. 일상의 소리는 아주 작아 보통은 들리지 않지만 가만히 집중하면 조금씩 들려옵니다. 그리고 거기에 약간의 추측과 세련된 상상을 보태면 나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그 사람의 삶까지 갖게 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부엌 씽크대의 물을 약하게 틀고 간식을 먹은 그릇을 설거지하는 평화. 초인종 소리에 달려 나가다 실내 슬리퍼에 걸음이 꼬이는 우스꽝스런 모습. 읽던 잡지를 던지며 짜증을 풀려는 노력. 나는 그렇게 한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어떤 성격이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그려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실제 아래층에 어떤 사람들이 살았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좁은 아파트 층계에서조차 한번 마주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이 늘 물을 아껴 썼으며, 스포츠 중계를 즐겨 보며,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요란한 말다툼을 하던 사람들이란 걸 압니다. 


이 놀이는 이사를 해서도 계속 되었습니다. 두번째 신축 아파트는 예전 아파트보다 방음이 좋았습니다. 그래서아랫집의 소리를 건져올리기 위해서는 더 큰 인내와 집중이 필요했습니다. 305호는 다툼이 잦았습니다. 남성과 여성은 자주 언성을 높였으며, 묵직한 것을 바닥에 내려치는 소리도 한번 들은 적 있습니다. 새로 이사한 집에서는 놀이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내가 힘들게 퍼 올린 소리가 겨우 불행한 가정의 모습을 그리는데 쓰이자 무력해지더군요. 게다가 엿들은 타인의 불행은, 소리를 훔치는 게 도덕적으로 옳지않은 놀이라고 죄책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가만히 누워있을 수 있는 잉여로운 시간조차 줄어들면서 나의 놀이는 끝났습니다. 서울로 상경해 다세대 주택의 원룸을 전전하면서부터는 되려 소리로부터의 해방을 원하게 되었습니다. 방과 방 사이의 얇은 벽으로 소리는 부끄럼 없이 전해졌습니다. 외벽 또한 대로변의 소음을 모두 튕겨내진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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