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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Sep 25. 2020

장폴 뒤부아의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

각자의 문 안팎을 오가는 공존을 꿈꾸며 

주인공인 한센은 감옥을 이론상에나 존재하는 공간으로 여겼던 성실하고 평범했던 사람입니다. 건물 총 관리소장이었던 그는 그러나 다른 감방보다 고작 몇 평 넓다는 이유로 ‘콘도’라고 불리는 2인실 감방에 앉아있습니다. 그리고 한사람 반 만한 거구의 무자비한 조폭 출신의 패트릭이 매일 저녁 변기에 앉아 똥을 싸기 위해 힘을 주는 광경을 보아야만 합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성은 폐기된 지 오래인 교도소에서 활기를 가진 생명체라고는 쥐들뿐. 고약한 수감생활을 그나마 견디게 하는 것은 망자로 찾아오는 아버지와 아내 위노나, 그리고 반려견 누크의 존재입니다. 남은 형기를 줄일 수 있는 건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심사관 앞에서 그의 죄를 뉘우치는 일이지만 한센은 그러지 못합니다. 결코 그럴 수 없다고 되뇝니다.



 소설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는 않아>는 교도소에서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한센의 기억을 따라 갑니다. 덴마크 어촌 출신의 고지식한 목사 아버지, 프랑스 소도시의 자유롭고 혁명적인 어머니 사이에서의 유년기. 이혼 후 캐나다 퀘백의 작은 교회로 옮겨가 신앙을 잃어가는 아버지의 몰락을 지켜보았고, 어머니의 부음을 그녀의 연인이었던 사내로부터 들어야 했죠. 기술을 배워 운 좋게 68가구가 거주하는 렉셀시오르의 관리소장으로 되고 경비행기 조종사 위노나를 만나 사랑이 넘치는 연인이 되지요. 딱히 결혼이라는 제도를 거치지 않았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이상적인 부부로 함께했으며, 이들 곁에는 사람보다 더 마음을 잘 읽어내는 강아지 누크도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에 오게 되는 사연은 소설 말미에서나 밝혀지죠.  



 한센의 삶을 들여다보면 (누구의 인생이건 비슷하겠지만) 복잡한 인생사의 요소들이 얽혀있습니다. 사랑, 부부, 가족이 주된 내용인 듯 하지만 더 세심히 들여다보면 변화해가는 시대의 흐름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의 문제가 있죠. 종교와 신앙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도 놓여있고, 민족과 조상, 고향 등의 기원에 대한 생각도 하게 하구요. 후반부에는 신자유주의 속에서 인간성이 황폐화되는 장면을 한센의 일터가 고스란히 보여주게 되는데요, 시설 관리와 수리보다 거주자들의 건강과 마음을 보살피는데 시간과 노력을 들였던 한센은 새로 선출된 대표자에 의해 사람들의 현관문 ‘밖’의 업무만 보게 됩니다. 삶의 온기가 사라져가는 렉셀시오르에서 그의 유일한 이웃이자 친구인 키어드 리드의 말은 의미심장합니다. 


결국 그렇게 까다로운 일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삶의 불평등은 대게 법을 통해 우리의 죽음에까지 연장되고 확증되니까요.



 리드는 ‘캐주얼티스 어저스터’로 사상자들의 가격을 매기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죽음과 이에 대한 보상의 문제에서 한 사람의 인생이 수치로 계량화되고 시장의 가격으로 계산된다는 걸 알고 있죠. 자신의 일에 인간적으로 매우 괴로워하면서도 돈 때문에 그만둘 수 없는 처지는 그 스트레스를 공감해주는 유일한 존재-한센과 가까워지게 만듭니다. 냉혹함과 불평등이 난무하는 비참한 현실을 그려내면서도 작가는 명랑함을 잃지 않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가요. 육두문자가 섞인 거친 말을 쓰긴 하지만 아이처럼 호들갑을 떨거나 앙증맞은 수다를 내뱉는 패트릭이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죠. 2019년 콩쿠르상을 수상한 이 작품의 찬사에는 고통을 이야기하는 데서도 웃음과 해학을 잃지 않는 우아함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란걸 알 수 있답니다!) 



 수만명의 사람이 사는 세상에는 그 명 수만큼의 우주가 존재한다는 말이 있죠. 이 책도 제목처럼 모두가 세상을 똑같이 살지 않으며, 반드시 그래야 할 이유가 없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개개인의 삶은 일반화된 가치기준으로 환원해서 평가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자신에게 의미있는 고유한 기쁨과 슬픔을, 행복과 고통을 안고 살아가죠. 그렇기에 타인이라는 존재도, 세상이라는 큰 흐름도 자신의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고 그렇게 하려는 욕심은 어떻게든지 폭력의 형태를 띨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인간다운 공존이 필요한 거겠죠. 각자의 세계를 가지고 있지만, 언제든지 그 문을 열어 자유롭게 안팎을 오갈 수 있는 열린 공존 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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