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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Dec 01. 2020

<상흔을 넘어>와 <유에스비>

부산시립미술관의 기획전들에 대한 기록



 6-70년대 문화대혁명 시기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를 위해 예술을 포함한 전 분야에서 엄격한 검열과 탄압을 실시했습니다. 이후에는 정반대의 활발한 개방정책으로 서구의 자본과 문명을 유입하면서 급속한 성장을 이루고요. 중국의 근현대는 짧은 기간 동안 압축적으로 진행됐고, 그 과정에 절대적인 권력으로 국가가 작용했던 것도 사실이죠. 부산시립미술관의 <중국 동시대 미술의 3부작>는 격동의 근현대사가 초래할 수 밖에 없었던 ‘상흔’에 주목합니다. ‘상흔을 넘어서’ 전은 현대작가 주진스, 쑹둥, 주진스의 각 작품들이 어떠한 상흔에 주목하고 예술에 어떻게 담아내는지를 보여주는 전시예요. 세 작가는 중국의 각기 다른 시기와 연합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의식도 다르죠. 1954년생 주진스의 예술은 중국의 민주화와 자유에 대한 투쟁에 놓여있었고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전위 예술로 이어졌습니다. 1966년 쑹둥은 시장 개방 이후 국가 통제와 자본주의의 문제에 비판적이었고, 1972년생 류웨이는 현대 도시와 문명의 문제를 현대기술과 전통적 요소와 접합시키며 풀어내요.

  


 

제게는 개인과 사회, 국가 사이의 관계성을 촘촘하게 사유한 쑹둥의 작품들이 흥미로웠어요. 중국 건축법 상 주택 지붕에 허용되는 비둘기 사육장 마저 가난으로 잘 곳 없는 이들의 거주지가 되는 현실을 주조해내며 그곳에 <가난한 지혜-비둘기와 함께 생활하기>라고 이름 붙인 것. <물도장 찍기>나 <입김> 등의 작품에서는 힘겨운 투쟁을 벌여도 세계에 아무 흔적을 남기지 못한다는 자조가 깊이 드러나죠. 이를 유한한 인간 생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그의 노력이 ‘문장을 남기는 행위’이거나 ‘천안문 광장’에서 행해졌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거대한 국가 앞에 굴복할 수 밖에 없는 개인의 좌절로 보는 것이 더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작가는 예술로써 그 투쟁을 계속해왔다는 점이 중요하겠죠. 





 재미있었던 주진스의 작품 <쇠락하던 시대의 도약>. 물감의 두꺼운 두께가 평면의 회화를 입체의 세계로 전치 시킵니다. 기존의 회화에서는 눈치채기 어려운 물감의 물질성이 부각되고, 이 물질성이 다시금 회화 표면의 시간성과 공간성을 새롭게 감지하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죠. 작가가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제작한 작품이라고 하던데, 무너져가는 오늘을 새롭게 세울 수 있는 힘이 이미 그 안에 있다는 응원으로 받아들여도 될지요.  




 


부산시립미술관 소장품 하이라이트전인 <유에스비>는 우주 Universe – 사회 Society – 존재 Being 의 첫 알파벳을 딴 제목이자, 우리가 사용하는 파일을 옮기거나 저장하는 USB 장치를 동시에 의미하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전시명이죠? Universal Serial Bus 장치의 ‘범용성’과 미디어아트의 장르적 특성을 연결시킨 건데요. 이 저신의 작품은 새로운 감각을 체험하게 하는 영상 이미지 중심의 작품과 내러티브로 비판적 메시지를 구축하는 작품으로 크케 나뉩니다. 




Jesper Just <Servitudes-Film>(2015) 

 


 2018 올해의 작가상으로 선정된 (당시 서울현대미술관에서 전시를 보고 쓴 글은 여기) 정은영 작가의 <정동의 막>도 좋았고, 예스퍼 유스트의 <Servitudes-Film>도 독특했어요. 영상 속 여인은 양손에 손가락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기계장치를 달고 있습니다. 자신의 의지대로 제어할 수 없는 손으로 옥수수를 쥐고 먹어요. 자꾸 떨어트려도 포기하지 않고. 그런데 이쪽을 바라보는 여인의 시선이 참 묘했습니다. 수줍어하면서도 자신을 보란 듯한 표정. 거기엔 옥수수를 먹겠다는 의지보다 옥수수를 먹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욕망이 더 강하게 느껴졌어요. 제목인 ‘노예’와 여성의 존재, 시선, 그리고 그녀를 대상화하는 영상까지. 중첩되고 교차하는 요소들 앞에서 가볍지만은 않은 마음이었습니다. 




<상흔을 넘어>는 2021.2.28까지, <유에스비>는 2021.2.14까지 진행됩니다. 

코로나19로 사전 예약제로 관람하고 있으니 예약과 전시 상세정보 확인은 사이트에서 진행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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