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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Jan 04. 2021

넘치고 흘러 어떤 모양이든 될 수 있는 물처럼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의 사랑의 모양

나름 영화를 좋아한다고 자부하지만 누군가 영화 취향을 물어본다면 좋아하지 않는 것들을 말하는 편이예요. 좋아하는 장르나 감독, 주제를 꼽는 것보다 덜 복잡하니까요. 저는 공포 장르나 지나친 가혹성이 있는 영화가 싫고, 판타지나 액션 장르에도 그다지 끌리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제 영화 리스트에서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죠. 공포와 판타지가 결합된 기묘한 영화들을 만들었던 기예르모 델 토로의 작품 중 유일하게 좋아해요. (그의 전작들 중 <판의 미로>만 시도했었고 그마저도 중도포기한 :( ...) 사실 기예르모 감독에게도 기념비적인 작품일 거예요. 그간 특유의 미학으로 주목을 받았음에도 상복이 없었던 그가 <셰이프 오브 워터>로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비롯, 골든글로브상과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휩쓸었으니까요. 



영화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을 때, 이 포스터만 보고 판단이 섰죠. 이 영화는 반드시 봐야 한다! 라고. 





 기예르모가 전작에서 다뤘던 괴수나 유령, 초강력 로봇 등과 비교할 때 <셰이프 오브 워터>의 ‘괴물’ 은 신비함은 동일할지 몰라도 훨씬 친숙하게 다가옵니다. 1960년대 미국 항공우주센터 연구실로 포획되어온 생명체는 온몸이 푸른 비닐로 덮여 아가미로 숨을 쉬는 수중생물입니다. ‘그’는 우주탐사의 희생양으로 해부대상이 되는데, 센터의 청소부인 여주인공 ‘일라이자’는 그를 구해내고자 합니다. 일라이자와 ‘그’는 수화로, 눈빛으로, 몸짓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죠. 말을 하지 못하는 그녀 역시 사람들로부터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외롭게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만은 그녀의 불완전함을 보기보다 그 자체로 받아들여줬죠. 그렇기 때문에 ‘그’의 죽음을 방관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그’가 인간도 아니라며 포기하자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안하면 우리도 인간이 아니예요.’ 사실 영화에서 ‘그’를 ‘그’라고 부르는 사람은 그녀가 유일합니다. 모두들 ‘그’를 ‘것’으로 부르거든요. 







 결국 구출작전을 돕게 되는 그녀의 친구들도 모두 사회적인 ‘타자’들입니다. 직장 동료인 흑인 여성 젤다는 직장과 가정에서 차별받고, 이웃 화가 자일스는 늙고 가난한 성소수자죠.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 ‘괴물’은 목적을 위한 도구로, 폭력의 당연한 대상으로 다뤄지지만, 타자들에겐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그’로 여겨집니다. 인간과는 다른 이종의 ‘괴물’이 생명의 가치를 인식시키고 함께의 감각을 연결한다는 점이 이 영화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해요.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타자를 혐오하고 낙인찍고 사회로부터 배제하는 현상이 만연해있잖아요. <셰이프 오브 워터>는 공존하기 위해서 타자들을 어떻게 상상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더 나아가 일라이자와의 ‘그’의 교감과 사랑은 비현실적이어서 더 아름답고 애잔합니다. 사랑과 관계에 대한 ‘한계선’들을 다시금 생각해볼 수 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제목이기도 한 ‘물’의 속성은 이 영화의 의미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것 같아요. 특히 일라이자와 ‘그’가 욕실에 물을 채워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요. 타올로 문틈을 막아놓지만 물은 결국 흐르고 흘러 일라이자 아래층의 영화관으로 새고 맙니다. (영화관 윗층에 산다는 공간적 상징 말고도 이 영화는 '영화'라는 매체를 굉장히 재밌게 활용하고 있어요. 이와 관련해선 여러 재밌는 비평들이 나와있으니 관심있으면 꼭 읽어보세요!) 경계들을 무력화하는 것, 한계를 모르고 넘쳐 흐르는 것. 공간에 따라 어떤 모양으로도 담겨질 수 있고 무엇이든 감싸 안을 수 있는 것. 이렇듯 고정되지 않는 물의 형태가 사랑인 거라고 영화는 보여주고 있어요. 엔딩에서 친구가 읊조리는 옛 시는 그러한 사랑의 모양을 잘 드러내고 있어, 마지막으로 옮겨볼까 해요. 바다 속으로 사라진 이들의 앞날이 어떨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의 사랑에 대해서는 믿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믿고 싶어요.



그대의 모양 무언지 알 수 없네
내 곁엔 온통 그대뿐
 그대의 존재가 사랑으로 내 눈을 채우고
내 마음 겸허하게 하네
그대가 모든 곳에 존재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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