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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Feb 05. 2021

<뷰티풀 데이즈>의 주인공은 왜 이름이 없을까

탈북-여성-엄마의 영화적 재현 속 이름없음에 대해

윤재호 감독은 '경계적 존재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정상적(이라고 통용되는) 범주의 바깥에서, 경계의 균열을 일으키는 존재들-이주민, 난민들 말이죠.  


 윤재호 감독의 영화 <뷰티풀 데이즈>(2018)는 중국 대학생인 젠첸이 가족을 버린 어머니를 찾아 한국으로 오면서 시작됩니다. 술집에서 일하며 한국남자와 동거하는 엄마에게 아들은 “이런 일 하려고 우릴 버렸어요? 이것 때문에 우릴 버렸슴까?”라며 분노합니다. 여자 주인공은 ‘무정한 엄마’이자 ‘타락한 여성’이라는 이중적인 단죄의 대상이죠.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것뿐”이라며 떳떳해합니다. 북한 국적의 그녀는 중국 시골 어느 가난한 가족에 팔려간 이후에도 자신을 지속적으로 착취했던 브로커 황사장에 의해 불법적인 일을 하며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산전수전을 겪고 마침내 남한으로 넘어와 정착한거죠. 탈북을 소재로 하거나 탈북민의 삶을 다룬 한국 영화는 꽤 있지만, <뷰티풀 데이즈>는 탈북의 이슈를 전면으로 내세우지 않고, 이들의 역경을 단순하게 소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탈북 영화의 서사와는 다른 길을 걷습니다. 그러나 그 차별성과 연관지어 던지고 싶은 질문이 있습니다. 왜 영화에서 주인공의 이름은 없을까요?




 이 영화는 사실 이나영이라는 배우와 분리시켜 이야기 할 수 없어요. 그녀가 6년만의 스크린 복귀작으로 선택한 작품이었고, 노개런티로 출연한다는 보도로 화제가 되었죠. 탈북여성이자 어머니라는 역할을 맡은 것은 도전이었다고 인터뷰하기도 했고요. 이 배우가 가진 특유의 분위기-도시적이면서 중성적인-는 이 영화의 미학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요. 윤재호 감독은 미학적인 연출로 탈북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항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궁색하거나 촌스러운 이미지가 아니라 도시적이고 세련된 이미지. 톤다운된 붉은 색을 주인공의 주색으로 설정해 강렬하고 선명하게 존재를 부각시켰죠. 이는 기존의 영화 안에서 탈북여성이 수동적인 희생자나 피해자로 그려졌던 것과 대비됩니다. ‘탈북여성’에 대한 사회의 치우친 편견을 거부하는 거죠. 영화가 저지르기 쉬운 폭력적 재현-여성의 몸을 폭행과 착취의 도구로 대상화하거나 관음적 시선으로 소비하지도 않습니다. <뷰티풀 데이즈>는 직접적인 폭력과 착취의 현장을 빗겨난 순간들로 탈북 여성에 대한 서사를 엮어나갑니다.  

여주인공의 삶의 여정을 따라 장면의 색감이 변화하며 각기 다른 정조를 만들어냅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이는 <뷰티풀 데이즈>의 영화적 전략과도 관련 있습니다. 영화는 여주인공의 일기를 읽는 아들의 시점을 따라가는 형태로 이루어지기 때문이예요. 주인공의 삶은 진솔한 기록을 바탕으로 복기되지만, 이는 철저히 남성-아들의 상상 가능한 영역 안에 갇혀 있게 됩니다. 탈북 여성의 삶이 평면적으로 보여질 수 밖에 없는 한계가 내재해 있는 거죠.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점이 주인공의 ‘이름없음’입니다. 주인공은 영화 속에서 ‘엄마’나 ‘당신’, ‘너’, ‘야’로 불리며 끝까지 이름이 밝혀지지 않아요. 여기에서 우리는 이 영화가 ‘보편적 서사’로 읽혀지기를 바랬다고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영화 주인공의 ‘이름없음’은 어떤 이름도 대입이 가능한, 투명한 존재로의 지향을 의미할 수 있죠. 그러나 이러한 보편성은 역으로 공허해 질 위험에 처합니다. 구체적인 현실에 디디고 있지 않은 인물은 설득력을 잃고 피상적인 존재가 되기 쉽습니다. 다양한 전략을 통해 이 영화는 어머니에서 가족의 이야기로 확장시키는데 성공했지만, 그로 인해 탈북여성의 특수한 경험은 희미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뷰티풀 데이즈>는 영화 전면에 ‘탈북’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영화에서는 황사장을 통해 여주인공의 북한 출신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예요. 영화 포스터의 ‘아픈 시간, 특별한 비밀’이라는 부제에서도 보편적 차원에서 이 서사를 위치 지으려 하는 의도를 엿볼 수 있죠. 




 윤재호 감독의 다큐멘터리 <마담B>(2016)는 <뷰티풀 데이즈>의 시나리오를 쓰기 위한 현지조사에서 만난 탈북여성의 삶을 담고 있습니다.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마담 B로부터 영화의 영감을 얻긴 했으나 같은 이야기는 아니라고 선을 그어요. 그러나 이 둘을 “서로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는 한쌍” 이라고 언급하면서, 다큐에서 풀리지 않은 질문을 풀기 위해 영화적 상상을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이 두 작품 사이에 놓인 간극을 비교해보면 흥미로워요. <마담B>는 탈북여성의 특수한 경험들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특히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의 처지에 대해서 그러하죠. 마담B의 중국가족에게 왜 북한여자를 며느리로 택했냐는 질문에는 ‘가난’ 이 즉각 튀어나와요. 또한 마담B는 브로커 경험을 통해 탈북여성이 못 살고 병든 중국남자의 가족, “그런 쪽으로만” 팔려나가는 현실을 고백하기도 하죠. 유흥업소에 취직 시켜주어도 잘 적응하지 못한다던 여성의 이야기나, 갓난 아이를 업고 국경을 넘어야하는 여성의 모습, 남한행을 들키지 않도록 시부모 앞에서 입단속을 해야 하는 여성까지. 이름은 언급되지 않되 여성들의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흘러나오며 다큐는 탈북여성의 다층적인 형상을 조직해내죠. 


<뷰티풀 데이즈>는 여성이 아닌 남성을 반성의 주체로 삼습니다. 영화 속 남성 인물과의 관계를 통해 영화를 해석해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특히 결말의 반전은 말이죠! 


 보편과 특수는 대립되는 항으로 여겨지지만, 엄밀히 생각해보면 서로 긴밀한 관계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쉽게 치환되지 않는 특수한 사례들이 오히려 보편적 것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공감은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므로, 현실의 구체성과 생생한 감각이 뒷받침될 때 더 강력해지죠. 우리 사회가 가진 탈북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은 얄팍한 앎에서 비롯됐고 그들의 어려운 현실을 알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막연한 배타심을 갖게 됐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뷰티풀 데이즈>는 탈북여성의 영화적 재현에 전환점을 가져온 작품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이런 선구적인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무책임한 일일지 모릅니다. 영화는 언제나 사회와 공명하는 대화이기 때문에, 동시대 담론의 한계를 함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탈북민을 비롯해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소외된 존재들의 이야기가 말해지기 위해서는 우리 또한 눈과 귀를 열어 익명의 존재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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