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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Feb 08. 2021

독립영화를 보는 경험의 차이

영화를 만나는 기회의 차이가 점점 작아지길 바라면서

낙원상가 내 실버극장과 함께 서울아트시네마가 있었다. 사진은 오마이뉴스 기사 <좌석 점유율 1위... 진짜 시네마천국 여깁니다>  ⓒ 김종성



 한창 영화를 좋아했던 대학생 시절, 제가 가장 자주 갔던 영화관은 서울아트시네마였어요. 지금은 서울극장으로 옮겨갔지만, 제가 다닐 때는 낙원상가 내의 오래된 허리우드 극장을 쓰고 있었죠. 그래서 당시 영화를 감상하던 풍경을 떠올리면 낡고 어둡고 꽤나 쓸쓸합니다. 상가의 어두컴컴한 계단과 낡고 축축한 붉은 커버의 상영관 의자, 조금만 움직여도 삐걱거리는 쇳소리에 거슬렸고, 상영시간이 길면 엉덩이가 아팠죠. 영화가 끝나면 상가 테라스에 나와 담배를 뻐끔거리는 사람들 사이에 멀뚱히 서 있곤 했어요. 거기에서는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종로의 뒷골목이 멀리까지 내다보였거든요. 작은 가게 안에 옹색하게 모여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의 밤을 생각했어요. 영화의 여운을 끝내고 현실세계로 돌아오기 위해서요. 



 서울아트시네마는 특정 감독이나 주제, 혹은 시대를 선정해 다양한 상영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상영되는 영화들은 고전부터 동시대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지금의 넷플릭스나 왓챠 등의 플랫폼이 하고 있는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가 드물었고, 그렇게 볼 수 있는 영화의 종류도 매우 적었죠. 할 수 없이 불법 다운로드의 세계에 접근하게 되더라도 오래된 고전 영화 파일이나 온전한 자막을 구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였고요. 그런 갈증을 풀어주는데 서울아트시네마만큼 열일해주는 곳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잉마르 베르만의 사색을, 왕가위의 감각을, 짐 자무쉬의 유머나 구로사와 아키라의 스타일에 빠지게 된 것도 서울아트시네마 덕분이었어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거나 감정이 동하지 않아 보는게 고역인 작품들도 더러 있었지만, 그런 것마저도 독특한 영화 취향을 형성한다는 자기만족에 도움이 됐달까요. 영화 취향과 소비 형태가 나라는 존재의 고유성을 대변해준다고 철저히 믿었던 때였으니까 말이예요. 



 이제는 심오하고 예술적인 영화에 대한 강박은 내려놓았어요. 그러나 작지만 힘있는, ‘다양성’ 작품들을 찾아 보는 노력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대형 프렌차이즈 영화관에서도 자체 독립예술상영관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독립영화관을 자주 가게 되는 것 같아요. 저의 생활 반경 과 인접한 아트하우스모모, 상상마당KT&G, 서울영상자료원KOFA, 씨네큐브와 필름포럼 정도요. 또 매년 영화제도 챙겨가는 편이구요.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나 서울독립영화제 뿐만 아니라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나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스웨덴이나 아랍 영화제 등. 작은 규모로 열리는 한시적인 행사들에서, 딱 그때만 볼 수 있는 작품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합니다.  


성산동으로 이사온 후 더 자주 오가는 시네마테크KOFA. 온라인 사전예매와 현장예매 좌석이 나뉘어져 있는데, 인기작은 금방 매진이 된다. (사진은 공식사이트에서) 


 독립영화가 소중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아요. 내가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지 않으면 알지 못하고, 적은 수의 상영관과 드물게 걸리는 상영 일정에 맞춰야 하는 수고를 기울이지 않으면 만날 수 없으니까요. 고난 끝에 얻은 성취가 더 값지게 느껴지는 것처럼. 물론 영화가 다루는 소재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 등이 새롭고 사려 깊기 때문에 생각할 점도, 느끼는 바도 훨씬 풍성해지죠. 세상을 바라보고 인간과 삶에 대해 고민하는 영역을 확장시켜준다는 점에서 영화적 의미도 크지만, 이러한 영화를 감상하는 경험이, 일반 대중 영화들의 편하고 쉽고 사뭇 수동적인 경험과는 다르다는 점 또한 영향을 끼치는 것 같습니다. 가령 팝콘 씹는 소리 대신 사각거리는 메모 소리가 들리고,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가기 전까지 불을 켜지 않는 상영관의 문화 같은 것. 영화를 보고 나오면 대형몰에서 인파 사이를 헤쳐나와야 하는 게 아니라 인적 드문 조용한 길을 내킬때까지 걸으며 장면을 곱씹을 수 있다는 것. 



 산업이 급변하면서, 또 코로나라는 예기치 못하는 사태로 인해, 독립영화의 관람 양상도 변했다는 걸 느껴요.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 때문에 상영을 할 수 없던 KOFA는 지난해 온라인 상영 서비스를 많이 제공했거든요. 덕분에 집에서도 편히 보고싶었던 독립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대중적인 상업영화보다 온/오프라인의 유통망이 협소하고, 홍보도 대대적으로 이뤄지기 어렵기에 우리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해지는 영역에 있죠.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희소하다는 사실은 영화의 입장에서는 불리한 조건일 겁니다. 그러나 그러한 장벽을 거스르는 영화 관객이 꾸준히 있어왔고, 이제는 그 장벽이 조금씩 무너지며 시장의 지형이 바뀌고 있어요. 좋은 작품들이 ‘보기 어렵기 때문에’ 평가에 가산점을 얻기 보다 ‘모두가 볼 수 있기 때문에’ 인정받게 되는 날이 오길 바래봅니다. 독립영화의 팬으로써 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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