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글쓰기 수업의 기억들 2
글쓰기 수업 커리큘럼에는 학생들과의 일대일 면담도 포함되어 있어요. 과제로 제출한 글을 꼼꼼하게 피드백 해주는 것이 중심이 되는데요, 이때 학생들에게 글쓰기에 대한 어려움이나 고민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아, 이때 글이란 내용과 형식의 자유가 있는 에세이가 아니라 학술적인 글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고유한 분석과 주장을 담은 논설문이요. 그런데 많은 친구들이 비슷한 고통을 토로하더라구요.
“글을 어떻게 시작해야 될 지 모르겠어요.”
“서론 쓰는 게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첫 문장 고민하다가 시간을 다 썼어요.”
시작이 어렵다는 말은 글쓰기에도 예외없이 적용되는 것 같아요. 저 또한 매번 느끼는 중압감이거든요. 노트북의 새하얀 스크린에 커서가 깜빡 거릴 때. 상대에게 중요하고 어려운 말을 해야할 때, 어떻게 운을 떼야 할지 고민하는 것처럼요. 긴 글의 첫 단락, 첫 문장, 첫 단어를 만드는 일은 예측 불가능한 여정을 시작할 때 만큼의 의지와 용기를 요구합니다.
저의 처방은 무엇이냐고요? 그럴 때는 과감히 서론을 건너뛰고 본문부터 쓰라고 조언합니다. 거두절미하고 글의 핵심 본론으로 들어가는 거죠. 한 편의 글을 쓸 때 처음부터 글의 전체 뼈대를 구성할 수 있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웬만해선 완벽한 논리구조를 먼저 세우기는 참 어려워요. 더구나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내가 설정한 구조가 완전히 틀렸거나 불완전하다는 걸 뒤늦게 깨닫기도 하고요(물론 자신의 논리와 글의 구성에 한계가 있음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은 정말 중요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아 글을 쓸 수 없다고 말하고들 합니다. 생각을 정리한 다음에야 글을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죠. 그러나 생각은 글을 쓰면서, 글로 쓰는 과정을 통해 더 명료해지고 완성되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글의 구조나 논리의 흐름 같은 것들을 머릿속에서 막연하게 조합하기보다, 구체적인 문장과 문단으로 형성해내보는 게 중요합니다.
서론을, 혹은 첫 문장에 쩔쩔매며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지 마세요. 그럴 땐 과감히 본론과 결론을 먼저 쓴 다음 다시 서론으로 되돌아가는게 좋습니다. 저는 서론, 본론, 결론이라는 글의 가장 도식적인 구성 중에 서론이 가장 까다롭다고 생각해요. 서론은 마치 등산길 입구의 지도 같아요. 이 글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뻗어 나갈지, 어떤 논의들을 거쳐 글의 핵심 주장에 다다르는 지에 대한 안내를 해주어야 하거든요. 혹은 논의의 개괄적인 안내 기능을 하지 않더라도 글을 끝까지 읽고 싶게 만드는 흥미와 호감을 만드는데 성공해야 하고요. 그런데 글쓴이가 자신의 글을 완전히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 모든게 불가능하겠지요? 그래서 글의 몸체를 완성한 다음 서론을 쓰는 전략이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저는 특히 학술적인 글을 쓸 때 수정을 거듭하면서 글을 완성하는 편이예요. 초고를 쓴 뒤, 글의 전개 순서를 조정하고, 논거들을 재조합하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위해 논지 사이에 연결고리를 강화하는 식으로. 그래서 퇴고하는 작업이 글을 만드는데 80~90%를 차지하는 정도죠. 글의 개요를 아무리 꼼꼼하게 만들어 초고를 쓴다 하더라도 실제 글을 쓰는 과정에서 흐름의 부자연스러움이나 논지간의 불균형, 근거의 부족 등이 드러납니다. 그런 결점들을 수정하고 보완하다보면 글은 처음에 계획했던 구조와 다르게 완성되곤 해요. 그러면 애초에 써놓았던 서론을 다시 써야하고요. 이런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이제는 가장 첫 문장을 가장 나중에 쓰게 되네요. 한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지만, 글은 읽히기 전에 몇 번이고 고치고 다듬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요. 글은 쓰면 쓸 수록 일필휘지의 천재성보다 몇번이고 고치는 집념이 완성시키는 것이라고 실감하게 됩니다.
시작이 어려운 건 사실이예요. 그래서 시작이 반인 것도 맞고요. 처음부터 완벽한 글을 쓰겠다는 강박(허황된 욕심)을 내려놓고 내게 가장 분명한 문장부터 일단 써보세요. 무모한 시작이 주는 힘을 믿어보세요. 첫 문장이 그 다음 문장을 불러내고, 그 문장의 의미를 확실하게 전하기 위해서는 그 다음 문장이 필요해질 거예요. 그렇게 쓰여진 문장들이 추동력이 되어 어떻게든 나아갈 겁니다. 그러다 아득하게만 느껴졌던 목적지로 글쓴이를 데려 갈지도 모르죠. 삶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확신을 갖고 완벽한 결말을 예상한 채 선택과 행동을 하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어요. 그런 불확실성 속에서도 우리는 과감하게 앞으로 나아가니까요. 어떤 결론에 다다르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확실한 건 고민만 하다가 시작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변하지 않고 아무것도 새롭게 얻을 수 없다는 거예요. 쓰여지지 않은 무수한 글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