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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May 23. 2021

모든 글은 대화랍니다

첫 글쓰기 수업의 기억들 1

  이번 학기 처음으로 대학교 수업을 진행하게 됐어요. 대학 교양기초 과목인 <글쓰기>에서 말이죠. 제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글쓰기 과목에 대해서는 조교가 아닌 튜터 제도를 운영하고 있답니다. 튜터는 국문학 전공의 박사과정생 중 집필 활동과 강의 이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발합니다. 선발된 튜터는 배정된 수업에서 강의 6시간과 수강생의 글에 대한 첨삭을 2회를 진행하게 되고요. 저는 국문학과는 아니지만 유사 전공으로 인정을 받고 운 좋게 튜터의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기쁜 만큼 부담도 만만치 않았어요. 튜터 활동을 단순하게 미래를 위한 연습으로 삼고 임할 순 없었죠.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엄연한 강의였으니까요. 하지만 대학에서 필수과목인 글쓰기를 이수한 지 십년이 넘었고* 그 외엔 글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본 적 없는 저였습니다. 전공이 달라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튜터 경험담을 동냥하거나 조언을 구하기도 어려웠구요. 제가 생각하기에 저는 작문의 기본기가 좋거나 글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진 않습니다. 열심히 생각하고 여러 번 고쳐 쓰며 겨우 글을 완성하는, 성실하고 집념이 강한 편에 가깝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제가 과연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배정된 수업의 교수님과 여러 차례 논의한 끝에 저는 ‘영화 비평’에 대한 수업을 하기로 결정했어요. 수업 커리큘럼이 주제별 글쓰기로 구성되어 있어 다른 종류의 글쓰기를 시도해보는 것도 학생들에게 좋을 거란 생각이었죠. 영화는 가장 대중적인 장르여서 문학이나 시각예술 등의 다른 장르보다 상대적으로 쉽고 즐겁게 접근할 수 있고요. 물론 저는 정식으로 데뷔하거나 공인 받은 영화 평론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사유와 감성을 넓고 깊게 뻗어가는 데 있어 영화에 진 빚이 많거든요**. 그래서 학생들에게도 전문적인 비평을 쓰기보다 영화를 섬세하게 읽고 느끼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영화를 더 큰 의미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징검다리로 삼을 수 있도록요. 



  공대생이 많은 글쓰기 반이었던 까닭에 SF 영화를 장르로 선택했답니다. 고백하자면 그리 선호하지 않았던 장르이지만. 강의 준비로 장르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나름의 애정도 생기더라고요. 강의에서 중심을 둔 건 두 가지 였습니다. 영화를 자신의 고유한 관점/문제의식으로 읽어내기, 그리고 자신의 분석과 해석을 글로 설득력 있게 설명하기. 수업에서는 좋은 평론들을 함께 읽으며 영화를 어떤 시선으로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라는 문제에 대해 생각을 나눴습니다. 제가 글쓰기에서 강조했던 건 감상에 그치지 않고 비평으로 나아가라는 점이었어요. 좋다, 싫다, 재밌다, 지루하다 같은 주관적 감상이 아니라 무엇이 인상깊고 또 무엇이 아쉬운 지를 판단하라는 것. 그리고 그러한 판단이 이 영화를 평가하는데 있어 왜 중요한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설명하려 노력해보라는 의미였지요. 



   수업은 영화 비평 쓰기에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었지만, 저는 글을 쓰는 가장 기본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수업 첫날, 호기심 반 경계심 반의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는 수강생들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글은 “대화”라고요. 흔히 독백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글은 쓰여진 이상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읽혀지기 마련이라 대화적일 수 밖에 없어요. 하다못해 사적인 일기까지도 미래의 내가 독자가 되니까요. 글을 대화라고 생각할 때, 글쓴이가 가져야하는 기본적인 태도는 바로 읽는 이에 대한 “배려”입니다.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대로 상대방도 그럴 것이라고 당연하게 짐작하지 않을 것. 그렇기에 글에서는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기반하는 전제들까지 다시금 생각하며 써나가야 합니다. 상대방이 어렵지 않게 따라잡을 수 있도록 차근차근, 조리있게 말이죠. 중요한 건 일방적으로 말하는 나의 속도가 아니라 상대방이 이해하고 또한 공감하는 속도입니다. 쓰고 읽는 이 사이의 대화에 오해가 없도록, 정확하면서도 친절하게 글을 쓰자. 이 글조차 수많은 이들과의 대화라고 생각하는 제가, 진심을 담아 학생들에게 했던 이야기입니다. 




(수업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게다가 저는 유별나게도 기본 수업이 아닌 심화 과정의 글쓰기 수업을 들었답니다. 심화 수업은 입학 전 글쓰기 과제를 제출하고 합격한 사람들만이 들을 수 있었어요. 글쓰기 수업은 일반적으로 30~40명이 수강하지만 심화 과정은 5인의 소수정예제로 운영됐습니다.


**그 결과로 쓴 글들이 이 브런치에 꽤나 많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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