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서 '우리 모두'를 지향하는 새로운 여름을 꿈꾸며
여름 안의 나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눈이 부십니다. 가장자리의 연둣빛 잎들이 찰랑거리며 빛을 튕겨내지요.
7월의 첫째 날, 서울에는 올해 첫 폭염주의보가 내려졌어요. 그 무더운 날 도보 30분의 거리를 자전거를 타 단축하겠다는 결정은 현명하지 못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손목에 매단 작은 손가방이 자전거 앞바퀴 휠에 말려들어갔지 뭐예요. 아끼는 손가방을 온전하게 꺼내보겠다는 시도는 십분여간의 고군분투 끝에 가방을 찢는 참사로 끝이 났어요. 핸드폰 액정은 산산조각이 났고 몸은 땀범벅. 약속에는 15분이나 늦고 말았구요. 친구들은 냅킨으로 땀을 닦는 저에게 폭염에 사서 고생하지 말라지 했지만, 저는 나름의 교훈과 재미를 얻을 수 있어 만족스러웠습니다. 집으로 돌아올 땐 뒷바퀴에 바람이 빠졌는지 자전거가 심하게 덜컹거린 통에 아직도 엉덩이가 얼얼하지만 말이죠.
오래전 어느 무더운 여름날 외할아버지께서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어요. 여름을 나는 제일 좋은 방법은 최대한 가만히 있는 거라고요. 움직이지 않으면 땀도 나지 않고 세상에 무심하면 열 받는 일도 없다고요. 그러나 이런 양반 식의 여름나기는 저에게 와닿지 않아요.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을 뿐더러, 만약 그러기 위해선 다른 이들의 땀을 대신 요구해야 하니까요. 그건 돈이든 권력이든 명예이든 간에 (사실 이 요소들은 분리할 수 없게 얽혀 있죠!) 나보다 덜 가진 이들이 노동으로 제공하는 안락함을 소비하는 형태입니다.
며칠 전 쿠팡 물류센터에 발생한 화재를 다들 기억하실 거예요. 근무시간에 휴대폰을 소지할 수 없다는 규칙때문에 화재신고가 곧장 이뤄지지 못했고 창고의 스프링쿨러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3만평 이상의 드넓은 면적에 적재물이 가득 쌓여있는 창고의 불은 닷새가 지나서야 겨우 진화됐습니다. 진화과정에서 소방관 한분이 순직하시는 비극도 일어났고요. 화재의 정확한 원인을 조사 중이지만 과열된 멀티탭이 발화점일 가능성이 높다고 해요. 이 물류센터의 작업공간에는 에어컨이 없었습니다. 환기가 되지 않는 지하공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높은 노동강도 못지 않게 끔찍한 더위를 견뎌야 했을 거예요. 3교대로 작업하는 거의 24시간 돌아가는 창고에서 몇백대의 선풍기는 쉼없이 돌아갔고 과부하가 걸릴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이 화재로 물류센터의 비인간적인 근로 환경과 규약이 문제시 되었습니다. 사회적 문제로 조명된 노동조건이 실제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로 이어지기까지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거예요. 이들이 흘린 땀으로 편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우리의 지지가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비단 물류센터 노동자의 땀에만 한정되는 문제는 아니예요. 택배 노동자, 배달 종사자, AS 기사, 쓰레기수거 노동자와 환경미화원 등등 오늘날 신속하고 편리하며 청결한 삶의 토대를 만들어주는 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안락함은 비가시화된 이들을 착취한 결과여서는 안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의 편리를 논하기보다 보다 확장된 '우리 모두'의 삶과 노동의 조건이 나아질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이고 노력을 보태야하겠지요.
계절의 영향은 모두에게 공평하다고 하지만, 겨울만큼 여름의 혹독함도 어떤 위치에서 살아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강도로 느껴집니다. 그 안에서 흘리는 땀도 결코 같을 수 없겠지요. 폭염도 장마도, 올해는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수해까지- 그 피해의 지형은 이미 사회에 내재된 불평등한 삶의 차이들을 보여줄 거예요. 그때마다 지적되는 고질적인 문제들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끈질긴 여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불공평한 땀의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여름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빛이 쏟아지는 여름의 채도는 명랑해요. 바라보는 사람까지 덩달아 활기차게 만들죠. 그 눈부신 빛이 우리 사회의 그늘을 비출 수 있도록 여러분의 마음을 보태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