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mi Aug 04. 2021

일상의 무력감을 달래는 법

다정하게 말 걸어주고 너그러운 칭찬을 해주세요, 자신에게요.

   요 며칠간 서울에는 산발적으로 비가 내렸어요. 비와 동행한 무지막지한 천둥 소리에 겁을 먹기 일쑤 였지만 폭염이 한풀 꺾인다면야 견딜만 했어요. 그러나 장맛비가 아닌 이상 어림 없는 바람이었나 봅니다. 살짝 스쳐가는 비는 더위를 씻어내리기는 커녕 높은 온도를 가두는 습도만 높여놨지요. 푹푹 찌는 열기는 잠깐의 산책에도 뒷목에 땀이 흐르게 만듭니다. 제가 사는 오래된 아파트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방송을 해요. 전력과부화를 막기 위해 에어컨 가동을 최소화하자구요. 책상에 앉은 제 쪽으로 선풍기를 고정하고 얼음을 우걱우걱 씹으며 더위를 나고 있습니다. 창 밖의 눈부신 빛은 더운 남의 속도 모르고 투명하고 경쾌하기 그지 없습니다.




   폭염이 계속되는 동안 저는 제자리에 고여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서울의 거리두기가 4단계로 격상된 이후에는 외출을 확 줄였거든요. 친구들과의 약속을 줄줄이 취소하고 매일 출근도장을 찍고 앉아있던 도서관도 이제는 책을 빌리고 반납할 때만 들립니다. 동네 단골 카페에서도 앉아서 마시는 대신 텀블러를 들고 음료를 받아와요. 마스크를 내리지 않는 미술관은 그나마 갈 만했고, 그 외에는 식재료를 사기 위해 마트만 오가는 나날이 계속됐습니다. 그러니까 온전히 마음의 긴장을 풀 수 있는 공간은 집 뿐이었던 거예요. 좋은 공간을 찾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며 에너지를 얻는 저의 충전 방식이 소용없게 된거죠. 혼자 집에 머물다보니 무력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여러분은 무기력할 때 어떻게 하세요? 시들해진 삶의 활기를 되찾는 저마다의 방법이 있겠죠. 저는 저와 나누는 대화의 양을 늘려요. 남들이 보면 혼잣말이 늘었다고 생각할 테지만. 평소보다 저를 다독여주고 북돋아주는 말을 많이 해줘요. 무분별한 칭찬은 아니예요. 형식적이거나 억지스러운 말은 오히려 반발감이 들잖아요. 저는 매일 제게 작은 과제들을 내주어요. 가령 오늘 점심은 맛있는 요리로 특별식을 해먹자, 오후에는 핸드폰을 꺼놓고 책 절반을 읽자, 저녁 러닝에서는 통상 뛰는 거리보다 500m만 더 달려보자- 식의 어렵지 않은 숙제 같은 것들이요. 그리고 그것들을 해냈을 때 엄청난 칭찬을 제게 해주는 거죠. 잘했어! 멋져! 역시, 해낼 줄 알았어. 하니까 정말 뿌듯하잖아! 그래, 이렇게만 하면 돼, 라고.  



건강하게 한끼를 챙겨먹자는 과제를 착실히 지켜나가는 중!




   자신의 목표와 계획대로 통제되지 않을 때, 상황의 주도권이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외부적인 조건에 있을 때.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이 바꾸고 해낼 수 있는 건 없다는 걸 깨달을 때, 무력감에 빠집니다. 쓰린 좌절감과 함께 허탈함이 찾아오죠. 패배감과는 달라요. 열심히 싸운 승부에서 진 결과로 느끼는 게 패배감이라면, 무력감은 그 승부 자체가 자신에게 승산이 없을 거라고 지레 짐작하고 싸울 의지를 갖지 못하게 하는 우울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게 중요해요. ‘나의 의지와 능력, 노력만 있다면 할 수 있다’라는 확신을 다져야 하는거예요. 그래서 저는 (제게) 소박한 과제들을 부과하고 또 공들여 작은 약속들을 지켜나가며 제가 여전히 잘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제게) 증명해보입니다. 나와 나 사이의 소꼽놀이 속에서 자신감을 회복하고 용기를 차곡차곡 쌓아놓는 셈이죠. (고백하자면 이 브런치 글도 그 연장선 상에 있답니다)




   사실 무력감은 완벽주의자가 앓기 쉽다고 해요. 일을 할 때 누가 요구한 게 아닌데도 스스로가 기준을 높게 설정하고 그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사람들 말이예요. 열정이 넘쳐나는 완벽주의자의 철저함은 엄청난 성취를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그만큼 한순간에 무력해질 위험도 높아요. 고난과 역경을 잘 극복해왔던 자신의 능력이나 의지는 소용없어지고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거나 운을 빌어야 할 때 말이예요. 집단이나 조직의 일원으로 일하면서 겪을 수도 있고 사회제도적 측면에서 완강한 벽을 만날 수도 있죠. 중증의 병을 진단받거나 가족, 친구, 동료 같은 친밀한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도 계기가 됩니다. 코로나로 개인에 대한 사회의 통제가 강해지면서 무력감은 더 일상적인 차원에서 도사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무력감이 깊은 우울로 심해지기 전에 나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을 다시 쌓는게 필요해요.




   가끔 저와 대화하는 저 자신을 볼 때 웃음이 나곤 합니다. 때론 소리 내어 혼잣말 하기도 하거든요. 제일 자주 하는 말은 ‘괜찮아’, ‘할 수 있어’, ‘해보자’의 쓰리 콤보.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여 볼 수 있는 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이 자신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냉철하고 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내가 무력해져 있을 땐 더더욱 너그러운 사랑으로 품어줄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타인에 대해 한없이 인자하면서도 자신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냉담하고 엄격한 태도를 보이곤 하잖아요. 자신감을 잃었을 때, 의지를 다질 힘을 상실했을 때. 우리는 그 나약함을 비난하거나 채근할 게 아니라 도닥여줘야 할 거예요. 언제나 천하무적일 수 없잖아요. 약한 건 부끄러운 게 아니고 지쳤을 땐 충전하면 그만입니다.



   한 명상가의 말이 생각납니다. 세계에서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내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고 그 일들 자체를 바꾸려하는 건 어리석은 욕심이라고요. 적어도 그 일들에 어떤 감정을 느끼는 지에 대해서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분노할지 기뻐할지, 언짢아할지 즐거워할지. 나에 대해서, 나의 일들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반응하고 느낄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린 문제인 것 같아요. 그러니 조금 지쳐있고 덜 의욕적인 저에 대해서 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로 했습니다. 당장은 멋진 글을 쓰지 못하고 큰 과제들에 골골 대고 있지만, 성실하게 건강한 끼니를 챙기고 부지런히 집안 청소를 하는 저를 더 대견하게 여기려고요. 만약 여러분도 무력감에 처져 있다면 우선 첫마디를 건네보세요. 괜찮아-라고. 그리곤 조금씩 달래보는 겁니다. 대화를 시작해보세요.



***

 한가지 꼭 덧붙이고 싶어요. 우리 사회엔 결코 개인의 마음을 달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도 있다는 사실이예요. 개인적인 차원에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독이면서 극복할 수 있는 무력감이 있는 반면, 공정하지 못한 문화와 제도로 인해 수많은 개인들이 지속적으로 느껴야 하는 무력감도 있죠. 이런 구조적인 무력감은 무력감을 느끼는 개인이 자신을 달래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무력하게 만드는 원인을 바꾸어 해결해야 하는 사회적인 문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느끼는 무력감과 좌절감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따져보는 노력이 필요할 거예요. 만약 불특정의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이유로 무력감을 호소하고 있다면, 그건 우리가 서로의 고민을 겹치고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걸 의미할 겁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동생이 (다시) 떠났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