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더욱 활성화되길 바라는 새로운 여행문화
여행을 좋아하는 저는 여행의 장점을 관광과 비교해서 설명하곤 합니다. 관광은 여행상품(패키지 여행)으로 구매하거나, 정형화된 여행을 지칭할 때 씁니다. 관광은 짜여진 일정, 혹은 대다수의 관광객들이 하는 루틴을 따르지만 여행은 여행지에서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자신만의 경험을 만들어나가는데 의미를 둬요. 관광은 ‘보는 것’에 그치지만 여행은 ‘함으로써’로 완성된다고 말하는 차이도 여기에 있죠. 그런데 관광 외에도 여행을 구분 짓는 경계를 생각해본 적 있으세요? 저는 ‘봉사’가 떠올라요. 가령 정부의 코이카KOICA나 월드비전, 세이브더칠드런 등의 단체에서는 해외여행이 아닌 ‘해외봉사’라고 지칭하잖아요. 큰 범주에서는 여행에 속하지만 한정된 목적에 따라 구분해 지칭하는 걸 보며 이런 질문을 해본 적이 있어요. 그렇다면 여행은 본질적으로 봉사가 될 수 없는 걸까?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 떠나는 게 아니라 다른 공동체 혹은 지구를 돕기 위해 떠난다면 그 여정은 여행으로 볼 수 없는 걸까요?
저의 의구심에 멋지게 답을 준 건 바로 “세상에 E-RUN 트립” 입니다. 말그대로 새로운 이 여행 프로젝트는 제주관광공사에서 기획한 프로그램이예요. E-RUN은 ECO-RUN의 줄임말로 ‘친환경’과 ‘운동’이 결합된 형태란 걸 추측할 수 있겠죠? ‘제로를 외쳐봐’라는 슬로건을 단 이 프로그램은 제주의 친환경 여행, 지속가능한 관광을 목표로 해요. E-RUN에 참가한 크루는 용담에서 이호까지 아름다운 8.7km의 해안도로를 렌트카가 아닌 러닝(또는 걷기)로 완주하고요, 종착점인 이호테우해수욕장에서는 프리다이빙으로 해양 쓰레기를 수거하는 플로빙(ploving)을 하게 됩니다. 크루 모집 공고를 보고 저는 단번에 매료됐어요. 일년동안 꾸준히 러닝을 해오고 있었고 다이빙도 좋아했으니까요. 나의 건강, 나의 즐거움을 위한 레저가 제주의 환경에 보탬이 될 수 있다니요! 여행과 봉사가 자연스럽게 일치하는 획기적인 프로젝트인거죠.(@erun_trip) 이 프로젝트의 크루로 선정되면 제주행 편도 항공권과 당일 숙박을 제공받을 수 있고요, 친환경 제품들로 구성된 웰컴/리워드 키트를 받게 됩니다. 엄청난 혜택이 아니지 싶어요.
휴가철을 맞아 늘어난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 제주는 최근 많이 보도되었습니다. 특히 코로나로 카페와 음식점, 주점의 영업제한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밤늦게까지 먹고 마실 수 있는 장소로 해변을 찾았어요. 자유만 만끽하고 책임은 다하지 않은 이들이 남긴 쓰레기 사진은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결국 투기된 쓰레기는 주민들과 미화원들의 몫이 되어버리고 말죠. 다행히 제주의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개인과 단체들은 수시로 플로깅과 비치코밍, 플로빙을 하며 정화활동을 하고 있어요. 하지만 휴양차 놀러왔다가 금방 떠나는 이들은 환경을 더럽히고, 원주민들이 쓰레기를 처리하거나 환경파괴의 피해를 감수해야하는 양분된 구조는 문제적이죠.
“세상에 E-RUN 트립”은 이 구조를 무너트려요. 여행자로 제주에 와서 더 적극적으로 환경을 수호할 수 있게 하는 거죠. 러닝은 탄소배출을 줄이고, 플로빙은 해양정화에 보탬이 됩니다. 또 크루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미션들은 제주를 친환경적으로 여행할 수 있는 방식을 알려줍니다. 크루에게는 ‘푸른컵’이 제공되는데요, 푸른컵은 제주에서 대여해서 쓸 수 있는 다회용 컵입니다(https://pruncup.com/). 카페공화국이라 불리우는 제주에서 매년 관광객이 버리는 일회용컵은 6,300만개라고 해요.** 여행기간동안 테이크아웃컵 대신 푸른컵 텀블러를 사용하면 이 쓰레기를 크게 줄일 수 있죠. 또 제주에는 ‘지구별약수터’가 존재해요. 텀블러를 가져가면 무료로 식수를 받을 수 있는 카페나 상점이예요(bit.ly/3zD5FkT) 여행 중 물을 마시려면 어쩔 수 없이 생수를 구입하게 되는데, 옛날 우물터에서 물을 마셨던 것처럼 이 지구별약수터를 통해 플라스틱통을 소비하지 않으면서 물을 마실 수 있답니다. 그 외에도 제주 지역화폐인 ‘탐나는전’으로 제주의 ‘세상에 이런 맛집’ 찾는 미션이나, ‘세상에 이런 포토스팟’을 발견해 인증하는 등의 미션은 지역 상권과 생태계까지 챙기고 있습니다.
크루로 참여하면서 저는 제주를 건강하게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어요. 저의 건강과 제주의 건강, 나아가 지구의 건강을 함께 챙길 수 있는 여행 말이예요. 트립 당일, 제주도 외에 거주하는 크루들은 제주공항 내 운영 부스에서 일정을 시작하게 돼요. 그러나 원망스럽게도 제가 참여한 8월 11일, 제주엔 호우주의보가 내렸습니다. 새벽부터 비가 퍼부어 오전에 예정된 러닝은 취소될 수 밖에 없었어요. 너무너무 아쉬웠습니다. 오후에도 빗줄기가 멈추지 않아 걱정이었지만, 바람이 거세지 않았고 빗발도 약해져 다행히 플로빙은 할 수 있었답니다. 플로빙은 제주바다를 책임지고 있는 두 단체, 제주해양경찰청***과 플로빙코리아****와 함께 했어요. 사실 전 바다에서 스쿠버다이빙은 꽤 했지만 프리다이빙을 하는 건 처음이라(잠수풀에서만 해왔거든요) 긴장을 꽤 했어요. 그치만 강사님은 과도하게 중압감을 느끼지 말고 즐기면서 하라며 시종일관 유쾌하게 대해주셨습니다.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플로빙이 거창한 환경보호 활동이 아니라 재미있는 레저로 인식되면 좋겠다고요. 환경을 위한 실천이 굳이 거창하거나 엄숙한 사명감을 가질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그런 심리적 장벽이 무너지고 누구나 쉽고 즐기듯 행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이들이 함께할 테니까요.
환경문제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상 의식하기 어렵습니다. 나의 편리함과 효율성만 생각한다면요 집은 금새 배달음식이나 택배로 인한 일회용품으로 가득 찰 거예요. 그 비닐이나 플라스틱 대부분이 몇백년간 썩지 않으며 지구에 남아있게 된다는 걸 유념하지 않으면 자신의 소비를 문제 삼기 어렵죠. 그렇기 때문에 환경을 위해서는 문제의식이 필요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아는 만큼 실천하는 노력이 필요해요. “세상에 E-RUN 트립”은 환경친화적인 여행의 방법 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법을 소개해줍니다. 크루가 되어 받은 리워드는 “지구별가게 친환경 키트”였어요(@jigubyul_store). 이 키트에는 비닐 대신 사용할 수 있는 면주머니와 휴지 대신 사용할 수 있는 손수건이 있었구요. 고체치약과 고체비누도 포함되어 있었어요. 저는 액체샴푸 대신 고체샴푸를 써오고 있는데, 플라스틱 소비를 줄일 수 있는 또 다른 제품을 만나 반가웠어요. 또 웰컴키트로 푸른빛 광택의 예쁜 모자를 받았는데, 이 모자는 도담스튜디오(@dodamstudio_official)가 제주에서 수거한 플라스틱으로 만든 업사이클 상품이었습니다. 착한 소비를 할 수 있는 제품과 캠페인을 알게 되면서 이미 많은 이들이 제로웨이스트의 삶을 지향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관심만 기울이면 이들과 함께 친환경적인 삶을 만들어갈 수 있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실천하면 실천할 수록 세계는 환경을 위한 방향으로 변화해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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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컵 캠페인에 참가하고 있는 제주 도내의 카페 리스트는 이곳에서 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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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방해양경찰청은 유투브 채널을 통해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어요. 해양경찰의 활약과 함께 제주에서 빈번이 일어나는 해양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컨텐츠도 많답니다. 제주바다를 지키는 수호자의 역할을 환경의 문제까지 확장시켜 정기적으로 해양정화활동을 벌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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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빙코리아는 '1DIVE 1WASTE'를 슬로건으로 지속적인 해양정화활동을 벌이고 있는 단체입니다. 제주에서는 거의 매주 해변을 정해 참가자를 모으고 플로빙을 하고 있어요. 아름다운 바다를 지키고자 하는 다이버들의 활동에 동참하고 싶으신 분은 인스타 계정(@ploving_kr)이나 네이버카페(https://cafe.naver.com/ploving)에 가입하셔서 일정을 확인하세요! 다이빙을 할 줄 몰라도 해안가를 청소하는 플로깅 활동으로 함께 할 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