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생태계의 문제, <씨스피라씨>와 비건의 실천
중국 우한의 바이러스에 대한 뉴스가 나오기 시작 할 즈음. 그러니까 코로나라는 지구적 감염이 번질거라곤 예상도 하지 못했을 2020년 1월, 저희 가족은 태국 여행 중이었어요. 푸켓에서 일주일 정도 머무는 동안 저는 스쿠버다이빙 교육을 받았답니다. 이론과 실기 교육을 위한 하루, 이후 삼일간 바다로 나가 9번의 보트다이빙과 30m까지 내려가는 딥다이빙까지. 한번에 PADI 오픈워터와 어드밴스드 자격증을 땄죠. 다이빙을 하며 만날 수 있던 심해의 세계는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답던지요. 산호초는 지상의 화원보다 다채로운 색을 내뿜고, 온갖 진귀한 어류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은 경이로웠어요. 바다를 떠나고 싶지 않아하는 저에게 선생님은 늦기 전에 자주 하라고 조언했죠. 오래동안 푸켓의 바다에서 다이빙을 해온 자신에게는 하루가 다르게 바다가 파괴된다는 게 느껴진다고요. 한주 전까지 무성했던 산호초 터가 사막처럼 변하고, 사진에 단골로 등장했던 친근한 어류들이 언제부턴가 보기 어려워졌다고요. 아름다운 바다에 잠수하기 위해 다이빙 보트는 갈수록 항구에서 멀리 나가야 한다고도요. 선생님은 바다 깊은 곳에서 기후위기가 더 분명히 보인다며, 다이빙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의 걱정을 저는 이제 제주 바다에서 피부로 느낍니다. 지난주 저는 세상에이런트립 프로그램의 일부로 이호의 작은 포구에서 플로빙을 했어요. 플로빙(ploving)은 트렌드가 된 플로깅(ploging)처럼 다이빙을 하며 해양쓰레기를 건져올리는 활동을 뜻해요. 산소통에 호흡을 의지하는 스쿠버다이빙과 달리 숨을 참는 잠수 능력이 중요한 프리다이빙이 아직 서툰 저는 긴장을 많이 했어요. 그러나 긴장도 잠시, 평화로워 보이던 바닷 속 아래 쓰레기들을 보고 멍해졌습니다. 최대한 빠르고 많이 주워 올려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어요. 얼마나 오래 방치된건지 주워들면 바스스 부서지는 페트병이나 캔이 부지기수였죠. 바위틈에 낀 쓰레기나 어망 줄을 빼내는 건 숨을 오래 참는 일보다 몇배나 더 힘이 들었어요. 오랫동안 제주에서 플로빙을 해오신 강사님(플로빙코리아)은 비교적 깨끗한 곳이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그 사실만큼 놀라웠던 점은 또 하나 있었어요. 저희가 수거한 해양쓰레기의 절반 정도가 어업 쓰레기였거요. 작은 낚시찌부터 버려진 어망, 통발, 폐그물이나 스티로폼 등이 굉장히 많다는 게 저에게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언론에서 해양 쓰레기 문제는 대부분 여름 휴가철에 집중적으로 보도됩니다. 주로 바다를 찾는 관광객들의 무책임한 방치와 일회용품 사용을 문제 삼죠.* 물론 이 문제도 심각하지만 해양오염에 총체적으로 접근할 필요는 있는 것 같아요. 실제 해양쓰레기의 절반 가량은 어업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쓰레기거든요.** 해안 인근의 바다낚시 뿐만 아니라 먼 해상으로 떠나는 원양어선, 바다에서 이루어지는 양식업을 포함하는, 하나의 산업으로 어업을 조망하면 나오는 수치죠. 그렇다면 건강한 바다를 위해 일회용품을 마구 쓰고 버리는 개인에게 경고하기보다 어업에 종사하는 이들을 비난해야 하는 걸까요? 그러나 문제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어업인의 생계가 걸린 문제이니까요. 이들은 아마 바다 오염과 기후 위기를 가장 치열하게 체험하는 이들 중 한명일 거예요. 그러나 어떻게든 포획량을 늘려야 돈을 벌고 생존할 수 있기에 무분별한 어업과 투기가 지속되는 거겠죠. 제도적 차원에서도 농업, 산업폐기물 처리 규정과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는 한편 어업은 이에 대한 규정과 지원이 부족 하다보니 현장에서 관리가 안되는 측면도 심하고요.***
*최근 제주 바다 쓰레기를 다뤄 많은 이들을 경악하게 만든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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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어업 쓰레기 처리 문제의 복잡성을 잘 다룬 기사예요.
해양오염과 어류보호의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씨스피라시(seaspiracy)>(2021)에서는 오늘날의 구조적 문제를 잘 보여줍니다. 고래종 보호를 위해 포획 문제를 들여다보면서 감독은 결국 생태주의와 자본주의가 결탁한 모순을 발견하게 돼요. 산업화된 어업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진보된 기술과 현대판 노예제를 동원하고, 이들에게 친환경인증을 내어주는 환경 단체/기업은 반환경적인 어업활동에 눈감습니다. 미디어는 파괴되는 아마존 숲이나 멸종되는 지상의 야생동물들에 대한 극히 일부의 환경문제에 초점을 집중할 뿐,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더 절망적으로 붕괴되는 해양생태계에 대해선 거론하지 않죠. 감독은 이를 많은 이들에게 받아들여질 만한 수준에서 ‘환경’을 논하는 기업, 단체, 국가의 자본주의적 음모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지구의 지속가능한 생태를 지키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해양생물을 먹지 않는 것’, 즉 소비를 줄여 산업의 규모가 작아지는 것을 제안하죠.
제가 채식주의를 지향하게 된 데에는 2013년 동유럽 배낭여행의 영향이 컸어요. 약 3개월동안 여행하며 많은 비건들을 만났고 의식주를 함께 하면서 그 실천의 배후에 있는 믿음과 가치를 흡수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동안 엄격한 채식주의자였던 건 아니예요. 원래 육류를 좋아하지 않아 크게 의식하지 않아도 과일과 채식 위주로 먹었으니까요. 좋아하는 계란과 어류는 끊지 않았고 닭고기도 종종 먹었으니 폴로-페스코였다고 할 수 있겠네요. 저는 소화가 잘 되고 몸이 편안한 음식을 따르다보니 자연스럽게 채식을 행해왔어요. 그러나 동물권과 생태계의 문제를 진지하게 공부하면서 채식을 더 긴요한 실천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공장식 축산이 문제시 되는 만큼 어업의 남획과 양식업의 문제에도 관심을 돌려야 할 때 입니다. 육지의 두발, 네발 짐승만큼이나 해양 생물들도 민감한 감수성과 지능을 가졌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져 있기도 하구요.(일례로 넷플릭스의 <나의 문어 선생님>을 보세요!) 나의 한 끼가 지구에 당장 확연한 변화를 주진 못해요. ‘나 하나 안 먹는다고 별다를게 있겠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런 분들께 <씨스피라시>에서 인터뷰한 실비아 얼의 말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인류 문명에 변화를 가져오는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대부분의 것들은 누구 하나로부터 시작해요. 누구 ‘하나’요. 그리고 어느 하나가 모든 걸 할 순 없어요. 하지만 모두는 무언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큰 생각이 큰 차이를 만들어요. 그건 우리가 할 수 있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거울을 보고 잘 생각해서 행동에 나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