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호기심이 가득한 새해가 되기를
정확히 일년 전 오늘, 거실 한쪽 벽에 2021년의 달력을 붙였습니다. 1월부터 12월까지 365일의 날짜들. 백지 상태의 텅 빈 달력을 보며 앞으로 이 수많은 날들을 어떻게 채워나갈지 기대에 부풀었더랬죠. 전 구체적인 일정들은 구글캘린더에 시간대별로 기록하지만, 이 종이 달력에는 굵직하고 중요한 일들만 표기했어요. 그래서 이 달력의 특정 날짜에 무언가를 쓰는 일은 수많은 할일과 약속 중에서 내게 '정말' 의미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거르는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달력을 올려다보며 한번씩 삶의 우선순위를 되새겨봤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한해의 발자취가 달력의 빈칸들을 채웠네요.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의 역사를 훑어봅니다. 설레고 긴장하고 힘겨웠고 안도했던 제가 다시 돌아오네요.
그러나 이 성실하고 빼곡한 기록이 저의 일년을 설명하는데 충분한 것은 아닙니다. 이 글자들을 빗겨나 사이사이로 흘러간 순간들이 더 많지요. 내게 강렬한 영향을 끼친 어떤 사건은 바로 그러한 이유로 함부로 말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떤 언어로도 충분히 설명되지 않고 기록의 시도도 계속해서 실패하게 되죠. 그런 순간들을 저는 억지로 규정하려 하지 않아요. 오래 곱씹으면서 말간 언어로 제게 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어쩌면 무엇을 완전히 이해하고(이해했다고 자만하고) 받아들이는(수용했다고 착각하는) 과오를 지연시키면서 의미는 만들어지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다 안다고 맹신하는 순간 고민은 더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죠. 그건 어떤 일에 대해서도, 경험에 대해서도,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말이예요.
'충분히 이해되지 않고 설명할 수 없음'이 비관적인 회의주의로 귀결되는 건 아니예요. 전 그래선 안된다고 믿는 편입니다. '난 아직 잘 모르겠어'는 포기와 단념이 아니라 '계속해서 알아가겠다'라는 출발의 말이 될 수 있어요. 겸손하면서도 강단있는 용기의 언어가 되는 거죠. 나의 노력이 성공하지 못할지라도 이해로 나아가는 과정 자체를 의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 저는 폭력적인 정의와 맹목적인 확신, 단순하고 편파적인 설명체계들과 해석이 넘쳐나는 오늘날, 무지의 인정으로부터 시작하는 다정한 호기심이 우리를 구해줄 거라고 믿어요.
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사실 2021년'만'의 저를 평가하는건 조금 억지스러워요. 지난해의 저를 말하기 위해선 2020년, 2019년 .... 지금까지 축적된 저의 모두를 말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리고 2022년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21년의 저는 다르게 말해지겠죠. 과거는 과거대로 남아있지 않고 오늘과 내일에 의해 다시 쓰여져요. 끝난 것도 완성된 것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삶은 계속 이어지고 우리는 계속해서 나아갈 뿐이예요. 다만 어제와 오늘 같은 큰 구분점들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지나온 길과 나아갈 길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것 뿐이겠죠? 새해 첫날,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몹시 차요. 서늘함이 정신을 번쩍 들게 하지만 그만큼 맑은 햇빛이 집 안 깊숙이 들어옵니다. 새해에도 여러분의 건강과 행복을 빌게요. 무엇보다 다정한 호기심으로 자꾸 생각하고 고민하고 그쪽으로 몸과 마음이 기울게되는 것들이 많아지길 바라요. 그 시간들 속에서 한뼘씩 자라날 마음의 너비를 응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