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둘러앉아 마음을 모으는 구심점
유치하다고 웃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홀 케이크(Whole Cake)에 대한 로망이 있답니다. 그래서 생일이나 기념일,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 무얼하고 싶냐는 물음에는 늘 '케이크!'라고 외치곤 해요. 초콜렛, 아이스크림, 휘낭시에나 와플도 물론 좋아하죠. 그렇지만 홀 케이크에 대한 로망은 달달한 디저트에 대한 선호와는 달라요. 마음 내킬때 언제든지 사 먹을 수 있는 조각케이크와도요. 그러니까 제가 가진 홀 케이크에 대한 로망은 '맛'에 대한 게 아니예요. 홀 케이크와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로망인거죠. 혼자 사는 사람은 쉽사리 홀 케이크를 사먹을 엄두를 내지 못해요. 오래 두고 먹을 수 없어 오히려 난감한 골치덩어리처럼 여겨지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저에게 홀 케이크란, 여러 사람들이 둘러 앉아 함께 나누어 먹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전 이 따뜻한 온기가 서린 풍경을 좋아해요.
이 단란한 풍경의 기원은 유년시절의 기억에 있습니다. 가족의 중요한 기념일마다 커다란 케이크를 사들고 오셨던 아버지를 기억해요. 패스트푸드 뿐만 아니라 군것질도 엄격히 금했던 부모님 밑에서 자랐던 저와 동생에게 가끔 먹는 생크림 케이크는 얼마나 소중했는지요! 그런 날은 저녁에 아무리 맛있는 요리가 있어도 설레지 않았어요. 식탁 중앙에 케이크를 놓고 둘러앉는 순간만을 기다렸죠. 준비가 되면 케이크에 꽂은 초에 불을 밝히고 집 안에 등을 모두 끕니다. 축하 노래를 부르고 초의 마지막 불이 모두 꺼지는 순간 박수를 치며 환호하던 우리. 그 모습은 나이를 먹어도 가장 단란한 풍경으로 제게 각인되어 있어요. 그래서일까요. 어른이 된 저는 누군가의 생일이나 모임에서 축하할 작은 일만 생겨도 홀 케이크를 사겠다고 (심지어 주인공이 원하지 않아도) 고집을 부립니다. 축하와 기쁨의 마음을 한데 모을 수 있는 구심점으로 홀 케이크만큼 좋은건 없으니까요.
그러나 홀 케이크를 사는 것이 말 그대로 '쉽지'는 않다는 걸 전 잘 알고 있어요. 박스에 든 홀 케이크를 들고 만원 지하철을 타본 적이 있으세요? 한쪽으로 기울면 케이크가 망가지는걸 알면서도 밀려드는 인파와 그들의 거친 움직임으로부터 케이크를 안전하게 지키는건 불가능합니다. 케이크 상자와 함께 이리 저리 치이며 어찌나 서럽던지요. 더군다나 장시간 이동하면 케이크의 크림이 녹고 맛도 변하고 말잖아요. 케이크가 든 박스를 품에 꼬옥 안으며 그런 생각을 했더랍니다. 내 차가 있다면 훨씬 편했을 텐데. 그게 아니라면 내가 사는 동네가 번화가여서 집 앞에 케이크를 살 수 있는 빵집이 있다면 수월했을 텐데. 내 삶이 더 여유로웠다면 퇴근길 지하철에 내 몸을 욱여넣지 않아도 될 텐데. 제빵회사의 상술로 홀 케이크의 상징성이 만들어졌듯이, 실은 홀 케이크를 향유하는 데 있어서도 경제적 격차와 문화적 관념의 문제가 가로지르고 있죠. (한정 판매되는 호텔들의 고급 크리스마스 케이크들. 10만원이 훌쩍 넘는 가격에도 사전 예약조차 힘들다고 해요)
홀 케이크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영화 <꿈의 제인>(2016)이 생각나요. 오갈데 없는 아이들을 자식처럼 돌보았던 주인공 제인(구교환 역)이 딸기생크림 케이크를 사온 적이 있어요. 먹음직스러운 케이크를 반듯하게 여덟조각으로 나눴고, 제인과 두 아들, 두 딸들이 자신의 앞접시에 한 조각씩 덜었죠. 남은 케이크 세 조각을 바라보며 제인은 이렇게 말했어요. '부족하게 남았을 때에는 먹지 못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차라리 모두 먹지 않는 게 낫다'고 말이예요. (지난 브런치 글을 참고!) 영화는 이 말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삶을 지향할 때 고수해야 하는 태도를 강조했다고 생각해요. 둘러앉은 사람들의 명수대로 케이크를 조각낸다면 분배의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테지만, 홀 케이크가 언제나 '다수'의 공동체를 연결한다는 매개가 된다는 점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그건 가족이 될 수도 있고, 친구나 동료들의 집단이 될 수도 있고, 느슨한 인연들의 조합일 수도 있죠. 그런 공동체가 하나된 마음이나 하나의 소망으로 묶이는 데 있어 명망 있는 파티셰가 최고급 재료로 만든 값비싼 케이크가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동네 빵집에서 만든 투박한 장식의 케이크라도 촛불을 꽂고 둘러앉는다면 그것만으로 함께-라는 의미는 충족되는게 아닐까요. 먼 길을 오느라 한쪽이 무너진 케이크일지라도.
이번 크리스마스에 저는 소원대로 홀 케이크의 초를 붙이고 소박한 파티를 했어요. 제 로망을 알고 있는 좋은 사람으로부터 받은 큰 선물이었죠. 남은 케이크 일부는 조각내어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이후 몇 번에 걸쳐 먹었답니다. 홀 케이크는 그 날 그 자리에서 다 나누어 먹는게 최고라고 생각했지만, 며칠 지난 케이크를 혼자 먹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더라고요. 그날 함께 했던 여운을 다시 삼키는 기분이 들었어요. 어딘지 처량한 기분이 들기보단 먹은 양보다 마음이 두배로 불러오는 것 같기도 하구요. 이 맛에 벌써 기다려지네요. 또 온갖 핑계를 대며 홀 케이크를 사들고 모일 만남을요. 여러분은 언제 케이크에 둘러앉을 예정인가요? 촛불에 어떤 소망을 담아 입김을 불고 싶은지, 그 소망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로 누구를 떠올리는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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