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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Dec 31. 2021

가을에서 겨울로

글조각조각들을 하나로 잇기

8월과 9월 사이

비가 지치지도 않고 온다. 빗소리와 젖은 흙냄새가 좋아 베란다 문을 열어놓았다. 베란다 문턱에 걸터앉은 무릎 위로, 발등 위로 빗물이 튄다. 진절머리나게 덥던 여름도 결국 이 차갑고 미끈한 질감으로 기억될 것이다. 8월의 마지막 날인걸 알고 나는 더 오래 비오는 밤 곁에 머무는걸 택한다.


이번 여름 몇번의 인터뷰를 했다. 보통 인터뷰라 하면 회사 면접이나 성공한 인사들을 떠올리지만,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번도 자신의 삶이 누군가에게 들려질만 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 이들이다. 오히려 자신의 인생을 보잘 것 없고 부끄럽게 여기거나 철저하게 숨기고 도망쳐야했던 사람들. 오래 닫혀있던 그들의 마음의 문을 여는건 정말 어렵다. 대화를 승낙받기도, 힘들게 얻은 기회에서 질문을 던지는 일도 참 어렵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과 그들을 다시 고통스럽게 하지 않겠다는 다짐 속에서 나는 매번 줄타기를 한다.


한분은 대화가 시작되자마자 울음을 터트렸다. 잊고있던, 잊으려했던 기억을 꺼내는 그 즉시 와르르 무너지는 마음. 나도 같이 울었다. 아무 이야기도 듣지 못했는데 그 슬픔은 이미 와서 나를 울렸다. 몇시간의 인터뷰가 끝나고 그러셨다. 자신이 기억하는 과거가 선명하지 않고, 선후관계도 뒤죽박죽이라, 정확하지 않은 기억에 미안하다고. 안절부절하시는 그분께 나는 감사하다고 말했다. 기억의 정확성은 사실의 일치가 아니라 감정에 있다고. 진솔한 감정을 꺼내주셨으니 내게는 가장 정확한 기억을 나눠주신거라고. 나는 정말 그렇게 믿었다. 인생은 연도를 외워야 하는 국사시험지가 아니니까. 삶은 결국 이야기다. 그리고 이야기는 바로 그 삶을 살아낸 주인만이 말할 수 있다.


나는 그 수많은 이야기를 안고 있다. 계속 담아가고 있다. 갈수록 내 그림자는 길어지고 새벽엔 내가 아닌 꿈을 꾼다. 그러나 정작 내 안에 이야기보다 오래 남는건 그들의 감정이다. 그들의 열망과 믿음, 분노와 절망, 상실과 회한. 그래서 오늘처럼 잠들지 못하는, 먼 하늘을 오래 올려다보는 새벽이면 새어나온다. 차갑게 식은 채로 여전히 미끌거리며. 그 감정들을 이해해보려 애쓰는 어린 나와 이미 그것들로 몇번의 생을 산 것 같은 늙은 내가 나란히 밤을 샌다. 글을 쓰다 9월이 왔다. 아직 8월의 비는 그치지 않았고.



10월.

만나는 사람들마다 가을이 싫다고 했다. 그들이 말하는 가을은 다 달랐다. 백개의 가을이 있으면 백개의 미움과 원망과 미련들이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 8시경 전나무 사이로 난 길을 걷는다. 투명한 빛과 쌀쌀한 바람, 축축한 흙이 슬슬 데워지며 풍기는 낮은 향. 그순간의 감각만을 나는 가을이라 믿고 있다. 은행들이 짓이겨진 거리 위로 미처 익지 못한 감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쓸쓸하게 식은 풍경에는 곧 가을의 색들이 물들 텐데, 떨어지고 가라앉는 것들 사이로 그리워할 게 없다는 게 행운 같기도 하고 불행 같기도 하다. 대부분의 부재는 떠난 자가 아니라 남겨진 자에 의해 말해진다. 그래서 그 빈자리를 메꿔넣는 말들이 아름답기는 참 어렵다. 가을이란 계절을, 이 계절이 불러들이는 상실의 기억들을 따뜻하게 말할 수 있는 언어는 어디에 있을까. 가뜩이나 손도 시린데 말이야. 오가는 말에 다정한 온기가 서리기를. 짧은 안부를 주고받는 말도 한번 더 망설이게 된다.



11월.

가을은 엉덩이가 납작해지는 계절. 과제와 에세이, 논문에 하루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 할 일을 마치면 밤이었고, 자정을 넘기는 날도 많았다. 그런 새벽에도 옷을 단단히 껴입고 집을 나섰다. 조금이라도 걷지 않으면 하루를 살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깊은 밤의 불광천, 홍제천, 그리고 한강에 이르기까지. 고요하고 짙은 산책길. 드문 인적 속에 손을 맞잡은 부부나 연인을 만난 날에는 속도를 늦추고 그들의 다정한 뒷모습을 훔쳐보며 걸었다. 쌀쌀한 바람은 지켜지지 않은 오랜 약속들을 꺼내어 보게 했다. 그리움을 꾸역꾸역 밀어 넣었던 11월이 왔다. 어서 빛 속을 걸어야지, 다짐한다. 이젠 뜨거운 커피를 마신다. 양손으로 소중하게 머그잔을 감싼다. 꺼내지 못한 겨울옷을 대신해 온기가 있는 곳으로 몸을 힘껏 기울인다. 그럼 느껴진다. 아직 충분히 가을이라는게.



폭우가 내린 11월.

자기 전 베란다 문을 닫는걸 깜빡했다. 빗소리가 가깝게 들려왔다. 이불 안 깊숙이 몸을 웅크리면서 어째서 빗 속 한가운데 있는데 몸은 젖지 않는지 의아해했던 것 같다. 뒤척이는 새벽 내내 비는 꿈처럼 끈질기게 날 떠나지 않았고, 점점 멀어진다고 느꼈을 땐 어슴푸레 밝아지는 아침이었다. 출근을 서두르는 차 바퀴에, 개구진 아이들의 장화에 첨벙거리는 물웅덩이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나는 이불을 목끝까지 끌어올리고 불광천과 홍제천을 생각했다. 내천은 가을동안 가물어 있었다. 천이 말라 드러난 강기슭에서 억새와 덤불이 자라났고 금새 강폭의 절반을 뒤덮었다. 흐르기보다 고인 듯 보였던 물, 시간들. 천변을 걷는 새벽마다 마음이 안쓰러웠는데 오늘은 살아 숨쉬고 있겠구나, 상상을 하니 발가락이 간질간질했다. 예보된 비로 이번주 계획했던 여행은 다 취소됐지만 괜찮다. 콸콸 흐르는 천처럼, 굳이 떠나지 않아도 나는 멀리까지 뻗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그런 근거없는 용기가 솟는 아침이었다.




11월과 12월 사이.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기반없는 삶과 외로운 분투를 이야기하고 돌아오는 밤에는 가로등 아래도 컴컴했다. 우리가 함께 걱정한 모든게 '우리'의 것이었을까. 홀로 돌아오는 길에 스산한 질문을 품게 됐다. 그 또는 그녀는 사실 '나'를 염려해준건 아니었을까. 발 밑이 땅 끝으로 푹 푹 꺼졌다. 얼마 뒤, ‘맥없이 걸으면 오른쪽으로 몸이 기우는거 알아요?’ 메세지를 받았다. 그때. 뭐랄까. 내가 터덜터덜 걸어 어둠 속으로 멀어지는 뒷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아준 사람이라면, 비록 우리가 나누었던 얘기가 전부 우리는 아니더라도, 우리 사이에 도무지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놓여있더라도, 그런 마음의 사람이라면 언제라도 마주 앉아 우리 아닌 우리를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확인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엊그제는 처음 만난 분께,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동지를 만난 느낌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때 이상하게 눈물이 핑돌았다. 상대방이 표현하는 애정보다 나는 내가 상대방에게 품은 애정이 조금은 더 소중한 사람이다. 그러나 내가 내 안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언어와 힘에는 한계가 있다. 휘청거리는 매순간 나는 다정하고 용기있는 사람들로부터 힘을 꾸어 살아간다. 함께. 우리 아닌 우리는 아랑곳없이 나란히 걷는다.



12월.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면 먼 미래를 그리게 된다. 밤은 그런 공간이다. 나와 저편 사이에 놓인 간극을 삼켜 거리감을 잃게 만든다. 생각보다 가까울지도, 멀지도 모를 일들. 캄캄한 어둠은 아직 내가 읽어내지 못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래서. 그 아득한 느낌 사이로 걷는 산책이 좋다. 오랜 시간을 들여 멀리, 높게, 나아가는 거. 그런건 하나도 겁나지 않아. 다만 두려운 게 있다면 세상의 다정함이 사라지는 것. 매일의 우리를 살리는 건 다정한 말들이 아닐까. 잠은 잘 잤는지, 끼니는 챙겨 먹었는지, 아픈덴 없는지, 안부를 묻는 마음. 그래서 하늘을 바라보다가도 시선을 내리게 된다. 소중한 것들은 바로 곁에 있다. 굳이 거리를 가늠할 필요 없이, 단순하고 간결한 언어들로. 그 말들을 아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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