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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Jun 03. 2017

취한밤

유월의 일상

 어젯밤의 단절된 기억들이 퍼즐조각처럼 흩어져 있다. 보드라운 카페트에 볼을 문질렀다가, 캄캄한 옷장 속에 머리를 처박기도 했고, 답답함에 발길질도 했었다. 변명을 했을 것이다. 진심도 가벼운 무게로 던져졌을 것이다. 웃었던 것도 기억난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은 언제나 좋다. 분명 크게 혼났을 테고 나는 속으로 아차, 싶으면서도 뾰루퉁 했을 것이다. 어차피 편한 곳에서는 끝이 날리 없다. 나는 길게 누워 있었다. 쿠키에 박힌 초코칩 같은 것을 만지작거리면서. 


 기억하지 못하리란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거기엔 진짜밖에 쏟아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오래 묵지 않은 마음을 내뱉지 않는다. 그것이 비록 갓 빚어져 어설픈 말 속에 담길지언정. 생략할 때도 많다. 말 앞뒤에 소괄호, 중괄호들이 있다. 그래도 거짓말은 못한다. 진짜의 겉을 어설프게 두르는 말은 내 것이 못 된다. 그래서 난 최악의 플레이어다. 게임판에서 걸어 나온 지 오래다. 나는 말로 놀지 못한다. 내가 말을 할 때는 전해야할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날 밤 나는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 말은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다. 그 후에 몇 겹의 시간이 있었고 그 사이에는 수백의 말들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기다리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미래를 기대하지 말고 지금을 받아들여 달라는 말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지금을 인정할 수 없는 관계는 빈것이다. 그 빈 곳을 메우기 위해 많은 것을 억지로 미래에서 꾸어와야 한다. 그런데 미래도 동냥할 것 없이 가난하다면? 나는 길게 누워 있었다. 울지 않으면서. 


 신기하게 아침에 숙취가 없었다. 나는 겁이 많다. 작은 것에도 깜짝 놀라고 낯선 기척에 쉽게 움츠러든다. 나는 우울한 부류가 아니지만 불안에는 민감하다. 불안은 혼자일 때는 감당할 만한 것이지만,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치명적이다. 나는 늘 졌다. 그래서 빈곤한 미래와 텅 빈 현재와 너무 많은 과거로 살았다. 이기고 싶다. 한번은. 한강공원의 샛길로 강변 가까이 내려갔다. 그곳에서도 강물이 흐르는 소리보다 이파리가 떨리는 소리가 더 컸다. 강은 바람에 떠밀리고, 이파리는 떨어지지 않으려 애쓴다. 이겨보고 싶은데, 꼭 한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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