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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Jun 07. 2017

바라봄으로써 비울 수 있도록

뮤지엄 산 제임스터렐관  (1)


 나는 어딘가 좀 이상하다는 말을 듣는다. 일상적인 순간에 사이(pause)가 많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일시 정지’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때 나의 시선은 아무데나 걸쳐져 있다. 어디건 상관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것에도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생각조차 하지 않는 완전한 백지 상태가 된다. 가끔은 그런 백지에서 별안간 아주 먼 곳으로 생각이 미끄러지기도 한다. 어느 쪽이건 평범하지 않은 건 사실이다. 사람들은 낯설어한다. 이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어색한 시대가 되어 버렸으니. 


 남들은 유별나게 보지만 나는 ‘일시 정지’가 꽤 괜찮은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때로 너무 시끄럽고 교활하게 괴롭히며 거의 모든 면에서 끈질기기 일쑤다. 나는 어떠한가. 나는 너무 소심하고 악착같아, 내 안 또한 평화로움없이 번잡하다. 이 모든 소란으로부터 잠시나마 떨어져 나와 나를 비우지 않으면 몹시 부대낀다. 일시정지는 초기화처럼 비겁하거나 무책임한 게 아니다. 더 좋은 것들로 채우기 위해 비움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사고를 멈추고 마음을 비워야 명상이 시작되고 사색도 가능하다.


 그런데 내 능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내 안을 비우게 하는 작품이 있었다. 바로 뮤지엄산 제임스터렐관에 있는 스페이스디비전(Space Division) 작품이다. 그날은 비가 왔다. 스카이스페이스(Skyspace) 천장의 원형 창은 본래 하늘을 담아낸다. 비가 왔으므로 하늘로 열려있던 창은 닫히고 대신 인공조명이 들어왔다. 조명빛은 서서히 변한다. 빛의 변화로 공간을 뒤덮는 색채 역시 천천히 변화한다. 기울어진 벽에 등을 기대면 시선은 자연스럽게 천장을 향한다. 관람객 모두 아무 말 없이 천장을 응시한다.



Space Division의 변화하는 색채 (출처:Museum SAN 홈페이지)



 결코 짧지도 않고 길지도 않은 순간이었다. 감상이 시작될 때 내 옆에 앉은 여자는 무언가가 우습거나 혹은 어색해서인지 쿡쿡 거렸다. 사람들이 뒤척이면서 옷이나 가방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났다. 그러나 사람들이 침묵에 대해 의식하지 않게 되면서 모두가 천천히 고요 속으로 들어갔다. 빛의 파장이 짧아지는 속도로, 우리는 각자 내부로 침잠해갔다.  


 제임스 터렐은 예술작품으로써 일상에서 멀어진 명상과 사색을 불러들인다. 빛과 공간이라는 재료로 그런 시간을 빚어낸다.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은 그 시간의 목격자이자 동시에 주인공이다. 제임스 터렐은 정신적인 수련, 특히 명상을 중요시하는 부모님 아래서 자랐다고 한다. 그들은 퀘이커 신자였다. 퀘이커 교는 교회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도 명상을 통해 내적인 빛을 발견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터렐의 작품은 빛의 물성뿐만 아니라 빛이 인간을 고양시키는 초월적인 힘이라는 믿음에까지 기반한 게 아닐까. 그리고 그 빛을 마주하는 방식은 고요한 응시여야 함을 그는 작품을 통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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