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mi Jun 07. 2017

나는 잠깐 무한 안에 있었다

뮤지엄 산 제임스터렐관 (2)


 간츠펠트 효과(GanzFeld Effect)가 있다. 독일의 심리학자 볼츠강 메츠어가 완전한 영역이라는 의미의 독일어 간츠펠트를 따다 규정한 효과다. 인간이 시각자극을 완전히 차단됐을 때 환각을 보게 되는 현상이다. 시각자극이 더 이상 입력되지 않을 때 뇌는 감각의 절대적인 박탈이 일어나지 않도록 거짓 신호를 만든다. 이 효과는 고문의 방법으로 악용되기도 했지만, 이를 역으로 이용해 무의식이나 초의식, 영적인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제임스 터렐관에는 ‘Ganzfeld’ 작품이 있다. 간츠펠트 효과와 일부분 연관이 되어 있다는 걸 작품의 제목에서 알 수 있다. 관람객은 계단을 올라 사각형의 공간 안으로 들어간다. 계단 아래서 올려다봤을 때 벽에 걸린 액자처럼 평면으로 보였던 창이다. 반신반의하며 그 공간으로 발을 들였을 때는 더욱 놀라운 경험이 시작됐다. 마치 그 공간이 무한히 펼쳐져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것이다. 큐레이터가 안내하는 대로 두 손을 관자놀이께에 대어 시야를 제한하면 무한은 더 확실히 느껴졌다. 무작정 걸으면 인지하지 못한 벽에 부딪쳤다. 당황스러웠다. 어디까지고 걸어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큐레이터는 공간 입구를 두르고 있는 LED 조명에서 나오는 빛으로 일어나는 착시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빛이 변하면서 공간 전체의 색도 서서히 변했다. 다른 색으로 물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도 무한의 공간이 주는 신비를 더해주었다.나는 그곳 어디쯤엔가 멈춰 섰다. 무한, 영원은 그동안 나에게 이론적인 개념이었다. 논리적 전개에 의해 상정되던 개념이든, 필요에 의해 차용된 초월적인 속성이든 간에 내가 경험하거나 체험할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것이 내 눈 앞에 있다. 나는 무한 한가운데 서 있었다. 



Ganzfeld (출처: James Turrell's official site)




 삶을 살아오면서 무언가에 완전히 ‘압도’되었다는 느낌은 받기 어렵다. 매우 놀라거나 처연하게 슬프거나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기분이 좋을 수는 있어도 온 몸의 감각과 사고가 옴짝달싹 못하는 경험은 쉽게 오지 않는다. 간츠펠트 작품 속에 있던 몇 분의 시간이 나에겐 그랬다. 착시였지만 시각적으로 무한과 영원을 ‘보았다’는 건, 마치 신의 현현을 목도한 것처럼, 아름다운 충격이자 신비였다. 공간의 무한처럼 나 역시 닿을 수 없는 멀리까지 존재했다가 온 느낌. 관람이 끝나고 올라왔던 계단을 다시 내려가는 나는 아마 이전의 나와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당장은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히 그렇게 생각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라봄으로써 비울 수 있도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