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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Jun 08. 2017

7. Time for Chopin

폴란드 바르샤바

 나는 젖은 우산을털며 평범한 철제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입간판이 없어 불안했는데, 문틈으로 피아노 선율이 새어 나왔다. 제대로 찾아온 것 같았다. 카운터의 여직원이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Time for Chopin입니다.”


 콘서트가 시작할때야 알게 되었다. 이 여직원은 피아니스트이자 Time for Chopin 프로젝트를 이끄는 대표라는 사실을.



 쇼팽박물관과 쇼팽 콘서트를 놓고 끝까지 고민하는 바람에 나는 온라인으로 미리 예약을 하지 못했다. 조심스럽게 오늘 콘서트의 티켓을 살수 있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남은 좌석이 있다며 'Lucky!'라고 외쳤다. 나는 바로 티켓을 샀다.그녀는 예약석을 피해 원하는 곳에 앉으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중간 휴식시간에 음료를 제공하는데, 주스와 폴란드 전통 위스키(꿀을 섞은) 중 무엇이 좋겠냐고 물었다. 나는 당연히 술을 선택했다. 



 콘서트가 시작하기까지 30분이 더 남아있었다. 로비홀에서는 소박하게 사진전이 진행 중이었고,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콘서트홀 무대와 이어진 회랑이 있었다. 회랑 입구 문이 열려진 사이로 피아니스트의 뒷모습이 보였다. 리허설 중이었다. 공간 안에 울리던 음악은 오디오가 아니라 그의 연주였던 것이다. 텅 빈 관객석이 무색하게 그는 열정적이었다. 나는 비밀을 공유하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그 순간을 함께 했다.   








 공연은 6시 정각에 시작했다. 피아니스트는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인사를 하고 피아노 의자에 앉아 양손을 건반 위에 올려놓았다. 40여개의 의자가 놓여진 콘서트홀은 맨 앞줄과 무대와의 거리가 1m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공간이었다. 그가 크게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까지 들렸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첫 음을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눈을 감았고, 곧 연주가 시작됐다. 무릎 위에 놓여있던 내 두 손이 서로를 꼭 맞잡았다. 



 무대에는 정원으로 난 창이 3개 있었다. 창을 통해 한바탕 내린 비로 말갛게 씻겨진 햇빛이 들어왔다. 바깥 세상의 잡다한 소음도 새어 들어왔다. 새의 지저귐, 차도를 가르는 자동차 바퀴의 마찰음, 문득 거세진 바람이 창틀을 흔드는 소리. 콘서트홀 안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몸을 뒤척일 때마다 의자가 삐걱대고 코트가 바스락거리며 구겨졌다. 이런 평범한 소리들은 음악을 방해하지 못했다. 되려 그 소음의 겉을 문지르며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음악에 더 감탄하게 되었다. 




그 날 가장 좋았던 곡, Mazurka in B flat minor, Op.24 No.4






 나는 공연이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이렇게 썼다. 

“곡이 가만히 내 가슴에 손을 대고 밀어냈다. 할퀴지도, 두드리지도, 잡아당기지도 않았다. 정말 지그시, 저편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나는 클래식공연을 좋아하지만 음악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쇼팽은 어려서부터 천재적인 소질을 인정받은 음악가로, 특히 피아노곡을 많이 남겼으며 결핵으로 30세에 요절했다는 정도 밖에 알지못한다. 그의 모든 작품을 들어보지 않았지만, 적어도 들어봤던 곡들에서 나는 섬세한 낭만을 느꼈다. 피아니스트 역시 곡이 끝나도 허공에 뻗은 오른 손으로 퍼져나가는 잔음을 쓰다듬곤 했다. 아름다운 1시간의 공연으로, 나에게 바르샤바는 확실히 쇼팽의 도시로 새겨졌다. 






아름다운 공간




Time for Chopin

구시가지에 있는 작은 홀은 매일 저녁 6시, 쇼팽을 기억하기 위한 피아노 리사이틀을 연다. 피아니스트와 프로그램은 매일 바뀐다. 최대 40여명이 관람할 수 있는 작은 규모이므로, 온라인으로 미리 예매하는 것이 좋다. 홈페이지에서는 예약은 물론, 일자 별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와 프로그램을 확인할수 있다. 티켓은 60PL. 한화로 20,000원이 채 안 되는 돈으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콘서트는 약 1시간 동안 이뤄지며 10분 정도의 인터미션이 존재한다. 그때는 음료를 마시며 담화를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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