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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Jun 12. 2017

8. P+W=?

폴란드 바르샤바

출처: Wikipedia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폴란드 이곳 저곳에서 자주 보이는 기호가 있다. 알파벳 P인데, 그 끝은 양갈래로 휘어 있다. 끝 부분은 영락없이 닻과 닮은 꼴이다. 처음에는 그저 폴란드 유명 브랜드의 귀여운 로고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실은 폴란드 저항의 역사를 담고 있는 상징이었다. 이름은 ‘Kotwica’. 폴란드어로 닻을 뜻한다.    


 2차 세계대전 동안 폴란드는 독일군과 소련군에 의해 분할 통치되었다. 소련군은 오늘날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영토로 편입된 폴란드 서쪽 일부를 관할했다. 나머지는 모두 독일 치하였다. 독일은 자국 국경과 맞닿은 도시는영토로 합병시키고, 수도 바르샤바를 포함한 중심부는 보호령 아래에 두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독일은 그 땅에서 무수한 전범을 자행했다.


 폴란드는 당연히 독립을 열망했다. 그리고 투쟁했다. 독일군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지하조직이 결성되었다. 이 조직은 세계최대 규모의 지하 군대로,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독립운동을 벌여왔다. 1939년 12월, 바르샤바 인근에 Wawer에서는 이 조직의 일원이 독일 하사 두 명을 공격했다. 독일군은 이를 엄중하게 처벌하고 폴란드인들에게 경각심을 주고자 했다. 그들은 이틀간 마을주민 107명을 사살했다. 크리스마스 다음날이었다. 독일군이 폴란드에서 자행한 첫 대규모 학살이었다.



 1940년 크리스마스 시즌을 기점으로 바르샤바 도시의 벽에는 "Pomścimy Wawer" 문구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We will avenge Wawer’, 즉 Wawer의 복수를 하겠다는 뜻. 이 문구는 곧 첫 알파벳을 딴 P W로 줄여쓰였다. P W에는 그 이후로도 여러 의미가 더해졌다. 지하군대의 상징을 공모하는 콘테스트에 Anna라는 소녀가 닻의 모양을 본떠 PW를 결합시킨 로고를 만들어 냈다. 이 로고가 선정되면서, 이후 'Kotwica'는 폴란드의 저항정신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PW의 다양한 의미들. 실제로 Free Walking Tour 가이드가 PW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을 때 지나가던 폴란드 아저씨들이 서로 다른 의미를 원조라고 주장하며 끼어들었다.




 독일군은 폴란드 내 모든 교육기관을 폐쇄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조차 그들이 할 수 있는 형태로 독립을 위해 노력했다. 그래피티가 시작된 것도, 저항에 대한 의지가 그래피티와 함께 폴란드 전역에 빠르게 퍼져나갈 수 있던 것도 그들의 활약 덕분이었다. 


 구시가지 성벽에는 소년병사를 기리는 동상이 있다. 군모를 어색하게 쓰고 헐렁한 군복을 걸친 채 총을 들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무장할 수 있는 소년병은 없었을 것이다. ‘Kotwica’를 볼 때마다 폐허가 된 도시의 어둠 속을 가로질러 뛰어가는 아이들이 그려진다. 제대로 먹지 못해 야왼 손엔 석탄이나 석회가루가 들려있었을 것이고, 숨을 죽인 채 골목의 벽마다 새긴 건 그들의 염원이었을 것이다. 전쟁터에서는 전쟁 아닌 삶이 없었을 거다. 이 로고를 만든 Anna는 43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었다고 한다. 독립을 염원했고 투쟁했던 수많은 어린 전사들을 떠올리면 마음 안쪽이 아렸다.  




구시가 성벽 밖, 소년병사의 동상
Reduta Bank 건물 앞 Kotw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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