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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Jul 03. 2017

11. 알고도 속아줘요, St. Mary 성당 (2)

폴란드 크라쿠프

 사실 왕권을 둘러싼 형제의 비극은 역사에서는 흔한 소재라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았을 거다. 그렇다면 이제 첨탑 모양의 북쪽 타워를 더 자세히 알아볼 차례다. 진짜 이야기가 서려있는 곳. 


 매 시각 크라쿠프 구시가 광장에는 사뭇 비장한 트럼펫 연주가 울려 퍼진다. 연주는 성당 북쪽 타워 꼭대기층에서 들려온다. 녹음된 연주곡이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다. 창 하나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연주자가 직접 연주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트럼펫은 4방위를 향해 차례대로 연주되므로, 정각에 시작한 연주는 늘 네 번 울려퍼진다. 왕과 상인, 관광객과 시민을 위해 각각 연주했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라 한다. 정오에는 크라쿠프 라디오 방송도 트럼펫 연주를 내보낸다고 하니, 이 작은 도시에서 St. Mary's 성당의 트럼펫 연주가 갖는 의미가 얼마나 큰지 가늠할만 하다.  


 그러나 이 연주에는 조금 이상한 점이 있다. 귀 기울여 연주를 감상하든 사람들은 당황해한다. 멋진 연주가 중간에 불현듯 끊기기 때문이다. 멜로디 중간에서 멈추기 때문에 이 이상한 마침은 누구나 눈치챌 수 있는 정도이다. 그런데 연주자는 태연하게 창 밖으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사라진다. 왜일까?


성당의 트럼펫 연주자 (사진 출처:Polish wikipedia)
성당의 트럼펫 연주자 (사진 출처:Polish wikipedia)



 어느 밤. 모두가 평화롭게 잠든 크라쿠프에서 깨어있는 유일한 사람은 성당 Watch tower에서 야간 순찰을 맡고 있는 병사. 오늘밤도 어제와 다를 바 없이 고요하게 지나가고 있다고 믿고 싶었지만, 그는 어둠 속에서 의심쩍은 그림자를 발견한다. 새벽에 기습공격을 노리며 몰려오는 몽골 군대였다. 그들은 대군을 이끌고 도시 성곽 가까이까지 다다라있었다. 크라쿠프 병사는 적들의 침입을 알리기 위해 다급하게 트럼펫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발각된 몽골군대는 명사수를 대열 앞으로 불러낸다. 사수는 첨탑 위 병사를 신중하게 조준하고, 날아간 화살은 정확히 그의 목에 박혔다. 어둠 속에 울리던 트럼펫 연주는 중단됐다. 하지만 서둘러 방어태세를 갖춘 크라쿠프 군대는 몽골 군대로부터 도시를 지켜낼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 크라쿠프는 도시를 지켜낸 용감한 병사를 기리고자 했다. 도시의 평화를 상징하는 트럼펫 연주는 그 후로도 그 밤, 적의 화살을 맞고 멈춘 연주처럼 끊기듯 완성된다. 


 트럼펫 연주의  형제의 싸움보다 믿음직한 이야기다. 크라쿠프는 역사적으로 몽골과 터키의 침략에 시달려왔고, 성당의 한쪽 타워도 도시의 Watch tower로 개조해야 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거기다 목숨을 바쳐 도시를 수호한 병사의 애국심이라니. 낭만적이다. 사람들의 가슴을 끓어오르게 하기 충분하다. 






 이 이야기는 실화일까? 아쉽게도 확실하지 않다. 분명한 사실은 이 이야기가 미국작가가 쓴 단편소설의 내용이라는 점이다. 폴란드를 여행했던 미국 일간지 기자는 여행 중에 감동깊게 들었던 이 이야기를 소설로 구성해 1929년에 발표했다. ‘The Trumpeter of Krakow’ 라는 제목의 소설은 아동문학상을 받으며 유명해졌다. 크라쿠프의 트럼펫 연주가 유명해진 것도 비슷한 시기. 폴란드 사람들은 소설이 역사적 사실보단 허구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하고 있다. 노란우산 Free Walking Tour의 가이드도, 내가 사귄 폴란드 친구들도 대부분 그랬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해서 연주에 얽힌 이 이야기들을 반복해서 하고 있다. 왜?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하니까. 이야기에는 건조하고 무뚝뚝한 대상에도 감정을 이입하게 하는 힘이 있다. 유럽에는 수많은 성당이 있고, 한 도시에 못해도 서너개의 성당은 명소로 추천된다. 관광객은 엇비슷하다고 여겨지는 그곳들을 스쳐가고 훗날 기억에 남겨지는 인상도 어느 곳 하나 선명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가 있다면, 똑같은 첨탑일지라도 더 뾰족하게 보이고 평범한 연주도 비범하게 들린다. 행복이나 슬픔, 공포- 어떠한 형태이든 간에 이야기가 마음을 조금이라도 흔들게 되는 순간, 그 곳은 특별해진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도 알면서 속아줄 이유는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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