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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Jul 16. 2017

12. 바벨의 용

폴란드 크라쿠프

 비스와강(Vistula river)은 크라쿠프 시내를 동서로 관통하며 흐른다. 바벨 언덕(Wawel Hill)은 마치 비스와강의 호주머니에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강이 에워싼 언덕 위 성은 도시를 수호하기에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유럽의 모든 고성이 그러하듯, 바벨 성의 성곽도 도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선사한다. 강물로 잔잔히 섞여 들어가는 노을빛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 역시 고요한 평화에 서서히 잠겨간다.


 그런데 서쪽 성곽에서 넋 놓고 석양을 바라보는 순간에도 성곽 아래에선 작은 소란이 인다. 바로 그곳에 동굴이 있기 때문이다. 우루루 모여든 관광객들이 동굴 앞 조각상이 내뿜는 화염에 박수와 환호성을 보낸다. Smocza Jama, 폴란드어로 용의 동굴이라 칭해지는 그 곳이다. 높이는15m, 총 길이는 275m여 된다는 이 동굴에서 전설의 바벨 용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서쪽 성곽 아래에 보이는 바벨 용의 조각상. 조각상은 커다란 석회암석에 올라서 있다. 



 바벨 용에 대한 설은 여러 가지이지만, 가장 유명하고 보편적인 전설은 제화공과 관련된 이야기다. 포악하고 욕심 많은 용은 시도 때도 없이 민가를 공격했기 때문에 나라의 가장 큰 근심이었다. 용은 왕에게 매달 어린 처녀를 먹잇감으로 바치면 애꿎은 백성들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나라의 평화를 위해 왕은 꾸준히 그 약조를 지켰고, 어느 날 이 나라에 용에게 바칠 처녀가 자신의 딸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용을 무찌르는 사람은 신분과 나이를 막론하고 공주와 결혼을 시킬 거라고 공표한다. 어여쁜 공주와 왕권에 혹한 이웃의 수많은 용맹한 기사와 공작들이 도전했지만 모두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좌절한 왕 앞에 누추한 행색의 제화공 Skuba가 찾아왔다. 그는 신발 재료였던 양가죽으로 양고기처럼 위장한 유황을 동굴 앞에 놓아둔다. 고기 냄새를 맡고 미끼를 냅다 삼킨 용은 내장이 불타는 느낌에 동굴에서 나와 허겁지겁 강물을 들이킨다. 그러나 강의 물 절반을 마셔도 불은 꺼지지 않았고 결국 용은 배가 터져 죽는다. (용이 비실거리는 사이 제화공이 창으로 확인사살을 했다는 말도 있다.) 영리한 제화공은 공주와 결혼을 하고 나라의 새로운 왕이 되어 행복하게 산다. 끄-읕! 


 믿거나 말거나인 이 전설은 16세기에 기록된 동화. 구전으로 내려온 전설은 다양하지만, 12세기 기록에도 이미 바벨 용이 등장한다고 하니 풋내나는 전설은 아님이 분명하다. 전설의 주인공은 여전히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하나는 1970년대  동굴 앞에 설치한 바벨 용의 청동 조각상이다. 전설 속 포악한 성질에 비해 조각상으로 되살아난 용은 깜찍하게 보인다. 조각상은 몇 분 간격으로 입에서 불을 내뿜는데, 관광객에게는 두려움은 커녕 귀여운 애교로 느껴진다.  


 또 하나는 바벨 성당입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입구 벽에는 커다란 상아색 뼈가 체인에 매달려 있다. 이 뼈는 중세시대에 용의 동굴을 발굴하면서 발견한 것을 매달았다고 전해진다. 정말 용의 뼈인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지만.  

성당입구 왼편 벽에 걸려있는 진회색의 뼈가 보이시나요? 폴란드 친구는 아마도 매머드의 뿔이지 않을까 예측한다고 하더군요.


 이 전설의 동굴 안으로 들어가보는 것도 가능하다. 단, 4월 말부터 10월까지만 입장을 허용하고 있다. (4월 중순에 방문한 나는 아쉽게도 포기해야 했다) 오전 10시부터 7시까지 개방되며, 입장료는 단돈 3zt. 티켓은 동굴 입구 앞 티켓머신이나 관광안내센터에서 살 수 있다고 한다. 동굴은 17세기부터 내부 정비 후 일반인의 입장이 가능했었다고 한다. 90년대에 다시 재정비하여 현재까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내려가는 계단이 좁고 가파라 유모차나 휠체어의 접근은 불가능하니, 적어도 미끄러지지 않는 밑창의 신발을 신고 가는게 좋을 것 같다. 


>동굴 입장과 관련된 정보는 아래에서 더 자세히 확인할 수 있어요.

http://wawel.krakow.pl/en/index.php?op=50


동굴 내부 (출처:wawel.krakow.pl)
귀엽게 불을 내뿜는 바벨용 조각상 (출처: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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