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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Aug 14. 2017

우연한 여행

<AROUND TRAVEL> 기고글





우연한 여행



 생각해보면 계획한 그대로 진행되는 여행이란 없다. 길 위에는 늘 변수가도사리고, 의외의 사건들이 숙명처럼 일어난다. 어떤 이들은 공들여 짠 계획이 어그러지는 상황에 분노하고, 다음 여행에서는 애초에 계획 따위는 짜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한다. 완벽하게 파악할 수 없고 통제 불가능한 여행의 본질이 불안을 수반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여행의 진짜 매력은 그런 의외의 상황을 만나는 데 있다. 감히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이야기의 등장인물이 되는 것. 상황에 대처하면서 미처 몰랐던 ‘나’를 대면하는 것. 그 변화를 축적시키면서 어제와는 다른 삶을 만들어가는 것.


 크로아티아의 섬 브락Island Brac에 대해 알게 된 건 보스니아Bosnia에 머무를 때였다. 숙소 주인 올리버Oliver씨는 아드리아 해의 아름다움을 보고자 한다면 크로아티아의 도시 스플리트Split보다 그 인근의 섬에서 더 잘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브락의해변은 크로아티아인들이 가장 아끼는 바다 중 하나라며 그곳을 체험할 기회를 어이없이 날려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유럽 남부에서 시작해 동부로 이어지는 긴 여행 중이었던 나는 현금이 바닥난 가난한 여행자였고, 그의 조언은 사치였다. 그런데 그 사치는 뜻밖의 우연으로 실현되었다. 스플리트 숙소의 호스트 오십Osib 덕분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지독한 감기 몸살에 시달리고 있었다.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통증이 9년간 사귄 여자친구와의 이별한 잔해라는 걸 알게됐다. 다음 도시로 떠나기 전날 밤까지 증세가 나아지지 않은 그와 나란히 앉아 꿀물을 홀짝이며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스플리트항의 기묘한 하얀색을 묘사하면서 브락 섬에 대한 풍문을 살짝 옮겼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가 그 섬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놀라워했다. 알고보니 그는 브락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였다. 지금은 가족이 크로아티아 전역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지만 그의 생가와 가족 별장은 그대로 남아있다고 했다. 그는 이마를 짚어 미열을 확인하면서 신중하게 말했다. 



거기라면 날 낫게 해줄 것 같아.함께 가지 않을래?








*이 글은 2015년 <AROUND TRAVEL>(1권)에 기고한 글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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