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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Aug 15. 2017

스미듯이결혼

엄마 아빠의 소박한 결혼 이야기를 책으로 담다

 엄마 아빠는 1985년 1월 27일 제주도 서귀포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2015년은 부모님이 결혼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그간 어버이날보다도 결혼기념일을 더 중요하게 챙겨왔던 나는 특별한 선물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스미듯이결혼> 입니다. 


 엄마 아빠의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엮어 작은 책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내게는 이야기를 엮을 씨줄과 날줄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만나게 된 일화는 알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이야기가 되긴 얄팍한 것이었습니다. 아빠가 사랑에 빠졌던 엄마의 모습은 어땠는지, 아빠의 어떤 면이 엄마로 하여금 결혼을 포기하지 않게 만들었는지. 엄마 아빠가 나를 낳고 기른 시절의 이야기는 많이 들어도,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일을 나는 거의 모르고 있었습니다. 


 한번 시작된 궁금증은 더 많은 질문을 낳았습니다. 부모님과의 물리적 거리 때문에 질문들은 쉽게 건네질 수 없었고, 답 또한 쉽게 말해지지 못했지요. 나는 질문을 차곡차곡 모아 설문지를 만들었습니다. 질문이 많아 소테마로 나누어 정리해야 했지만요. 공유 페이지로 설문지를 업로드하고 인터넷 상으로 엄마 아빠의 답변을 받았습니다. 엄마 아빠는 귀찮은 티를 숨기시진 않았지만 딸에게 직접 연애사를 털어놓는 것보다는 낫다고 위로하는 눈치였습니다. 



페이지 5장, 약 20 여개의 질문이 담긴 설문양식. 나는 철저하게 서문에서 필요할 시 추가 질문이 이어질 수 있음을 예고했다. 이 예고 같은 경고를 한 것은 현명했다. 



 엄마와 아빠의 답이 얼추 완성된 형태의 이야기이기를 바랬던 건 나의 욕심이었습니다. 단답형이거나 오래전이라 기억이 잘 안난다는 대답들은 나의 빈약한 재료를 상기시켜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짧은 대답 속에는 반짝 반짝 빛나는 단서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집요하게 물어 안쪽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은 나의 몫이었습니다. 딸과 처녀 총각 시절을 회상하는 순간에 엄마와 아빠는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기도 했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거만해지기도 했습니다. 가끔 아련한 시선으로 상대방을 바라보거나 뜻밖의 침묵을 지키며 생각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그럴때면 나는 억지로 더 묻지 않았습니다. 30년이 지나 그 순간 그 감정으로 잠시 돌아갈 수 있는 것만으로 내가 이 책을 만드는 의미가 달성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굳이 이야기로 남겨지지 않더라도 말이죠. 



 나는 두 달 넘게 조금씩 이야기를 다듬었고 작은 책자는 30주년 결혼기념일 선물로 부모님께 안겨드릴 수 있었습니다. <스미듯이결혼>이란 제목은 엄마 아빠의 인터뷰 후에 지었습니다. 극적인 계기나 특별한 사건 없이 자연스럽게 엄마 아빠에게로 왔던 결혼의 형태를 닮은 제목이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빚은 소박하고 은은한 아름다움을 상징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지요. 한때 이 책을 독립출판으로 내볼까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게으름때문에 그러지 못했습니다. 40주년에는 2탄으로 엄마 아빠의 신혼과 출산 이야기를 엮어 내볼까 해요. 육아, 교육, 은퇴 등 쓸 수 있는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니 50주년, 60주년까지 제 곁에 오래 오래 계셨으면 하는 마음이구요. 






부모님께 드릴 특별한 선물을 고민하고 있다면 적극 추천하고 싶어요. 어떤 이야기가 쓰이고 어떤 책이 만들어지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엄마 아빠로부터 이야기를 들으려는 시도 자체가 이미 선물이 되거든요. 부모님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말이지요. 비슷한 결심을 하시고 도움이 필요하다면 저를 불러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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