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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Aug 12. 2017

겨울의 풍경

<싱클레어> #54 

 

 아마도 14살로 넘어가는 겨울이었을 것이다. 아빠의 은색 소나타와 함께 우리 가족은 완도행 여객선에 올랐다. 2등 객실 마루에 깔린 카페트의 꺼끌꺼끌한 감촉을 기억한다. 겨울의 풍랑은 사납지 않았다. 벽에 등을 기대고 창 밖을 바라보았다. 파도의 높이와 선박의 흔들림간의 도식을 만들고 싶었다. 얼마 지나지 않자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눈을 감으면, 느껴지는 출렁임만으로 바다를 그릴 수 있었다. 


 겨울여행은 그런 식이었다. 안에서 밖의 기척을 잡으려는 시도들. 우리는 여행 대부분의 시간을 차 안에서 보냈다. 이동거리가 길었고 추위도 한몫을 했다. 그래서 기억 속에 남은 풍경에는 거의 하얀 김이 서려 있다. 차 안에서의 시선은 조금 무심했다. 빠르게 멀어지는 풍경에 마음을 두긴 어려웠다. 멀어지도록, 부예지도록, 잊혀지도록, 내버려둘수밖에.   


 차에서 내려 밟는 땅에는 언제나 눈이 쌓여있었다. 온통 하얬다. 우리 가족이 찾아간곳은 산 깊숙한 곳의 절, 외딴 기념관 등 인적 드문 장소였다. 그곳에서 매번 가장 순결한 눈을 만났다. 우리가 첫 발자국의 주인이 되곤 했다. 눈밭에 발을 디딜 때 난데없는 깊이에 놀라 휘청거리기도 했다. 눈이 불청객에게 농을 건네는 방법이었다.  


 눈 쌓인 후미진 풍경에는 늘 나무가 존재했다. 화려하고 풍성했던 잎들은 지고 줄기만이 남아있었다. 거칠고 메말랐지만 단단한 껍질이었다. 앙상한 가지가 눈의 무게를 견디고 있었고, 밑동은 겨울의 한기를 버티고 있었다. 눈은 세상의 소리뿐만 아니라 색까지 흡수했다. 눈밭의 나무는 다만 검은 수직선으로 존재했다. 그 고독한 모습이 할퀴어진 겨울의 상처 같았다.


 그 때의 여행으로 나는 겨울이란 계절을 마침내 알게 되었다. 하얀 바탕에 신중하게 새겨진 검은 선. 없음으로 채워진 풍경. 불필요한 것들은 모두 떨어져나가고 반드시 있어야 할 것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시기. 혹한의 시간을 통과하기 위해 모든 생명은 가장 단촐하게 존재했다. 최소한의 것들만 남겨둔 채로 나머지는 버린다. 비워내는 법을 배우게 된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내게 겨울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겨울을 가장 좋아한다. 이 계절이 주는 깨달음 때문이다. 단순하고 고요하게 존재하기. 최소의 것만 지닌 단정한 모습. 나는 겨울의 풍경을 닮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 풍경처럼 살아가고 싶다. 인내하는 마음 가장 안쪽에는 봄을 그리면서.       




* 이 글은 2015년도 겨울, <싱클레어> 54호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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