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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Oct 30. 2017

누구도 무고하진 않다 (1)

미드 <루머의 루머의 루머>와 책임의 문제

*이 글을 쓰면서 미드 <루머의 루머의 루머>의 스포일러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아직 드라마를 보시지 않은 분들은 제 글에서 '생각할 거리'만 안고 가셨으면 해요. 



 평범한 여자 고교생이 자살했다. 아이의 사물함에는 친구들이 놓은 꽃다발과 편지로 가득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뚜렷한 이유는 없어 보였다. 아이들 입에 오르는 말들은 추측뿐이었다. 자살이 갖는 압도적인 충격 때문에 아이들에겐 그 너머의 이유가 크게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날, 특정 아이들 현관문 앞에 소포가 놓인다. 그 안에는 7개의 녹음테이프가 들어있다. 테이프를 카세트에 넣고 재생 버튼을 누르자 자살한 여고생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녀는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말한다. 정확하게는 그녀가 자살에 이르게 된 이야기를. 


  <13 reasons why>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동명의 이 드라마는, 우리나라에서는 <루머의 루머의 루머>로 번역되었다. 자살한 여자 주인공은 해나 베이커(Hannah Bakers). 그리고 그녀의 테이프를 받아 든 남자 주인공 클레이 잰슨(Clay Jensen). 드라마는 클레이가 차례로 듣는 해나의 테이프에 따라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보여준다. 7개의 테이프 양면에 녹음된 헤나의 진실은 총 13가지. 순차적으로 발생한 이 13가지 사건을 헤나는 자신이 자살을 하게 된 이유라고 꼽는다. 



12명의 주요 인물. 가장 첫번째가 해나 베이커, 그 옆에 클레이 잰슨. 가려진 진실처럼 아이들의 얼굴을 덮은 포스트잇에는 각 인물들의 핵심적인 메시지가 적혀있다.


안녕, 난 해나야. 해나 베이커. 내 인생 얘기를 들려줄게, 편하게 있어. 정확히 말하자면 내 인생이 끝난 이유지. 만약 이 테이프를 듣고 있다면 너도 이유 중 하나야.





 헤나에게 13가지 이유는 곧 사람이다. 해나는 12명의 주변인들이 자신에게 한 행동들에 상처를 받았다. 그 중 어떤 것들은 그것만으로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게 할만한 사건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해나에게는 이전의 상처가 제대로 아물기도 전에 다음 사건이 들이닥쳤고 그녀의 가장 치명적인 상처는 ‘배신’이었다. 12명의 사람들은 처음부터 적이 아니었다. 친구였거나, 먼저 호감을 보이던 사람이었거나, 믿어도 된다고 기대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등을 돌리고 자신이 희생양이 되는 일이 반복되자, 그녀는 사람과 관계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 불안한 정서 상태의 그녀가 점점 더 최악의 상황에 휘말리게 됐던 건 당연한 일이다.








클레이 젠슨, 우리를 비춰보게 하기 위한 거울



 클레이 젠슨은 해나에게 자살의 이유로 지목된 이들 중 거의 마지막에 테이프를 듣는다. 다른 이들보다 진실에한참 뒤처져있다. 또한 그는 그녀의 진실에 가장 분노하고 슬퍼한다. 자신이 해나를 죽게 한 사람 중 하나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 한다. 테이프를 듣는 와중에도 자신과 관계된 진실에 가까워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는 자신이 해나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해나에 의해 자신의 잘못이 선언되고 나면, 그는 영원히 죄책감에서 도망치지 못할걸 알았다.       


 그는 실제로 해나에게 직접적인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다. 그랬던 유일한 사람이다. 해나가 말한 진실 속에서 그를 원망하는 것이라곤 그가 가진 소심함과 아둔함. 이미 많은 상처를 겪은 해나가 그에게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을 때, 클레이는 그녀에게서 뒷걸음질 쳤었다. 그는 해나를 좋아하고 아꼈지만 동시에 미숙했다. 결과적으로 혼자 남겨진 해나는 위험에 처하게 됐고, 클레이는 허우적거리는 해나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클레이는 자신에 관한 테이프를 들으며 해나를 결국 죽게 한 자신을 자책한다. 


 전개 중심에 클레이 젠슨을 둔 설정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그는 엄정한 수사관도 아니고 비겁한 가해자도 아니다. 그는 단순히 해나의 증언을 듣는데 그치지 않고 과거의 매순간 해나가되어 그녀가 어떻게 느꼈을 지를 가늠해본다. 또한 클레이는 진실을 알아내려는 열망과 동시에 진실의 민낯을 두려워하는 모순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를 통해 공감의 자세와 정직한 양심의 작동을 본다. 그리고 진실과 정의를 위해 대범해지고 강인해지는 소심한 청년의 변화를 응원하게 된다. 클레이는 평범한 이가 비범해지는데 필요한 마음과 용기를 각인시킨다. 










 그러나 나머지 11명의 친구들이 모두 클레이와 같은 건 아니다. (해나가 지목한 12명의 사람 중 친구들이 아닌 나머지 1명의 존재는 마지막에 밝혀진다.) 그들은 해나의 테이프에 녹음된 진실은 그녀의 진실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그들에게 해나는 지나친 피해의식에 빠져 있을 뿐이다. 그들은 해나의 왜곡된 시각 때문에 전체의 진실에서 일부분만 진술되었다고 항변한다. 그들은 그들에게 있어 ‘불완전한’ 진실이 알려지는 걸 불안해했다. 자신들의 이기적인 모습이 공개되는 것도 두려웠다. 그들은 테이프의 존재를 들키지 않기 위해, 진실이 새어나가는 걸 막기 위해, 그들끼리 뭉치기 시작한다.


 한편, 아무런 단서도 남기지 않은 딸의 죽음이 학교생활과 연관됐을 거라 직감한 해나의 부모는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이제 해나의 진실은 친구들간에 잘잘못을 탓하는 차원을 벗어났다. 소극적으로 변명하거나 적극적으로 사실을 조작 또는 은폐하려고 했던 아이들은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되면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진실해야 하는가, 마는가. 클레이는 자신의 어머니가 학교 측 변호를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밝히겠다는 결심을 한다. 클레이는 해나가 남겨둔 7번째 테이프의 마지막 면을 해나의 진실을 입증할 수 있는 마지막 조각으로 채운다. 클레이에게 대립각을 세웠던 아이들 중 몇 명에 심경의 변화가 생긴다. 무언가 변할 것이다. 완전히 희망적이지도 한없이 암울하지도 않은 변화가 예고되며 시즌 1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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