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mi Sep 12. 2017

그는 감사하다는 나의 말을 들었을까

9월 둘째주 월요일 아침

 새벽에 들리던 빗소리가 멎어있었다. 오늘 종일 비가 내릴 거라는 어제의 예보는 틀린 게 되었다. 고개를 들이밀어 창 밖을 보았다. 도로는 아주 마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맑은 햇빛이 비치기 시작했으므로 간밤의 흔적은 곧 사라질 것이다.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문자가 왔다. 배달기사가 생수 배송으로 곧 방문할 예정이라는 안내 문자였다. 토요일 아침에 주문한 생수인데 월요일 아침에 배송이 되다니. 배송기사의 업무 폰인듯 문자는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로 왔다. 나는 집에 있다는 답장을 할까 말까 망설였다. 그 고민이 끝나기도전에 끌차의 바퀴소리가 들렸다. 계단을 무겁게 오르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고, 안녕하세요, 기사가 허공에 하는 인사가 들려왔다. 현관 바로 앞에서 건네는 인사였을 텐데 아주 멀게 들렸다. 나는 아침부터 방충망을 쳐놓고 현관문을 열어놓았던 터였다. 여기가 201호가 맞나요? 그는 현관 가까이로 몸을 기울이며 물었지만 그 말조차 먼 곳에서 오는 말인 것 같았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나갔다. 네, 거기 앞에 놓아주시면 되요. 기사가 등에 지고 있던 생수 9병 묶음을 문 앞에 내려놓았다.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자 아직 더 있어요, 했다. 기사는 두 번 더 계단을 오르며 또 다른 9병 묶음과 6병 묶음을 모두 가져다 주었다. 다 됐습니다, 하고 서둘러 떠나는 기사의 등에 대고 감사합니다, 나는 외쳐야 했다. 끌차 소리가 빠르게 들렸다가 사라졌다. 그는 또 어딘가에 배송 안내문자를 보낸 뒤 답장을 받기도 전에 방문할 것이고, 빈 집에 인사를 하고 문을 두드리기도 할 거다.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기회란 얼마나 될까. 쫓기듯 떠나는 그에게. 


생수 3묶음이 현관 옆에 불안하게 쌓여있었다. 가까이 가니 짐승의 젖은 털에서 나는 누린내가 풍겼다. 생수 묶음에는 아직 물기가 있었다. 날이 개고 해가 뜨기 전부터 이들은 서둘렀을 것이다. 눈물이 핑 돌았다. 왜 기사의 목소리는 아득하게 들렸던 걸까. 타인의 삶의 고단함을 나는 겨우 짐작 정도밖에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중한 사람과 함께 걷는 기쁨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