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mi Sep 07. 2017

소중한 사람과 함께 걷는 기쁨 (3)

산책 예찬론

 걷는 행위가 정신적인 침전을 이루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지나치게 많은 생각들이 우리를 혼탁하고 번잡하게 한다. 걷기 시작하면 밀도가 낮은 생각들은 천천히 가라앉는다. 그리고 산책의 어느 쯤에선가는 정말 중요한 고민만 남겨지고, 우리는 그것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음이 어지럽거나 머리가 복잡할 때 나는 시계를 차지 않고 핸드폰도 끈 채 걷는다. 문제가 해결되진 않더라도 내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그 산책 끝에 언제나 내려졌다. 생각에 빠져 정처 없이 걷다가 엉뚱한 장소에 도착한 나를 발견할 때도 많았다. 그러나 삶의 갈피를 잡은 대가 치고는 값싼 편이었다. 


 걷는 유익함을 알기 때문에 나는 누군가와 걷는 시간도 좋아한다. 걸으면서 나누는 대화를 신뢰한다. 산책의 길 위에서 말해지는 말들은 가볍지도, 지나치게 엄숙하지도 않다. 우리의 걸음걸이를 닮아 담백하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지 않는 대신 상대방과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하는 대화에서는 현혹시키는 말보다 자신에게 더 정직한 말들이 골라지는 것 같다. 불필요한 찌꺼기는 침전되고 말갛게 떠오른 진심의 말들만. 


 그래서 나는 자꾸 그와 걷고만 싶어 지는 것이다. 나란히 걸으면서 우리는 같은 곳을 바라본다. 보폭을 맞추고 걷는 속도도 맞춘다. 그러다 보면 호흡도 비슷해진다. 맑게 걸러지는 두 마음이 진솔하고 깨끗한 말을 주고 받는다. 그렇게 꺼내진 내 마음도, 들려오는 그의 마음도 아름답지 않은 건 없다. 우리는 참으로 많이 걸었다. 다양한 길을 다양한 시간대에 걸쳐 언제나 다른 모습으로 걸었었다. 그 길 위에서 나눈 대화의 일부는 강렬하게 남아 있지만, 그 외 나머지는 모두 흩어졌다. 대부분이 길 위에서 사라져 다신 곱씹지 못할 말들이 되었다. 다만 우리가 함께 한 발 한 발을 내딛고, 그 걸음이 쌓여가는 느낌만은 선명하게 기억된다. 소박해서 더 성스러운, 동행同行의 기운 같은 것. 아마 그 느낌에는 기억되지 않은 수많은 말들의 무덤도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중한 사람과 함께 걷는 기쁨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