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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Sep 07. 2017

소중한 사람과 함께 걷는 기쁨 (2)

산책 예찬론

 나는 걷는 걸 좋아한다. 좋아서 많이 걷게 됐다기 보단, 걷는 게 습관이 된 후에 좋아하고 있다고 깨닫게 된 것 같지만. 폭염과 한파에도 무관하게 나는 지하철 세네 정거장 정도의 거리는 걸어가는 편을 택한다. 걷는 일은 나에게 효율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없는 몇 가지 중 하나이다. 소요시간, 비용 같은 기준에서 선택하는 여러 후보 중 하나가 아니라 독보적인 우선순위인 것이다. 기회만 되면 나는 걷는다.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걷고 말고.


 일상에서 걷는 일은 두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걸을 수 밖에 없어 걷는 일, 또 하나는 걷기 위해 걷는 일. 첫번째 유형의 걸음이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역까지 걷고, 출구에서 나와 회사까지 걸어간다. 계단을 오르고 복도를 지나다니며, 마트 안을 걸으며 쇼핑을 한다. 걷는 것 말고는 달리 대안이 없기에 걸음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이동’인 것이다. 보통 이러한 이동에는 도착 예상 시간, 남은 거리 같은 조건들을 유념하게 된다.


 반면, 목적을 걷는 그 자체에 두는 걸음을 걷는 건 드물다. ‘이동’이 아닌 ‘산책’이 걷기 위해 걷는 일일 것이다. 산책은 도착지에 대한 목적의식이 느슨하고 때론 그 설정마저 애매할 때가 있다. 말 그대로 무작정 걷는 것이다. 그러면 평소에 이동할 때처럼 다른 조건들을 상기해야 할 필요가 없다. 쫓기는 것이 없으므로 날 재촉할 필요도 없다. 내가 내키는 곳으로, 나의 속도로 걷는 일. 조금만 걸어도 온 몸에 생기가 도는 걸 느낀다. 주변 풍경을 바라보는 와중에도 이런 저런 생각들이 떠오르고 가라앉기를 반복하는데, 걷는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생각에 골똘히 빠지는 경우도 더러 있다. 





▲ 철학자의 길에서 내려다보이는 하이델베르크 구시가의 전경. 산책로 중간에는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벤치도 더러 놓여 있다. 




 독일의 하이델베르크는 철학자의 길을 걷기 위해 갔다. 전쟁의 폐해 없이 보존된 구시가는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낮고 작은 붉은 지붕이 모인 도시의 전경은 소박하고 평화롭다. 철학자의 길을 한참 오르다 보면 초록 덤불 사이로 구시가가 내려다보인다. 굳이 철학자의 길을 걸을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구시가 전경 말고는 볼게 없는 산책로이고 고성에 올라서도 똑같이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성은 케이블카를 타고 손쉽게 오를 수 있으니 굳이 철학자의 길을 힘들게 오를 필요가 없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산책로는 아무리 빈약하거나 험준할 지라도 길 자체의 가치가 훼손되진 않는다. 길의 목적이 ‘이동’이 아니라 ‘산책’에 있기 때문이다. 산책로를 풍족하게 만드는 건 주변의 볼거리가 아니라 걷는 이의 생각의 깊이다. 똑같은 산책로를 걸으면서 사람들은 각자 다른 사유의 세계를 걷는다. 그러니 하나의 산책로는 동시에 그 길을 걸은 모든 사람들의 수만큼 다르게 존재하는 셈이다. 구시가 강 건너편, 야트마한 언덕길이 철학자의 길이란 이름을 얻을 수 있던 까닭도, 그 길 위를 걸으며 철학가들이 펼쳐나가고 다듬었던 무수한 사유와 사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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