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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Sep 07. 2017

소중한 사람과 함께 걷는 기쁨 (1)

산책 예찬론

 손을 잡고 걸으면 걸음은 눈에 띄게 경쾌해진다. 목소리는 한 옥타브 올라가고 콧노래를 흥얼거리기까지 한다. 어디라도 좋았다. 호젓한 숲길이나 탁 트인 강변이면 더는 바랄 게 없었고, 하다못해 후미진 뒷골목이나 차와 사람이 붐비는 번화가라도 충분했다. 걸을 수만 있다면. 걸을 때면 나는 어김없이 밝아지고 말았다. 그는 신이 나서 걷는 내게 여러 차례 물은 적 있다. 



“걷는게 그렇게 좋아?”          

                       


 그는 걷는 일이 드물었다. 차를 운전하거나 택시를 잡는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가 걷는 걸 특별히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걷는 것이 누군가에게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우리의 간극은 그가 나를 다루는 법에 능숙해지면서 조금씩 좁혀졌다. 내가 화가 나 있거나 침울해 있을 때. 또는 우리 사이에 이상한 침묵이나 긴장이 감돌 때면 그는 달래듯 물었다. 



“우리 조금 걸을까?”



 그럼 나는 아무리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어도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는 적당한 간격을 두고 나란히 걷기 시작한다. 걸으면 그는 신중해지는 편이었고 나는 느슨해지는 쪽이었다. 그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나를 다그치는 걸 그만둔다면, 나는 시종일관 고수하던 차가움을 버리고 슬쩍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는 그의 옆얼굴을 몰래 바라보게 되는 것이었다. 일단 걷기 시작하면 굳었던 마음이 풀어지고, 그 틈 사이로 진솔한 말이 흘러나온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우리는 잠시간 우리를 서먹하고 어색하게 했던 장막에서 해제되곤 했다. 우리의 산책이 흉하고 슬프게 끝난 적은 한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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