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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Jan 02. 2018

나이에 대하여

새해를 앞두고 +1이 두려운 이들과 함께

 나는 아직도 나이를 헷갈립니다. 질문을 받으면 서른인지 서른 한 살인지 되새김해봅니다. 만약 자신의 나이가 혼동된다면 많은쪽이 진짜겠지요. 나도 그렇습니다. 서른 한살이 정말 한국 나이이고, 굳이 만으로 따져야 서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달 뒤면 나이 한 살이 더 추가되는 12월인데도 오늘도 나는 나이를 묻는 질문에 몇 초간 진짜 나이를 되새겨본후 대답을 했습니다. 


 서른이었던 지난 해에는 나이를 헷갈리지 않았습니다. 스물 아홉과 서른 사이에 놓인 벽은 어느 나잇대의 것보다 훨씬 높고 묵직했기 때문에 나는 그 벽을 넘어왔단 사실을 깜빡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너무 분명하게 서른이 되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답할 때마다 서글퍼졌지요. 서른의 1월도, 8월도, 12월도 난 언제나 서른이 ‘되었다’고 말했던 것 같습니다. 서른입니다, 라고는 좀처럼 말해지지 않았어요. 익숙해지지 않았거든요, 서른이란 나이가.  


 하지만 갓 서른의 옷도 일년 간 입고 있으니 결국은 적응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제 그 서른 이후의 햇수가 대수롭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스물아홉과 서른 사이의 1년이 아쉽고 슬프게 느껴졌다면 서른과 서른하나 사이의 1년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덧셈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나는 그 셈에 심드렁했기 때문에 나이를 정확하게 기억해 대답하는 일에도 게을러진 것 같습니다. 한 살이라도 어리게 착각하고 싶은 욕심이 기저에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언제부터인가 생일케이크에서 나이를 의미하는 초는 생략.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나이를 말하는 당신들의 방식이요. 연세 대신 출생연도와 띠를 말씀하기 때문이죠. 계산이 필요한 형태로 대답을 하는 까닭을 알 수 없었지요. 그러나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나이에 더해지는 숫자가 더 이상 의미심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는 한 해 한 해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닙니다. 숨가쁘게, 치열하게 살아온 당신들의 인생에서 나이는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었을 테고, 매년 한 살씩 나이를 세는 행위도 무의미하게 느껴졌을 것 입니다. 결국 그들이 기억해서 바로 내밀 수 있는 것은 고정불변의 시작점이겠지요.   


 사람이 느끼는 세월의 체감속도는 나이와 비례한다고들 합니다. 일반화하기는 힘들겠지만 나이가 들면서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가 무거워지기 때문이 아닐까요. 나이는 어쩌면 개인이 져야 하는 책임감의 척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눈 앞에 당장 시급한 일들을 쫓기듯 해치우다 보면, 하루가 가고 주가 되풀이 되고 월이 바뀌는 흐름을 제때 읽을 수 없습니다. 시간을 의식하는 것보다 과업을 달성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니 말입니다. 


 신년의 카운트다운이나 돌아오는 생일, 설날의 떡국 같은 것에 무뎌진 어른들을 보며, 나이로 투덜거리는 나는 한참 멀었다고 느낍니다. 여전히 사회가 규정한 나이별 발달과업에서 자유롭지 못하지요. 조급해하고 눈치를 보고 때로는 박탈감에, 때로는 자기 비하에 빠지기도합니다. 언젠가 느슨해질 굴레에 괴롭힘 당하는 것을 자처하고 있는 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결국 나에게도 남는 것은 분명한 시작점이겠지요. 삶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긴 호흡이라는 것을, 새해에도 명심하며 살아가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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