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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Jan 04. 2018

우리의 비슷한 열망이 만든 같은 꿈  

기묘하고 환상적인 동화,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온전히 느끼고 싶다면 영화 감상 후 읽어주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눈 내린 숲을 사슴 두 마리가 거닙니다. 아직 채 얼지 않은 순결한눈이 밟히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들의 걸음만큼이나 신중하고 겸손한 모양의 소리입니다. 사슴과 사슴 사이에는 대화 대신 호흡이 어긋나게 교차합니다. 숨이찼는지 혹은 추위를 삼키느라 애쓰고 있는지, 들숨은 급하고 날숨은 뜨겁습니다. 정물화 같은 풍경 안에서 짐승의 끈적하고 거친 호흡만이 생명력을 띠고 있습니다. 


고백하건대 나는 이 첫 장면만으로 영화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본 날은 오랜 한파 뒤 운 좋게 날이 풀린 오후였고 나는 막 녹기 시작한 눈 위를 밟으며 영화관에 도착했지요. 추위를 끔찍하게 싫어하지만 내가 꿈꾸던 겨울은 바로 저것이라고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나는 눈 덮인 풍경의 고요와 평화를 사랑했고 그럼에도 얼마간의 눈으로 꺾이지 않는 생명의 끈질김을 사랑했으니까요. 나는 겨울의 이상을 보게 된 것만 같아 이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풀어놓든 간에 사랑하겠노라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곧 눈을 감아야 했습니다. 풍경이 지나고 곧바로 이어진 현실은 생생하게 끔찍했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공간은 도축공장입니다. 소의 축축한 몸은 순식간에 생명이 끊기고 갈고리에 걸려집니다. 아직 눈망울에 서리던 두려움이 사라지기도 전에 몸체는 부위별로 절단됩니다. 도축장 바닥에는 피가 낭자하고 인부는 내장을 긁어내고 채 썰리지 않은 살점을 칼로 도려냅니다. 그곳엔 각자의 업무를 수행하는 기계적인 움직임만 있을 뿐, 생명도 연민도 성찰도 없습니다. 


 핏빛 현실의 남자 주인공은 도축공장의 재무이사입니다. 이혼 후 혼자 살며 거무튀튀한 수염을 잘 깎지 않는 그는 오른팔이 불구입니다. 그는 축 늘어져 무력하게 덜렁거리는 팔을 앉을 때나 걸을 때 단속하듯 몸 쪽으로 잡아 끕니다. 여자 주인공은 공장에 새로 온 파견직원으로 고기의 등급을 매깁니다. 그녀가 융통성과 사교성이 없는 까닭은 공감능력과 교감능력이 애초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그녀만의 벽을 단단히 쌓은 채 공장에서 고립을 자처합니다. 남자는 그녀를 눈 여겨 보며 가까워지려 애써보지만 그녀는 서늘하고 짧은 대답으로만 응수 할 뿐입니다. 










 공통점은커녕 상극처럼 느껴지는 두 사람이 이어지게 되는 계기는 바로 꿈입니다. 공장에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하면서 범인을 찾기 위해 직원들은 심리검사를 받게 되는데, 지난밤 꿈에 대한 물음에 두 사람은 똑 같은 꿈을 이야기합니다. 믿기 어렵지만 그들은 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꿈 속에서 그는 숫사슴의 몸으로, 그녀는 암사슴의 몸으로 설원의 호수에서 함께 물을 마셨지요.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도 신기한 같은 꿈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그들은 매일 밤 설원의 어디쯤에서 만납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간밤의 꿈 속에서 만난 서로를 확인하지요. 그들은 점차 운명 같은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꿈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지만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여기는 것이 오래된 정석입니다. 남자는 노쇠하고 고장 난 육체를, 여자는 탄력 있고 순결무구한 육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판이하게 다른 껍데기 속에, 그들은 순수한 평화를 염원하는 비슷한 영혼을 지니고 있습니다. 핏빛 현실에 좌절한 그들은 정처 없이 헤매다 결국 꿈 속 먼 설원의 안쪽까지 들어왔고 조그마한 호수 앞에서 서로를 알아보게 된 거지요. 원제인 “On Body and Soul” 이러한 대립을 직설적으로 드러내줍니다. 육체와 영혼이란 개념 말고도 영화는 다른 두 요소를 양극에서 교차시키며 보여주는 방식을 즐겨 씁니다. 남자의 지저분한 습관과 여자의 결벽증, 어두컴컴한 그의 집과 늘 조명이 환한 여자의 집. 꿈 속의 설원과 공장의 피바다 등.


 이미 사람과 세월에 노련해지고 어느정돈 해져버린 남자에 비해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어본 적 없는 여자에겐 사랑을 위해선 넘어야 하는 장벽이 너무나 높았습니다. 그녀는 타인의 접촉을 받아들이기 위해 촉감 연습을 해야 했고, 육체적인 사랑을 이해하기 하기 위해 포르노를 돌려봐야 했습니다. 애착을 알아가기 위해 애완동물 대신 인형을 샀고,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기 위해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구해 듣습니다. 그녀에게있어서는 인생을 건 노력이었을 텐데, 이마저도 그와의 사랑에 보탬이 되지 않자 그녀는 극단적인 결말을 감행하고 말지요. 


 우여곡절 끝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그들은 꿈 속에서의 영혼의 만남을 넘어 육체적인 결합에 성공합니다. 이튿날 함께 일어난 남자와 여자는 아침 식사를 차린 식탁에 마주 앉습니다. 눈부시게 빛나는 햇살이 그들 위로 쏟아지고 그들 사이에는 자연스러운 웃음이 이어집니다. 순간, 그들은 서로가 어젯밤 꿈을 꾸지않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안심했던 것일까요, 당황했던것 일까요. 오묘한 미소를 짓는 두 사람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그들은 다신 같은 꿈 안에서 만날 수 없을 지 모릅니다. 혹은 더 깊은 숲 안쪽으로 도망칠 지도 모릅니다. 숲 속에서 먹이를 찾는 것보다, 현실에서의 여정은 더욱 험난할 것임을 감독이 굳이 상기시켜주지 않아도 우리는 압니다. 하지만 그들의 용기는 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       







 공감과 교감이 가능한 일반적인 사람도 타인의 내면을 정확히 짚어내긴 어렵습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은 가장 힘든 일일 지 모릅니다. 그러니 영혼을 알아차리는 일은 얼마나 낭만적이고 또 얼마나 비현실적인 것일까요. 무의식의 세계에서 만난 서로를 현실에서 알아 본 그들의 확률은 불가능의 불가능의 불가능을 곱한 결과물입니다. 그래서 나는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가 기묘하면서도 환상적인 판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로맨스라고 단순화 하기엔 영화 전체에 깔린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이 꽤나 짙거든요. 감독의 정적인 연출과 빛과 색감을 자유자재로 요리하는 기법 -몽환적이거나 절망적으로-도 이 영화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지요.  


 사실 이 영화를 본지 한달이 다 되어 갑니다. 나는 그동안 거의 매일 밤 잠들기 전, 영화의 첫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하얀 설원의 고요함과 그 안에서 펄떡이는 생을 생각했습니다. 아직 내가 영화에서 얻지 못한 중요한 사실이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었거든요. 깨달음은 정말이지 뒤늦게 왔습니다. 깨닫고나서야 나는 이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꿈은 한 사람의 가장 깊고 조용한 열망 속에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설원의 사슴이 되는 꿈을 꾸기 전까지 그들의 삶은 얼마나 폭력적이고 황폐했는지 나는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현실에서의 탈출구처럼, 고통 끝에 피어난 꿈이 그들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됐던 것은 단순히 판타지 같은 영화이어서가 아니었죠. 이미 그들 안에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열망 때문이었던 것을요. 그들이 꿈을 통해 자신의 열망을 읽어낼 수 있었던 건 우연이자 행운이지만, 현실에서 결실을 맺는데까지는 그들의 용기와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나의 열망은 무엇인가, 나는 이제 그들의 꿈 대신 나의 꿈을 태어나게 할 생각입니다. 겨우 닿은 꿈 속에서 나는 나 홀로 덩그러니 놓여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설사 외로울 지라도 그런 깊은 열망 하나를 품고 있지 않는 다는 것. 그 사실은 내 몫의 부끄러움이 될 것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핏빛의 현실을 너무 안일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건 아닌지 되돌아보려고 합니다.  꺾어버린 섬세한 촉수를 되살리고 내팽개쳤던 이상을 다시 집어 올리려 합니다. 자신의 안을 성실히 돌보지 않는 이상 꿈은 발아하지 않을 테니까요.    


나의 조용한 열망이 꿈으로 태어나는 밤을 기다려주세요. 모두가 자신만의 꿈에서 그 열망을 바라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국내 공식 포스터. 다소 철학적이었던 'On Body and Soul' 원제에서 힘을 빼고 낭만을 더한 제목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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