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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Mar 07. 2018

4. 양곤의 갤러리: 이리 투박해도 되나요?

고집스럽게, 나의 버마

저는 여행할 때 그 도시의 미술관은 꼭 방문합니다. 여의치 않다면 하다못해 작은 갤러리라도 찾아가 꼭 작품을 바라봅니다. 한 나라의 문화예술을 향유하는데 있어 미술은 제가 열렬히 사모하면서 동시에 편안함을 느끼는 장르이거든요. 하지만 버마에는 아직 내로라할 국립 미술관은 없습니다. 협회나 재단 또는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규모의 갤러리들이 있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정보를 찾아 몇 곳을 다녀왔습니다. 어렵게 도착한 갤러리에서는 작품과 작가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더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론 참 좋았습니다. 아마 제가 담은 갤러리의 풍경을 본다면 여러분도 어렴풋이 이유를 알게 될 거예요.  




The New Treasure Art Gallery

84 Thanlwin Rd, Yangon, 미얀마(버마)



직원이 불을 켜주기 전의 갤러리.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통해 3층까지의 전시공간을 볼 수 있다.
다행히 직원이 불을 켜주었다!





 제가 알려준 지번 가까이에 도착한 택시기사도 약간 불안해하는 눈치였습니다. 휑한 지역의 골목길을 굽이굽이 들어갈 수록 이런 곳에 갤러리가 있을까 싶더군요. 오픈 시간인 9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갤러리 앞에 도착했는데, 입구 앞 간이 의자에서 직원은 아직 아침잠 중이었습니다. 그녀는 제가 차문을 닫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일어났지요. 옷 매무새를 다듬는 것도 잊고 아직 잠겨있는 갤러리의 문을 서둘러 따주었습니다. 자연광이 드는 열린 공간이긴 했지만 실내 조명은 모두 꺼져있었습니다. 제가 관람하는 동선을 따라 직원은 한발 늦게 조명을 키며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지요. 1층 입구에 철제 집을 가진 커다란 개는 직원(아마도 엄마)이 잠깐 벗어놓은 샌달 한 짝을 물어 잘근잘근 씹고 말았고, 그녀는 조금이라도 온전한 상태로 신을 되찾기 위해 개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신이 난 개는 갤러리 안을 질주하기 시작했지요. 그녀는 호흡이 가빠 달리기를 멈추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사력을 건 추격을 계속했습니다. 물론 이 광경은 제가 작품을 관람하는 공간에서 동시간에 펼쳐졌습니다. 황당한 순간의 연속이었지만 그럼에도 좋았어요. 삐뚤빼뚤 걸려진 액자들, 제목과 작가의 정보도 써있지 않는 작품들, 탈탈탈 소리를 내며 힘겹게 돌아가는 천장의 선풍기까지. 버마에서가 아니라면 찾기 힘든 특별한 갤러리였으니까요. 이곳에서는 작품을 통해 버마를 보았다기보다는, 겉멋이라곤 도무지 없는, 투박하지만 자연스러운 공간을 통해 버마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별관에서의 특별 전시. 버마의 가장 대표적인 인상들이자 가장 평범한 풍경들.
한바탕 추격전을 만든 개와 그녀가 있어야 했던 곳. 그녀의 분신이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었다.








그 외 양곤 도심의 작은 갤러리 풍경.

1: Pansodan Art Gallery, 2-3: Lokanat Art Gallery, 4-5: Horizon Art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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