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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Mar 17. 2018

<82년생 김지영>은 왜 쉽고 빨리 읽힐까

높은 가독성이 아쉬운 두 가지 이유

 이미 책을 읽은 모든 지인들이 말했습니다. 굉장히 빨리 읽을 수 있다고요. 그래서 최대 예약 대기자 수를 넘은 책을 도서관에서 빌리는 일은 포기하고 서점으로 갔습니다. 지난 해 내내 내어주지 않던 베스트셀러 자리에 여전히 놓여있더군요. 조남주 작가<82년생 김지영>. 책을 집어 서점 구석의 간이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말한 대로, 앉은 자리에서 후루룩 읽어버렸습니다. 책 겉표지에 지문이 스며들기도 전에 독서가 끝났다고 여겨질 정도였지요.  


 <82년생 김지영>에서는 30대 중반의 여성 김지영의 인생이 서술됩니다. 유아기부터 학창시절, 구직생활 끝에 취직을 하고, 결혼 후 출산과 육아에 이르기까지. 김지영의 삶은 한국 여성의 서글픈 현실을 드러내는 표본으로 평가 받았습니다. 작가는 통계 수치를 사용하고 기사나 논문을 인용하여 각주를 달아, 소설임에도 현실을 정직하게 반영했음을 시사합니다. 여성들의 공감은 뜨거웠습니다. 책은 50만부를 넘는 놀라운 판매량을 기록했고, 사회적으로도 성차별, 성희롱, 출산·육아, 경력단절 등의 여성 문제를 부각시켰습니다. 

  





단숨에 후루룩, <82년생 김지영>






 가장 흔한 성씨에 평범한 여자 이름, 김지영. 그녀의 인생 이야기는 제게 왜 그리 쉽게 읽혀졌던 걸까요. 그녀의 삶에 굴곡이 없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긴장을 자아내거나 몹시 충격적인 사건들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공감할 수 있는 불편함들이 계속 이어졌을 뿐입니다. 나는 사건들이 불편하게 조명된 이유를 어려움 없이 이해할 수 있고 다음 전개를 쉽게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삶과 나의 삶이 비슷한 토대 위에 유사하게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었지요. 중산층 가정의 딸로, 대학을 졸업했고 회사에 취직하고 평범한 연애들 끝에 결혼을 하게 될. 평균의 인생이라고 말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우리는 이 보편의 여정을 공유하니까요. 나와 내게 빨리 읽을 수 있다고 조언했던 지인들처럼. 그리고 대부분의 여성 독자들까지 말이죠.   


 하지만 높은 가독성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소설 가장 마지막에 드러납니다. 바로 김지영의 삶이 그녀의 이상 증상을 진단했던 정신과의사를 통해 서술되어 왔다는 사실 말입니다. 소설 전체가 적당히 거리를 두고 보여주는데 그친다는 느낌은 아마 화자의 위치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기록을 위한 무미건조한 서술은 독자의 마음을 흔드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을 테지요. 이야기에 어떤 문턱이나 수렁도 만들지 않았고 재빨리 끝을 향해 내달렸습니다. 여성에 대한 불평등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여성을 사유하는 자신의 삶의 태도는 고수하는 남자 정신과의사. 그에 의해 김지영의 증상은 과도한 스트레스에 따른 정신 이상 증상으로, 치유 불가능하다고 황급히 선언되고 말지요. 





 이 소설에서 저에게 흥미로웠던 유일한 소재는 ‘이상 증상’으로 규정되어버린 그 현상이었습니다. 김지영은 언제부턴가 때때로 다른 여성의 존재에 빙의 되어 그들의 말을 하게 됩니다. 그 현상은 독립적이고 개성있는 김지영으로서의 기회가 끝나고 여성 일반의 주형으로 녹아들었음을 상징하는 듯 느껴졌습니다. 자신의 목소리로는 항변할 수 없고 누군가의 목소리를 빌려 변호하는 정도에 머무르는 것에 씁쓸함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해설에서는 이것이 ‘여성 연대의 가능성’을 암시한다는 후한 평을 내렸지만, 소설에서 쉽게 그 희망을 읽을 수 없는 까닭은 아마도 남성의 시각과 목소리를 통해 서술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82년생 김지영>이 여전히 큰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현상은 출판계에서도, 시민사회에서도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여성의 소극적 항변조차도 남성 화자를 통해 사회에 나온다는 점, 그 화자를 내세워 남성이라는 주적을 노골적으로 설정해버린 점은 조금 아쉽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의의는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기 보다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데 있을 거예요. 우리의 일상에는 잘못된 인식이 공공연히 작용하고 불평등이 만연해있지만, 그 익숙함과 흔함 때문에 옳고 그름의 판단에 무뎌질 수 있습니다. 그러한 위험에 경각심을 일깨운 데에는 기여를 했지요. 이제 우리는 김지영이 김지영의 목소리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도록, 우리의 목소리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진짜 시작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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