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우리말 - 잠비

우리말 쓰기

by 소금


잠비


여름에 일을 쉬고 낮잠을 잘 수 있게 하는 비라는 뜻으로, 여름비를 이르는 말.



1.

갖가지의 녹색으로 세상이 물든 계절.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린다. 쥐고 있던 연회색의 샤프를 잠깐 내려놓고, 부엌으로 간다. 까치발을 들고 두 번째 선반 위에 올려진 원두 팩을 꺼낸다. 지퍼를 열자 커피 향이 한껍에 춤춘다. 괜스레 숨을 크게 들이켠다. 원두를 갈아 천천히 커피를 내리고, 다시 서재로 들어간다. 원목 의자에 앉는다. 비 오는 날은 커피 향이 더 짙다. 선풍기 바람을 탄 고소한 향기가 서재 구석구석 퍼진다. 창밖을 본다. 참 많이도 온다. 세상의 먼지가 모두 사라질 것 같다. 내리는 비를 거슬러 하늘을 올려다본다. 도무지 그치지 않을 것만 같다. 커피 한 모금, 한 모금. 잔을 모두 비울 때까지 잠비였다.


2.

하계 훈련이 시작됐다. 커다란 운동장의 빨간색 트랙을 달리고 또 달렸다. 폐가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조금만 천천히 뛰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힘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금방이라도 주저앉고 싶었다. 포기가 열의를 추월하려고 할 때 끝났다. 트랙에 아무렇게나 누워 하늘 위로 숨을 토해냈다. 그 순간이었다. 잠비가 내린 게. 뜨거운 열기가 잠비와 닿았다. 가쁘게 숨 쉬던 입에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렀다. 아무튼 해냈다.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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