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 소나무를 소개합니다.
자연에서 배우는 인생
산촌에 살다 보니 나무에 대한 애정이 갈수록 깊어진다.
어디서든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나무들이지만 저마다 홀로 서서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사람들의 삶과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도 비바람이 불면 불안하게 흔들리고 햇살이 밝으면 얼굴이 환하게 펴지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과 눈을 맞추고 마음을 나누며 살면서 생기는 즐거움도 안쓰러움도 생활의 일부처럼 느껴지니 이제는 정말 한 가족이 된 듯하다.
어딜 가서든 나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도 그들이 끼지 않으면 알맹이를 빼먹은 듯 이야기가 심심해지곤 한다.
자연에서 함께 살아가며 종종 서로에 대한 생각을 담아두거나 속마음을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놀라운 변화이기도 하다.
흘러가는 시냇물이나 내 앞으로 다가오는 새들, 나를 응시하는 나무들도 그 범주에 속한다.
그들은 그들만의 언어와 몸짓으로 나는 나만의 느낌으로 소통하다 보면 마음은 종종 날개를 단 듯 가벼워진다.
포리스터 카터가 쓴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에는 인디언들이 차츰 자연에 동화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나무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좀처럼 살아있는 나무를 베는 일은 삼갔고 영혼이 빠져나간 통나무만을 땔감으로 썼다.
할아버지는 살아가는 동안 소나무가 많은 씨앗을 퍼뜨려 인디언들을 따뜻하게 해 주고 감싸주었으니 소나무 옆에 묻혀 거름이 되겠다고한다.
그리고는 산을 오를 때마다 “산이 깨어나고 있어!”라고 말하던 그 땅에 묻힌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작은 나무’에게 편지를 남긴다.
“나는 가야 한다. 네가 나무들을 느끼듯이, 귀 기울여 듣고 있으면 우리를 느낄 수 있을 거다. 널 기다리고 있으마. 다음번에는 틀림없이 이번보다 더 나을 거야. 모든 일이 잘 될 거다.”
세상을 작별하는 것은 잠시 가벼운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소소하고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우리 집 옆에 있는 작은 언덕에 있는 나이 든 소나무를 보면 인디언들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는 낮은 언덕에 홀로 자라 그만의 세계를 이루며 살아간다.
그의 우람한 몸집에서 자유롭게 흘러나간 가지와 먼 곳까지 펼쳐진 잎들은 웅장하다.
특히 몸통 곳곳에 굳은살처럼 깊게 파인 옹이와 두꺼워진 껍질을 보면 지금까지의 삶이 그리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바람이 불었고 얼마나 큰 고비를 넘기며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인지를 생각하면 오랜 전투에서 살아 돌아온 전사처럼 느껴진다.
이미 그와 함께 지냈던 사람들이 떠나갔고 그 자리에서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고 다시 이어지는 삶을 바라보며 살고 있다.
어쩌다 내가 울적하고 마음 둘 곳이 없어 힘들어질 때 그에게 다가가 두팔을 감싸안고 있으면 거짓말처럼 속상한 기분이 스르르 풀리곤 한다.
내 마음에 쌓인 괴로움마저 떨쳐버리는 능력까지 겸비하고 있으니 그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힘이 생긴다.
내가 그의 곁에서 움직이거나 일에 열중하고 있을 때면 그는 마치 보호자가 된 것처럼 유심히 나를 지켜보곤 한다.
요즘은 아침마다 그가 있는 언덕에 올라 하루를 맞이하는 마을을 바라보기도 하고 땅에 떨군 솔잎들을 모으기도 한다.
솔잎이 탈 때 풍겨 나오는 솔향이 근사해서 레스토랑의 장작불을 지피는데 가장 훌륭한 불쏘시개가 되어 준다.
하늘을 덮고 있는 가지마다 수없이 많은 솔방울을 달고 있는데 봄이 오면 그들마저 떨구어 우리 집의 풍부한 땔감이 될 것이다.
봄이면 지루한 겨울을 털고 나선 여인들이 잔디밭에서 자리를 바꿔가며 나물을 캐고 여름이면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의 그늘이 되고 가을이면 소나무에 기대어 단풍 든 마을을 바라볼 수 있다.
소나무와 그의 자손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가 서 있는 언덕 밑에는 그가 뿌린 씨앗에서 자란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그는 어느새 많은 식솔을 거느린 가장이 되어있고 어린 자식들과 어울리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때로는 잎을 떨군 이웃 나무들에 비해 안고 있는 푸른 잎들이 몹시 무거워 보기도 하는데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면 잎들이 부딪는 소리가 비명처럼 들리고 긴 가지들이 휘청거리는 무게를 혼자 감당해야 한다.
그도 잎을 모두 떨구어버린 나무들처럼 모든 것을 훌훌 벗어버리고 싶지 않을까 하는 그런 애처로운 생각도 든다.
소나무 숲이 울창해지면서 어디선가 새들도 날아와 집을 짓기도 한다.
키 낮은 수풀 속으로 쉼 없이 드나드는 작은 새(참새, 박새)들의 날개 펼치는 소리가 파르르 파르르 들려오고 어미 소나무에는 조금 큰 새들, 까치와 산비둘기들이 가지에 걸리듯 앉곤 한다.
새들조차 그들에게 알맞는 높이를 찾아드는 것을 보면 세상을 살아나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는 듯하다.
자연의 조화라는 것은 처음부터 의도하지 않아도 서로를 향해 힘이 되어주는 관계를 일컷는 것인 듯하다.
아직은 주변에는 헐벗은 나무들이 동면 중인 겨울이지만 소나무 숲은 그들의 소리와 움직임으로 활기가 넘친다.
나는 산에서 살아가는 동안 자연과의 아름다운 관계를 꿈꾼다.
내가 비록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지만 그들은 삶의 아름다움은 물론 내가 미처 모르고 지냈던 소중한 것들을 깨우치게 해 준다.
그래서 그들 옆에서 많은 시간을 누리고 싶다.
내 곁에 진솔한 벗과도 같은 소나무가 있어 좋다.
언제나 변함없는 그의 순수함과 푸르름이 내가 흔들릴 때마다 나를 바로 일어서게 해 줄 것이다.
언젠가 나도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그를 바라보는 배경으로 한 그루의 나무로 커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