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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광 Mar 16. 2024

비어있는 시간, 채워지는 것들              

옛길에서

                              山重水複疑無路

                              柳暗花明又一村     

                                             산은 첩첩 물은 겹겹이라 길이 없는 줄 알았는데

                                             버들이 우거지고 꽃이 만발한 곳에 또 하나의 마을이 있었네

                                                                                         - 육유 (송나라 시인) ‘유산서촌’에서  

    

세상의 중심에서 멀리 벗어나있고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조차 힘겨웠던 오지, 지금도 산과 계곡으로 에워싸인 마을 주변으로 소나무와 참나무들이 숲을 이룬다. 산골짜기 곳곳에는 숯을 구웠던 가마터들이 눈에 띄고 높은 산모루에는 무너져내린 절터들이 남아있다. 깊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더 높고 더 험한 곳을 찾아다니던 수행자들도 숯을 구워 팔기 위해 지게를 지고 읍내까지 30 여리를 달리며 살아야 했던 삶도 끊임없는 고행이었다. 저마다 생존 방식은 달랐지만 깊은 골짜기에서 홀로 피었다 지는 꽃처럼 가버린 사람들을 생각하면 애틋한 마음이 앞선다.  산다는 것은 무엇이며 우리 모두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어쩌다 나도 이곳에 삶의 터를 잡고 흘러가고 있으니 인생이란 참 묘연한 것이다.  

   

백운산 형제봉이 줄기를 내린 마을 뒤편에는 옛길이 있다. 오래전 옛사람들이 걸어 다녔던 길이지만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다. 봉강 새재(鳥嶺)! 하늘을 나는 새들도 쉬어 넘는다는 가파른 언덕이며 마을의 이름도 새재(조령리)이다. 행인들의 무수한 발걸음에 닳아 반질반질했던 길은 점차 윤기를 잃었고 빈번했던 발소리마저 멎은 채 깊은 잠 속에 빠져 있다. 옛길을 바라볼 때마다 오랜 세월 청춘을 바쳐 일했던 현장에서 물러나 ‘아! 옛날이여 !’를 외치는 어느 퇴직자의 쓸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옛길은 흔히 ‘한양가는 길’이라 하기도 하고 매천 황현이 구례의 스승에게 공부하러 다녔던  ‘배움의 길’로 불리기도 한다. 종종 옛길에 마음이 끌리는 이유는 이어지는 길 마디마다 옛사람들이 흘린 땀과 고통, 만남과 이별의 회한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해 길을 나섰지만 무사히 닿을 수 있는 것인지, 그런 미래가 펼쳐질 것인지 항상 의심스럽고 불확실해 보였다. 그래서 떠남에는 큰 용기가 필요했고 그 여정은 비장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더 넓고 현대화된 길에게 역할을 고스란히 넘겨주었지만 길에 스며들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이끌어주는 역사로 되돌아 올것이다.   

   

길 초입은 경사가 가파르고 숨이 가빴지만  잠시 견뎌내면 한적한 평지가 나타나곤 했다. 길 옆으로 드문 드문 내민 고목들의 휘늘어진  가지들은 지친 사람들을 격려하는 이정표처럼 서 있었다. 산이 깊어질수록 나무들의 크기도 늠름한 자태도 여느 숲과는 달라보였고 바람은 간간이 세속에 찌든 마음까지 상쾌하게 씻어내렸다. 그런 풍경만으로도 길은 여유롭고 아름다웠다. 쑥쑥 커진 나무들은 터널을 이루었고 길은 짙은 그림자에 드리워져 있었다. 스며들 곳을 잃은 햇빛은 나뭇가지 위에서 서성거렸고 바람이 불면 종종 작은 틈 사이로 푸른 하늘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 틈새를 놓치지 않고  길위로 기둥 같은 광선이  쏟아졌고 어두웠던 길은 군데군데 눈부셨다. 하늘과 땅이 서로의 마음을 열고 사랑을 나누는 듯한 신비한 장면을 나는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길 위에는 생각보다 많은 낙엽들이 쌓여 있었다. 해마다 떨어진 잎들은 부서지며 층층이 쌓여 편안한 길을 만들었고 앞으로 발을 내딛을 때마다 융단 위를 걷는 듯 푹신하고 부드러웠다.  자연의 오랜 정성이 배어있는 길을 걷노라니 염치없이 큰 대접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있는 듯 없는 듯 결코 야단스럽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천천히  나무를 키우고 길을 만들며 큰 어른다운 연륜을 쌓아가는 자연의 존재감이 높아 보였다.

그들에게 가장 살기좋은 세상이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곳이었고 그곳에서는 어떻게 자라든 어떤 가지를 펼치든 그들의 자유이기도 했다. 숲에서는 모든 것이 그들이 뜻하는 대로 흘러갔다. 어떤 나무들은 길 한가운데에 뿌리를 내린 채 길을 가로막기도 했고 더러는 길게 쓰러져 눕기도 했다. 거대한 나무들은 곳곳에서 깊은 뿌리를 내렸고 하늘 높이 솟아있었다. 그들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흔들리는 세상을 떠받치는 기둥처럼 느껴졌고 우리의 삶이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하는 대로 거침없이 자라서 큰 기둥이 된 고목들을 대하니 꽉 막혀있던 곳이 뚫린 듯 시원하고 통쾌했다. 살아오면서 내가 하지 못했던, 인간이 할 수 없었던 일을 자연은 흔쾌히 해내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따금씩 먼 하늘에서 다가오고 멀어져 가는 새소리가 교차하고 장쾌한 폭포 소리와 속삭이듯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제서야 내가 문득 먼 곳에 와 있음을 알았다. 어디쯤일까? 낯설지만 친근했고 나를 끌어당기는 이곳이...... 옛길이 이끄는 대로 걷다 보니 실제로 옛날의 어느 지점에 온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눈앞에 전개된 풍경들은 옛날에 내가 보았던 장면처럼 생생했다. 문득 어릴 적 뒷동산 숲에서 숨바꼭질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술래가 되어 눈을 감고 나무에 기대고 있으면 친구들은 재빨리 숲속으로 몸을 감추었고 눈을 떠보면 모두가 사라지고 숲은 텅 빈 채 있었다. 나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 넓은 숲속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있었다. 멍하니 서 있는 동안 갑자기 흐르던 시간이 멈춘 듯했고 한동안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숨어있는 친구들을 찾기 위해 풀섶을 헤쳐나갈 때마다 내 앞을 가로막는 큰 소나무들과 서걱거리며 비릿하게 풍겨오던 풀 냄새까지 새롭게 다가왔다.

자연은 숨바꼭질하듯 그동안 숨겨왔던 것들을 조금씩 보여주었다. 너무 깊이 숨어서 찾을 수 없었던 것도 기억에서 사라져버렸던 것들도 어느 순간 내 앞에 나타나곤 했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살아오면서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들, 예전부터 존재했지만 잊혀졌던 것들이 “ 나, 여기 있어 !” 하며 외치듯 얼굴을 내밀기도 했다. 잊고 지냈던 다른 나를 다시 만난 듯 반가웠다.   

  

오랫동안 숲속에 머물러 있다 보니 몸도 마음도 온통 푸른색으로 물들여진 듯했다. 오늘 내 안으로 들어와 나를 흔드는 이런 기분은 나를 행복한 기분으로 이끄는 에너지가 되어줄 것이다. 자칫 보잘것없고 시시해 보이던 내 일상에 한줄기 볕이 찾아드는 듯해서 좋았다. 곰곰 생각해 보니 옛길의 역할은 이미 끝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크고 중요한 역할이 주어져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새로워지고 싶거나 조금이라도 위로받고 싶을 때 옛길을 걸으며 숲의 바다에 흠뻑 빠져보고 싶다. 자연 가까운 곳에 머물면서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고 싶다. 어쩌다 깊은 산에 갇혀 돌아갈 길을 잃어버릴지라도 크게 걱정되지 않는다. 이 언덕 저 언덕 오르내리며 허우적거리다 보면 기대하지 않았던 또 다른 옛날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즐거운 예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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