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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광 Mar 02. 2024

아픈 손가락

손가락이 아팠다. 어느 날 갑자기 왼손 중지가 퉁퉁 부어오르고 견디기 어려울 만큼 심하게 아팠다. 평소 병원 가기를  꺼리는 나였지만 계속되는 통증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통증의 원인은 오래전에 손톱 밑에 생긴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 못하고 곪았기 때문이었다. 상처를 살피던 의사는 당장 입원해서 수술해야 한다며 부랴부랴 일정을 잡았다. ‘손가락 하나쯤이야....’ 가볍고 대수롭지 않은 일로 생각했던 나는 의외의 상황에 얼떨떨했다. “그것 봐, 진즉 병원에 왔어야지.... “ 집사람은 쓸데없는 고집으로 병을 키웠다고 나를 나무랐지만 나는 손가락에 생긴 상처는 곧 치료될 것이라 믿으며 내 안에서 간간이 솟아나는 걱정을 누르곤 했다.   

   

작은 손가락 수술에 이르는 과정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요란스러웠다. 수술 전날부터 투약은 물론 시시때때로 체온과 혈압, 소변 검사 등 많은 확인 절차를 필요로 했다. 잠시 바람이라도 쐴 요량으로 병실 밖을 걸을 때마다 수액 봉지가 주렁주렁한 밀대에 의지해야 했고 엘리베이터나 복도에서 지나치는 사람들의 어색한 시선도 받아야 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중병을 앓는 환자가 된 기분이었다. 작고 사소한 일에 왜 그리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 상처가 생각보다 심각한 것이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수술실에 들어서자 간호사는 내게 구겨진 푸른 가운을 입히고 나를 수술대 위에 눕혔다. 그리고는 두꺼운 천으로 두 눈을 가렸다. 나는 묵직한 천에 눌린 채 천정을 향해 있었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어둠과 정적은 누르는 듯 무거웠고 수술실을 맴도는 차갑고 음산한 분위기가 서늘했다. 가끔씩 침묵을 깨듯 수술 집기들이 부딪는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어둠 속에 홀로 있자니 이상하게도 지나온 날을 심판받는 기분이 들었다. 뒤돌아보니 무엇 하나 제대로 해 놓은 것도 없었고 여태껏 쓸데없는 일에만 집착하며 살아온 것같았다. 내 자신이 몹시 바보스럽고 후회스러웠다. 그런 울적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고  어두운 구석으로 나를 몰아넣었다. 마치 꿈속의 일인듯 생각들이 혼곤하게 밀리면서 허우적거리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수술은 끝나 있었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수술은 잘 끝났다며 간호사가 나를 안심시켰다. 손가락은 두껍게 감긴 붕대에 감추어져 있었고 아무 감각도 없었다. 입원실로 돌아오니 가라앉았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를 초조하게 했던 수술실에서의 긴 기다림의 시간도 수술에 대한 걱정도 말끔하게 사라졌다. 이제 수술 부위가 아물기만 하면 달리 걱정할 일이 없어 보였다. 이제부터는 나 스스로 뭔가 새로워져야겠다는 전에 없던 다짐도 생겼다.  

    

그러나 입원실에는 예상치 못했던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인해 겪어야 하는 생활의 불편함이었다. 손가락 하나의 문제였지만 그 영향은 손 전체의 문제로 전이되었다. 다섯 손가락은 서로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까닭에 하나에 문제가 생기면 손 전체가 제대로 그 기능을 할 수 없었다. 행여 수술 부위에 물이 닿을까 세수를 하는 일도 수저를 드는 것도 링거줄을 매단 채 움직이는 것도 불편하고 번거로웠다. 무슨 일을 하든 손 하나만으로는 겨우 흉내만 낼뿐 제대로 힘을 가할 수도 없어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마음은 앞서가려 하는데 몸은 항상 굼뜨고 작은 일에도 허우적대곤 했다. 몸이 불편하니 점차 마음마저 병들어가는 듯했다. 손가락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한 손만으로는 어느 것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우리 몸에 있는 것 치고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손가락은 왜 항상 함께 있어야 하는지 아픈 후에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손을 펼치면 손가락마다 길이와 모양, 쓰임새도 제각각이지만 한데 어울려야 제대로 힘을 낼 수 있고 그들 특유의 쓸모가 생긴다는 것을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옛 어른들은 당신들의 마음에 걸리거나 신경이 쓰이는 자식을 아픈 손가락이라 했다. 하나가 아프면 가족 모두가 힘들어지고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가야 했다. 그런 만큼 손가락은  몸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오랜 객지 생활을 하다가 고향을 찾았을 때 어머니의 눈가에 그릉그릉 했던 눈물이 생각난다. 먼 곳에 혼자 사는 아들에 대한 걱정이었거나 차곡차곡 쌓여있던 그리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머니를 생각하다 보면 혹시 나도 당신에게 아픈 손가락이 아니었을까? 나로 인해 어두운 곳에 쪼그리고 앉아 어쩔 수 없는 나를, 당신의 처지를 슬퍼하지 않았을까? 나로 인해 우리 가족 모두가 힘들어하지 않았을까?   

   

손가락을 앓고 보니 그동안 내가 무심코 행하던 일도 쉽게 생각했던 일도 이전과 다르게 보였다. 사소하거나 보잘것없다고 생각되었던 일들이라도 항상 그 모습으로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며 종종 내가 보지 못하는 또 다른 가치가 숨어있다는 발견 하곤 한다. 보이는 그대로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 듯하다. 그런 새로운 깨달음이야말로 내가 진정한 어른으로 가는 길인듯 해서 한결 다행스럽고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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