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여름
먼 길을 달려온 버스는 나를 내려놓고 긴 산모퉁이를 돌아나갔다. 버스가 지나간 길위로 흙먼지들이 뿌옇게 꼬리를 물고 흩어졌다. 산에는 시간이 멎은 듯 무거운 적막감이 흘렀다. 어느날 갑자기 궤도에서 이탈해 홀로 떨어져 나온 곳, 낯설지만 매우 익숙한 풍경이 내 앞에 있었다. 나는 선 채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산 비탈 사이로 태연하게 굽어있는 작은 오솔길, 이정표처럼 서있는 소나무 한그루는 옛 모습 그대로였다. 대학을 다니던 형이 서울로 돌아간다거나 어머니가 매일 삼척 새벽시장으로 떠날 때 무던히 다녔던 길은 무성한 숲으로 변해있었다. 그들과 헤어지고 내려올 때면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 쓸쓸했고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게 느껴지곤 했다. 참 오랫만에 그때의 언덕길을 내려오면서 하나 둘씩 다가서는 옛 기억들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산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했고 장시간 여행에 짓눌렸던 가슴을 활짝 펴게 해 주었다. 수많은 산과 바다를 건너오는 바람에는 풀냄새와 바닷내음이 섞여있었다. 고향 냄새였다. 나는 연신 숨을 길게 내쉬고 들이마시는 일을 반복했다. 고향에 왔다는 안도감에 더부룩했던 속이 시원해졌고 내 안에 단단히 붙어있던 도시의 찌꺼기들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듯했다.
평지에 다다르자 산으로 반쯤 가려진 바다와 대나무 숲 사이로 우리집이 모습을 내밀었다. 내가 없는 동안에도 여전히 무탈하게 세월을 잘 버티어내고 있는 듯 보였다. 머릿속에서만 맴돌았던 고향집을 대하니 가슴 깊숙한 곳에서 뜨거움이 솟구쳤다. 떼어낼 수 없는 끈적하고 단단한 그 무엇이 나를 끌어당기는 느낌이었다.
고향 집으로 달려오기까지는 꼬박 하루가 걸렸고 집에 도착하자 나는 기절하듯 쓰러졌다. 그리고 꼬박 하루가 지나서야 잠에서 깨었다. 눈을 뜨자 이상하게도 멀리서 다가오는 듯한, 눈에 익은 광경이 나를 흔들었다. 빛바랜 천정과 손때묻은 벽장, 누나의 결혼식 사진과 학사모를 쓰고 있는 형의 사진이 걸려있는 액자들과 파리들이 앉았던 흔적들, 작은 우물 샘이 있는 뒤란으로 향하는 창호문, 손바닥만한 유리가 붙어있는 출입문, 안방과 윗방을 가르는 미닫이문, 무엇보다 밀려오고 부서지는 낮은 파도 소리, 아아! 그곳은 꿈에서도 안겨보고 싶었던 고향이었다. 그곳에 내가 있었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생생하게 옛 이야기들을 들이밀고 있었다.
툇마루에 나오니 밝은 햇살이 집으로 쏟아졌다. 집 건너편 망대봉은 아직도 건재하며 바다를 향해 있었다. 모래펄에 누웠을 때 뜨거운 햇볕을 막아주었던 중솔나무 가지들도 튼튼하고 멋들어진 가지를 펼치고 있었다. 내가 잠에서 깨기를 오래도록 바라고 있었던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게 묻고 있었다. 무슨 잠을 그렇게 오래 잤는지 객지 생활은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나의 모든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어머니가 차려준 바다 내음 가득한 밥상을 안으니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시시각각 나를 끌고 다녔던, 무엇 하나 부족하지 않은 완벽한 고향이었다. 그런 고향을 나는 너무 오래도록 떠나있었다.
바다를 향해 달려온 산맥의 줄기가 멈춘 죽변항과 홀로 섬이 되어버린 호산 해망산은 여전히 옛모습 그대로였다. 고향집 앞마당에 서서 바라보면 해안선을 따라 흩뿌리듯 떠있는 바위섬들은 반원형의 포구를 이루었고 바다는 그 안에서 작은 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두 눈으로 끝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넓고 큰 바다였지만 바람 앞에서는 몹시 보잘것없는 존재였다. 바람이 없는 날이면 바다는 순한 양이 되기도 했고 바람이 강하면 날카로운 칼퀴를 앞세운 성난 사자로 돌변하기도 했다. 그러나 낮은 바위들로 둘러싸인 포구안의 바다는 흔들리는 모습을 지우기라도 하듯 잔잔하고 평화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눈길 닿는 곳마다 알알이 맺혀있는 이야기들이 지나치는 나를 붙잡아 세우곤 했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우리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으레 넓은 돌무덕으로 나갔다. 그곳에는 우리들 키만한 바위들이 서 있거나 누워있었다. 무수한 파도에 부딪히며 둥글어진 바위들 밑으로 바닷물이 소꿉놀이하듯 찰랑거리며 들고 남을 반복했다. 우리는 바위틈에서 반쯤 물에 잠긴 바위를 끙끙거리며 뒤집곤 했는데 우리의 수고를 보상하듯 그곳에는 눈치 빠르게 달아나는 게라든지 소라, 성계, 전복들이 그들만의 세상을 이루고 있었다. 바위를 열 때마다 환호와 탄식이 번갈아 터져나왔고 그들은 점점 우리의 호기심과 투지를 자극하였다. 물이 깊은 곳은 주로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다니는 형들이 차지하는 공간이었는데 크고 귀한 것들이 많았다. 깊은 바닷속을 욕심내다가 우리는 종종 물에 빠지곤 했다. 그럴 때면 햇살의 열기가 남아있는 넓은 바위에 엎드려 젖은 몸을 말리곤 했다. 저마다 바위 하나씩 차지하고 누워 하늘을 보면 온 세상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볍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와 온몸을 감싸주는 바위의 온기에 스르르 잠이 들기도 했다. 물에서 잡아올린 것들은 산비탈에서 주워온 땔감으로 불을 피워 먹음직한 구이가 되었다. 함께 놀고 일하며 음식을 나누는 시간은 학교나 집에서의 속상하고 힘들었던 순간들을 잊게 해주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자주 돌무덕을 찾았고 바다로 나간 아버지와 밭에서 일하는 어머니의 빈자리를 메우며 훌륭한 한 끼를 해결해주곤 했다.
얼마전 다녀온 고향은 놀랄 만큼 많이 변해 있었다. 언제까지나 자연 그대로, 영원히 순수한 모습으로 남을 듯했던 포구에도 골목에도 어울리지 않는 문명이 들어와 있었다. 한옥이 양옥으로 바뀌고 바위 무덕은 사라지고 작은 포구를 가로막고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마음을 무겁게했다. 내가 오래도록 떠나있었던 고향의 아름다운 풍경들은 내의지와는 다르게 변해갔고 그것은 매번 아픈 상처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에 오면 여전히 가슴이 뜨거워지고 맥박이 힘차게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