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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2)

서울, 내가 얻은 것과 잃은 것들

by 김세광

나는 태어나 많은 시간을 서울에서 보냈다. 학교와 직장을 다니며 경험을 쌓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세상을 배우고 성장했다.

그렇지만 서울에서의 좋았던 기억보다는 힘들었던 시간이 훨씬 많았고 고향에서의 시간은 짧았지만 잊을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내 몸은 도시에서 키워졌지만 내 영혼은 고향에 머물러 있고 그곳에서 싹을 틔운 것들이 오래도록 내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AI시대, 디지털 시대로 불리는 현재에 살면서 아나로그식 감성을 고집하는 내가 구닥다리처럼 비추어질 수도 있겠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나는 여전히 즐거운 마음으로 살기를 바라며 나의 즐거운 기억들이란 오래전 고향에서 시작되고 있음이 분명하니까......


고향의 반대편에는 항상 서울이 자리하고 있었다. 즐겁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 마음이 떠나거나 돌아오는 곳도 항상 서울이거나 고향이었다. 한적함과 복잡함, 희망과 절망, 따뜻함과 차가움, 긍정과 부정 등 고향과 서울이 지닌 이미지는 근본적으로 다른 질감이었고 매번 내 가슴 속에서 격렬하게 부딪히곤 했다.


세상에 태어나 기차를 처음 본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넓은 들판을 가로지르는 기차의 사진을 보면 비좁은 산골을 떠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그 시절 기차를 본 적이 있느냐?는 물음은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핫한 게임이 무엇인지 묻는 것과 비슷한 뜻으로 통했다. 기차(1단계), 서울(2단계), 31빌딩 보기 (3단계)은 우리가 도달해야 하는 게임의 최고봉이었다. 1단계를 통과하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었고 대화 축에 낄 수도 없었다. 단 한 번도 마을을 벗어나 본 적 없었던 내가 기차를 타고 서울을 향해 간다는 것은 거의 혁명에 가까운 사건이었다. 기차가 지나는 곳마다 나타나는 풍경들은 고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새로웠다. 그런 풍경을 통해 세상은 얼마나 넓은지 나는 얼마나 좁은 곳에 살고 있었던 것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예전에 없던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프락사스! 그 순간이야말로 내가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오는 날이 아니었을까?


기차가 청량리역에 도착한 시간은 막 어둠이 시작되는 무렵이었다. 막혀있던 봇물이 터지듯 사람들로 밀리는 대합실을 누나와 함께 서둘러 빠져나왔다. 넓은 광장 앞으로 긴 좌판을 펼치듯 서울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곳에는 생전 처음 보는 희한한 것들이 마음을 바쁘게 했다. 와글와글, 부릉부릉, 웅성웅성, 사람들과 자동차 소리들이 한데 엉키면서 소란을 부채질했다.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의 불빛들은 춤을 추듯 돌아다녔고 신호기 앞에 뭉쳐있던 사람들은 저마다 뿔뿔이 흩어져 어디론가 스며드는 듯했다. 낮은 건물들 사이로 난데없이 높은 빌딩들이 훌쩍 솟아있었고 건물 벽을 덮은 무성한 간판의 글자들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 선명했다. 서울의 첫 모습은 극도로 복잡하고 소란스러웠다.

함께 걷는 누나는 앞을 잘 보라고 했지만 수시로 빌딩들에 눈이 갔다. 어떻게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갈 생각을 했는지 볼수록 서울은 신기하고 아슬아슬했다. 내가 아는 높은 곳이란 기껏해야 하늘과 떠다니는 구름, 해와 달과 별, 키 큰 나무들이 전부였다. 나는 고개를 젖혀가며 부지런히 층수를 세었다. 고향에 돌아가면 친구들에게 자랑하려면 꼭 기억해두어야 할 풍경이었다. 내 이야기를 듣고 놀라워할 아이들을 상상만 해도 신바람이 났다. 와와! 매번 감탄사를 연발하는 나를 창피하다며 누나는 손을 잡아채듯 걸었다. 버스 안에서도 나는 창밖을 보느라 여전히 분주했다.


내가 묵었던 집은 좁은 골목을 함께 쓰는 허름한 주택이었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집들은 파도를 이겨내기 위해 함께 바위에 다닥다닥 몸을 붙인 조개들 같았다. 나는 그집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아버지가 거친 바다에서 잡아 온 생선을 어머니는 시장에 내다 팔았고 그 덕분에 형은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고 작은 단칸방에서 누나의 도움을 받아 사회의 첫걸음을 걷고 있었다. 내가 서울로 올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가족들의 힘이었다. 단칸방 옆집에도 앞집에도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가난은 서울에도 만연했고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살기 위해 겪어야 하는 고난은 오히려 고향보다 더 심해 보였다. 서울은 큰 도시였지만 사람들은 스스로 좁은 공간에 갇히며 미래를 위해 현재 삶의 반쯤은 포기하듯 살고 있었다. 왜 그렇게 살아야하는지 나는 그들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처럼 힘겹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우울하게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불빛을 향해 달려드는 하루살이처럼 도시로 몰려들었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이 도시로 몰려드는데 내 생각으로는 마치 죽기 위해 몰려드는 것 같다.“ (릴케의 ‘말테의 수기’) 도시를 찾아오는 그들도 나처럼 어리석었고 그런 나조차도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위안이 되었고 그들에게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주위에는 나와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달리 뾰족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던 나는 주위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을 따르기로 했다.어쩌면 그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버스에서 선 채로 졸고 있거나 늦은 밤까지 불을 밝히는 사람들, 새벽을 깨우며 거리로 나서들 사람들까지도 속속 이해가 되었다. 새로운 것을 얻는다는 것은 소중한 다른 하나를 잊는 것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나는 철저히 서울 사람이 되었고 고향은 점차 기억에서 잊혀졌다.


서울에 없는 것들은 모두 다 고향에 있었고 고향에 있는 것들은 서울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 고향도 내가 그리운지 갇힌 채 아등바등 살고있는 나를 향해 가끔씩 다가오곤 했다. 어쩌다 찾아가 본 잔잔한 포구와 넓은 모래펄, 바다와 하늘이 접한 긴 여백은 움츠려 있는 내 가슴을 활짝 펴게 해주었다. 고향은 비록 작았지만 내겐 세상에서 가장 넓은 품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객지에서 맴돌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되어있다. 어쩌면 고향은 내게 가장 멀리 있는지도 모른다. 서울 이야기를 하는 중인데도 눈치 없이 고향이 따라온다. 고향은 매번 그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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