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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솔나무(2)

목수 아저씨

by 김세광



귓등에 헐렁한 연필과 구겨진 바지, 머리에 하얗게 내려앉은 먼지, 주변에 상관없이 일에만 골몰하는 그는 배를 만드는 목수였다. 그가 이따금씩 두들기는 망치 소리는 고요한 어촌을 울리곤 했다. 헛되이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기라도 하듯 그의 손발은 매번 민첩하게 움직였고 눈도장을 찍듯 목재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눈빛은 날카로웠다. 목수는 여느 어른들처럼 논밭을 일구거나 그물로 고기를 잡는 일과는 근본적으로 달랐고 언제나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특별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의 시간은 틈만 나면 바다에서 놀다 지치는 우리들과는 너무 다른 시간이었다.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그늘을 펼쳐주는 모래펄 구석진 곳에서 그는 여름 햇살처럼 뜨겁게 일을 했다. 일을 하다가도 가끔 바위에 걸터앉아 땀을 식히거나 긴 담배 연기를 뿜어내곤 했다. 어쩌다 물놀이하는 우리들과 눈이 마주치면 부러운 듯 손을 흔들어 보이기도 했다. 나는 놀다가도 줄곧 일에 빠져있는 그를 보면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시원하게 수영이라도 하면서 땀을 식히면 좋을텐데, 온통 일에 매달려 사는 어른들의 세상이 답답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목수라는 직업과 무엇엔가 열중하는 삶이 부럽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가끔씩 다가와 배가 만들어지는 광경을 살펴보며 그의 솜씨를 치켜세우기도 하고 그간 배를 몇 척이나 만들었는지, 돈은 얼마나 벌었는지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그는 가벼운 웃음으로 대답했다.


작은 거룻배를 만드는 목수가 사용하는 연장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긴 선을 그을 때 필요한 먹줄통이나, 톱으로 켜거나 자르고 망치로 못을 박고 대패나 정으로 깎아내고 거친 표면을 다듬는 것이 고작이었다. 연장을 사용하다가도 목재 앞에서 뭔가 문제에 직면한 듯 고개를 갸우뚱하거나 골똘히 생각하곤 했다. 아마도 머릿속에 있는 그림과 눈앞의 실물이 서로 어긋나거나 다를 때 그런 태도를 볼 수 있었다. 목수에게는 기술도 중요했지만 생각하는 시간이 더 많아 보였다. 일터 옆에 버려진 목재 더미를 보면 그에게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힘든 순간이 많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런 탓인지 그는 매사에 계획을 세우고 뜸을 들이듯 생각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일은 그의 머릿속에 그려진 설계도에 따라 착착 진행되었다. 어느날 모래펄에 펼쳐진 그의 작은 메모장에는 쉬는 시간과 하루의 일과가 끝나는 시간, 심지어는 배를 완성하는 날짜까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모래펄 위에 쌓인 목재들은 작은 배를 만들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정작 쓸만한 목재는 그리 많지 않았다. 넓적한 송판 끝에 먹줄을 고정시키고 팽팽하게 늘인 후 가야금을 튕기듯 놓아버리면 곧고 선명한 선이 생겼다. 선택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들은 선 하나로 분명하게 갈렸다. 선택된 부분은 배에 쓰여졌고 버려야 할 부분은 구석진 곳에 땔감으로 쌓였다. 한 나무에서 나고 자랐지만 목수는 냉정하고 가차없이 그들을 갈라내었다. 선택된 것들만이 제한된 배의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반듯한 선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세상의 엄중한 원칙처럼 보였다. 목수 아저씨는 선택한 부분을 다시 톱으로 자르고 대패로 다듬고 망치로 두들기곤 했다. 선택받고 다시 버려지는 엄정한 과정이 연속되면서 차츰 배는 기틀을 잡아갔다.


물속에서 놀다 보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고 가끔 추위를 느끼기도 했다. 그때마다 우리가 찾아가는 곳은 아저씨가 피워놓은 모닥불이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가에 둘러서면 추위는 금방 사라지곤 했다. 땀을 뻘뻘 흘리는 아저씨가 여름에 불을 피운 이유는 배의 한 가운데 쓰일 휘어진 송판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송판 한쪽은 바위에 고정시킨 후 다른 끝에는 큰 돌을 올려놓고 가운데 부분에 열을 가하면 송판은 천천히 휘어졌다. 가끔 송판에 불이 붙어 숯덩이가 생기곤 했지만 아저씨는 천천히 공들여가며 불을 조절했다. 우리는 불을 쬐다 말고 나무를 잡아달라거나 눌러 달라는 아저씨의 주문에 흔쾌히 응했고 그 후로는 아저씨의 부탁이 없어도 척척 알아서 해내었다. 그럴때마다 아저씨는 ” 허허! 너희도 이젠 반 목수가 다 되었구나!“하며 엄지를 치켜세우곤 했다.


아저씨의 일은 반복되었고 나는 일의 순서나 과정을 속속들이 꿰뚫을 만큼 알게 되었다. 아저씨의 일은 어디쯤 진행되며 그 다음은 무슨 일이 시작될 것이라는 것도 예측할 수 있었다. 일하는 아저씨의 모습은 멀리서도 잘 보였다. 처음에는 목수 아저씨가 공들이며 무엇을 만드는지 알 수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그 정체가 드러나곤 했다. 하찮은 나무토막으로 보였던 것들을 생각지도 못했던 멋진 작품으로 바꾸는 아저씨의 솜씨가 놀라웠다. 그것은 평범한 일상을 즐거움으로 만드는 일이기도 했다. 특별한 재주가 없었던 나는 아저씨처럼 배를 만드는 목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곤 했다.


하루빨리 완성된 배를 보고 싶었지만 나의 바램과 달리 배는 더뎠다.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음날에는 가차없이 부수거나 바꾸기도 했다. 늘 시간에 쫓기는 목수 아저씨였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여분의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나무를 깎고 망치를 두들기며 상상을 따라가듯 차근차근 형태를 잡아가는 과정마다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기에 멋진 작품이 가능했던 것 같았다. 한 달이 지나고 더위가 한풀 꺾일 때가 되어서야 배는 제법 구색을 갖춘 거룻배가 되었다. 새내기 티가 풀풀 나는 배의 맨살에는 마지막 과정인 검고 푸른 페인트가 칠해졌다. 뱃머리에는 ‘갈매기호’ 라는 이름도 새겨졌다. 첫 출항을 앞둔 배는 꽃단장을 끝낸 새색시처럼 눈부셨다.


다음날 배는 마을 사람들의 설렘을 안고 바다에 띄워졌다. 모래펄에서 오랜동안 멈추었던 시간을 되돌리기라도 하듯 배는 빠르게 물을 헤쳐나갔다. 시원하게 질주하는 배를 보는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모두가 제 일인 양 기뻐했다. 그러나 배에 탄 목수 아저씨는 그의 일이 아직 끝나지 않은 듯 움직이는 배를 살폈다. 이음새는 괜찮은지 물이 새는 곳은 없는지 균형은 잘 잡히는지...... 생각 해보면 그는 배를 만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매 과정이 시험대에 올려진 개구리처럼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런 빈틈없는 생각이 그를 목수가 되도록 이끌어 준 것이 아니었을까?

배는 멋지게 시험 항해를 마쳤고 선장은 새 그물을 준비하며 내일을 기다렸다. 배는 중솔나무 아래에 어엿하게 자리를 잡았고 사람들은 그가 처음에는 나무였다는 사실을 잊었다. 조심스럽게 바다를 나아가는 배를 보면서 넓은 바다에서 마주칠 파도와 바람을 생각했다. 배는 그들과 씨름하며 갈매기처럼 훨훨 날아갈 나갈 것이다. 마치 내가 중솔나무 아래에서 조금씩 세상을 알아가듯, 그렇게 서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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