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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솔나무(1)

선물

by 김세광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모래톱과 맞닿은 언덕에는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아름드리 줄기에서 뻗어간 탄탄한 가지들과 풍성한 잎들이 이루는 조형미는 주변 나무들의 시샘을 받을 만큼 빼어났다. 사람들은 그를 중솔 나무라고 불렀다. 아마도 승려(중)들이 쓰고 다녔던 갓처럼 생긴 나무에서 비롯되었거나 중생을 구제하는 승려(중)의 의미로 그렇게 불려졌다는 설도 있다. 풍어제를 지내거나 배가 첫 출항을 시작하는 날이면 사람들은 중솔나무 아래에서 소원을 빌었다. 태풍이 밀려올 때면 배들은 그의 몸에 치렁치렁 밧줄을 두르고 힘든 시간을 버텼다. 마을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앞장 서서 재난을 막아주고 마을의 중심을 잡아주는 그는 마을의 큰 어른이었다.

중솔나무 앞으로는 깊은 모래펄과 바다가 펼쳐졌고 그가 기댄 봉우리는 망대봉(望臺峰)으로 불리며 먼바다까지 품고 있었다. 여름방학을 맞거나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그곳으로 모였다. 여름이면 초등학생이었던 나와 친구들은 중솔나무 앞에 있는 바다에 홀연히 솟은 넓적 바위까지 헤엄치며 물놀이를 즐기곤 했다. 구석진 바위 근처에는 어리거나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들이 그들의 키만한 깊이에서 첨벙거리며 우리들의 수영을 흉내내곤 했다.

내 형이 그랬던 것처럼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 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왔을 때도 나는 변함없이 중솔나무 곁을 찾았고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다. 여름밤이면 한마을의 젊은이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거나 사라져가는 유성우를 바라보며 환호와 탄성을 보내곤 했다. 고향에는 눈앞을 가로막는 높은 건물도 혼탁한 공기도, 보이지 않는 곳에 버려지는 것들도 없었다. 어딜가든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 소리와 넓은 품을 열어주는 바다가 있었다.


비록 두 달이라는 짧은 방학이었지만 고향은 내가 한동안 도시에서 잃어버렸던 삶의 본질을 다시 찾게 해주었고 세상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고향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넓고 깨끗한 모래펄에 몸을 맡겼고 잊었던 고향의 냄새를 맡았다. 눈을 감으면 들려오는 친숙한 소리들, 나지막한 파도 소리, 자갈 구르는 소리, 첨벙거리는 아이들 소리, 큰 바위 너머로 멀어져가는 갈매기 울음 소리들...... 복잡한 문명이 부대끼는 소음이 아닌 자연이 내 어깨를 감싸주는 소리였다.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숨막히는 경쟁과 불안한 미래에 대한 걱정들이 말끔이 지워진 고향의 소리였다. 내 앞의 잔잔한 포구와 중솔나무는 언제든 걱정하지 말라며 내가슴을 쓰다듬어 주곤 했다.


모래펄에서 올려다보면 작은 언덕에 있는 우리 집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집을 둘러싼 앞마당과 넓은 대나무밭, 자두나무, 감나무가 훤히 드러났고 바쁘게 일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곤 했다. 고향에 돌아왔다는 이유만으로 여기저기 빈둥거리며 지내었던 나는 종종 어머니 보기가 민망했고 죄송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내게 걱정 말고 쉬엄쉬엄하라며 다독거려주었다. 가끔 모래펄에 펼친 돗자리에서 책을 읽다가 무심결에 집을 바라보면 어머니는 언제부터였는지 마당에 꼿꼿이 선 채로 나를 내려다보곤 했다. 화덕에서 삶은 옥수수가 익었거나 당신이 손수 땀흘리며 만든 콩엿이 굳어지면 나를 불었다. 한동안 기다려도 눈이 마주치지 않으면 나지막이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멀리서도 어머니의 숨소리와 낮은 음성까지도 들을 수 있었고 보지 않아도 어머니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언제든 나를 향해 품을 열어주고 자리를 내어준 그곳은 내 고향이었다.

중솔나무 아래는 나의 아지트였고 모든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내 아버지 때에도 내 어린 시절에도 그랬다. 나는 거대한 나무의 기품을 느끼며 그곳에서 책을 읽었고 아이들은 언제나 물놀이를 즐겼다. 재잘거리는 아이들을 바라보노라면 어린시절의 나를 보는듯 반가웠다. 가끔씩 아이들의 소리가 집중력을 흐트러지게 했지만 그들은 내가 지나온 시절의 달콤한 배경음악이 되어 주었다. 그런 소리마저 없었다면 텅 빈 마을의 고요를 홀로 감당키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중솔나무가 내려주는 그늘을 받으며 서머셑 모음의 달과 6펜스를 읽었다. 땅에 떨어진 6펜스를 줍느라 하늘에 떠있는 달을 보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삶의 비애를 이야기하는 내용이었다. 영어공부도 할 겸 심심풀이 삼아 들고나온 영문판이었고 영한사전을 찾아가며 읽은 이야기였다. 처음 생각과 달리 이야기는 나를 끌어당겼고 나는 쉽게 책 속으로 빠져들곤 했다. 책을 읽으면서도 항상 반대쪽에 존재하는 고향과 서울, 자연과 문명의 한가운데에서 어느 편에서 살아야 하는지 혼란스럽기도 했다.

고향이란 내가 살아있는 내내 주어지는 선물과 같은 곳이었다. 그런 고향이 문명의 세파에 큰 변화없이 남아 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행여 인간이 편리의 굴레에 빠지지 않았다면 더 큰 욕심을 부릴 필요도 없었고 문명의 후유증에 시달릴 일도 없었을 것이다. 조금 불편하고 조금 가난한 삶을 수긍하고 따랐더라면 자연이 주는 행복을 넘치도록 받을 수 있었을텐데........내가 아는 어떤 문명도 그 시절 고향의 자연이 내게 주었던 선물보다 더 큰 선물을 돌려주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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