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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DNA

by 김세광

추위를 핑계로 안방에서 빈둥거리자니 무료하고 따분했다. 장시간 책을 읽는 것도 TV를 보는 것도 그다지 탐탁치 않았다. 내 기분과는 상관없이 거실과 방에서 컴퓨터 자판기 소리만이 집안을 울릴 뿐이었다. 두드릴 때마다 타닥타닥 생겨나는 소리가 마치 아궁이에서 장작이 타오르는 소리처럼 신선했다. 아이들은 방에서 집사람은 거실에서 서로 경쟁하듯 글을 쓰고 있었다. 소리만으로도 그들의 빠르고 능숙한 손놀림을 느낄 수 있었다. 진지하지만 활기 넘치는 소리에 왠지 내가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듯한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들의 대열에 끼어들고 싶었다. 황급히 컴퓨터를 켜고 예전부터 쓰리라 마음먹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자판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흩어져있는 이야기를 모으고 달래는 밀당을 거치면서 겨우 하나의 글을 완성 할 수 있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 글은 저장고에 채워지고 차분히 세상 밖으로 나올 날을 기다린다. 글과 가까이하고 있는 우리 가족은 저마다 주어진 길을 가기도 하고 함께 생각을 나누기도 한다. 그것은 서로에게 자극이 되고 힘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어떤 경로로 한 가족이 되었고 같은 길을 걸어가게 되었는지 생각할수록 놀랍고 신기했다.


어부였던 나의 아버지는 본래 흥이 많았다. 비가 오거나 파도가 높은 날이면 마을 사람들과 사랑방에 모여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노래를 즐겼다. 장구를 치며 특유의 구성진 소리를 뽑아내는 아버지의 솜씨는주위의 탄성을 자아냈고 그때마다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라 사람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곤 했다.

끈덕지게 들러붙는 살림살이 걱정도 거친 바다에서의 힘든 일도 아버지는 그런 방식으로 이겨내곤 했다. 당신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양지바른 언덕에 집을 지었고 나는 그곳에서 줄곧 바다를 바라보며 자랐다. 작은 포구를 떠나거나 돌아오는 배를 보면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고 거친 바다를 떠다니는 밤배들이 등대 불빛을 보면 무사히 집으로 찾아올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아득한 수평선이나 먼 산 너머에 있을지도 모르는 세상을 향해 꿈을 꾸기도 했다.


그런 고향과 부모님의 성향 때문이었을까? 나는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항공사에 근무하면서 해외로 빈번히 돌아다녔다. 꿈을 꾸었지만 좀처럼 드러나지않는 무언가를 열심히 찾아다녔다. 자라면서 바라보았던 많은 풍경들은 내가 가는 길의 이정표가 되어주었고 삶의 폭을 넓혀주었다. 또한 깊은 감성을 물려준 부모님의 유전자(DNA)도 한몫 했음이 분명했다.


고향을 떠난 지 30년 세월이 흐른 후에서야 찾아갔던 때가 있었다. 집도 가족도 모두 떠나버렸기에 마음에서멀어져 있었던 고향은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산비탈 아래 초가집이었던 자리에 들어선 양옥, 구멍가게였던 땅의 이층 집도 포구의 콘크리트 방파제도 아련한 기억을 밀어내듯 낯설었다. 그러나 고향은 변함없이 나를 반겼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마을에 들어서면 길 양쪽으로 나란히 서 있는 집 마당에서 낯익은 얼굴들이 알 듯 모를 듯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대나무집 아들이라며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고 그들은 그제서야 달려와 반갑게 내 손을 잡았다. 더러는 옛날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훔치기도 하는 그들 을 보면 내 마음도 울컥해지곤 했다. 몸은 떠났지만 여전히 나의 뿌리는 고향에 있다는 것을 그들은 확인시켜주었다.

길가에서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친구의 아버지라 생각했던 사람이 바로 내 친구였다는 사실이었다. 앳된 모습이었던 친구가 어느덧 그의 아버지의 모습으로 변해 있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그는 얼굴뿐만 아니라 구부정하게 걷는 모양새며 느린 말투까지 그의 아버지를 쏙 빼닮아 있었다. 친구와의 만남은 반가웠지만 그의 얼굴로 무참히 지나간 시간들이 야속했다. 나도 내 아버지도 그랬을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변해가고 흘러가는 것들이 나를 쓸쓸하게 했지만 우리의 삶은 끊어지지 않고 과거에서 현재로 다시 미래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웠다.


공교롭게도 나의 집사람도 문예 창작을 전공했고 아들도 글을 쓰고 딸도 문예창작과에 다닌다. 아이들에게 글을 강요한 적이 없었지만 그들이 글을 쓴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워 보였다. 나의 DNA도 그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내가 무심코 던졌던 말도 살아가는 방식도 그들에게 스며들었을 것이다. 가장 아쉬운 것은 그들에게 특별하거나 뛰어난 재능을 전해주었으면 했는데 나는 그렇질 못했다. 지극히 평범하고 변변찮은 글솜씨였다.그럼에도 아이들은 스스로 고민하고 노력을 더해 내 앞에서 시위하듯 글을 쓰며 생각을 키워가고 있다. 글은 우리 가족의 공통 관심사가 되었고 서로의 마음을 열어주는 통로가 되었다.


내가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보면 군데군데 굽은 길도 갈래길도 있었다. 매 순간의 선택이 옳았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선택은 나의 DNA에서 시작되었다. 대대로 이어받은 DNA는 서로 다른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거나 햇살을 받으며 변화되고 진화된다. 지금도 자식들을 보면 나의 젊은 시절이 보이고 내가 감추고 있던 것들도 속속 드러난다. 설익은 감성으로 질주했던 시간들과 정제되지 못한 생각들도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잘 익어가는 중이다. 아이들을 보면 거울 앞에 서있는 나를 보는 듯하다. 내부모가 그랬듯 나의 유전자는 길고 단단한 끈으로 내 아이들에게 이어지고 우리들이 같은 곳을 향하는 것만으로도 내 삶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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