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이 유지되게 하는 것들
작년 7월, 달리기를 시작하고 가장 괴로웠던 것은 달린 후에 찾아오는 통증이었다. 허벅지, 종아리, 정강이에 붙은 근육들과 무릎, 발목 관절에 오래 머물던 욱신한 느낌들. 만성적인 족저근막염 때문에 생기는 발바닥과 뒤꿈치의 통증은 차라리 가볍게 느껴졌다. 달리기가 괴로우면 걸으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그러나 이미 시작한 달리기, 스마트밴드에 기록되는 페이스, 심박수, 칼로리 소모량을 보면 마음처럼 걸어지지 않는다. 비가 내려 달릴 수가 없는 날에는 계단을 오르거나 실내 유산소 운동이라도 했다. 그 뒤에는 다른 부위에서 근육을 후벼 파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지기도 했다.
달리기를 막 시작한 사람의 실수라고들 하는 '미련하게 달리기'. 나도 그 실수를 했다. 생각해 보면 한 달에 100킬로미터 남짓 달리는 정도인데 뭐가 무리였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40년 넘게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생존을 유지해 온 내 신체에는 과부하가 걸렸던 모양이다. 3월의 첫날, 미세먼지도 가득하던 그날에 호기롭게 야외에서 10킬로미터 달리기에 도전을 했다. 막 포장을 뜯은 새 러닝화를 신고. 평소에도 아주 가볍지는 않았지만 그날은 유난히도 몸이, 다리가 무거웠다. 추울까 두껍게 입은 옷을 뚫고 땀이 배어 나오고 얼굴에는 소금기인지 먼지인지 모를 거칠한 질감이 따갑게 느껴졌다.
9킬로미터를 막 지났을 때, 오른쪽 발바닥과 발 뒤꿈치를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그 때라도 멈췄어야 했나. 이를 악물어 통증을 버텨내며 기어이 10킬로미터를 채워냈다. 그런데 금방 풀리거나 가라앉을 것 같았던 통증은 다음날까지 계속됐다. 절뚝거리며 찾아간 병원, 엑스레이에서는 발바닥과 아킬레스건에 염증이 보였다. 지속적으로 주어진 부하와 무리함이 원인이니 당분간 쉬라는 의사의 말.
한 달 정도를 쉬었다. 부끄러웠다. 고작 이 정도 거리에 탈이 나다니, 어디 가서 달리기가 취미라는 말을 꺼낼 수도 없겠군. 근데 생각해 보면 더 일찍 탈이 나지 않은 것이 신기한 일이다. 아무 준비운동 없이 막무가내로 달리기를 시작하고 달리면서는 내 몸의 상태 관계없이 페이스를 최대한 올리고 달리기를 멈출 때는 바로 걸어버리고 끝난 후에 스트레칭은 해본 적도 없고. 언젠가 어느 부위에서든 부상이 올 수밖에 없는 정도의 운동을 해왔던 거였다.
억울했다. 그냥 운동을 한 건데, 달리기 조금 한 건데 그마저도 못하게 되다니. 남들은 나보다 더 뛰면서 아무렇지 않던데 나만 이게 무슨 꼴인가. 마침 달리기가 재밌어지고 아침에 눈뜨자마자 하는 달리기가 비로소 습관이 된 시기라 더욱 비참함을 느꼈다.
한 달 정도를 쉬었는데 정확히는 달리기만 쉬었다. 헬스장 사이클, 일립티컬이라도 해야 했다. 몸을 더 가볍게 하면 더 빠르고 오래 뛸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조급함이 다른 운동에라도 몰두하게 만들었다. 출장으로 갔던 홍콩에서도 호텔 피트니스 장에서 혼자 사이클 페달을, 일립티컬 발판을 밟았다. 달리기가 없는 새벽, 계단이라도 올라야 했다.
발바닥과 발목에 통증이 없다고 느낀 날, 아파트 헬스장 러닝머신 위에 올랐다. 불안해하며 시작 버튼을 눌렀다. 발과 발목은 아프지 않았다. 어느 정도의 속도로 뛸 수 있을까. 아니, 얼마나 뛸 수 있을까.
30분을 조금 넘게, 5킬로미터 남짓 뛰고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조금씩 몸이 쿨다운 되는 것이 느껴졌다. 여전히 통증은 없었다. 오히려 더 경쾌하게 달렸던 것 같다. 한 달의 휴식이 몸 여러 곳에 다시 뛸 에너지를 저장해 준 느낌이었다. 아니 그보다 몸 다른 곳에도 아프거나 뭉친다거나 하는 기분도 없었다. 달리기를 피하며 집중한 운동들이 도리어 달리기에 필요한 근력을 만들어 준 것 같았다.
그때부터의 달리기는 이전과 다르다. 적절한 휴식, 적당한-조금 부족하지만-웜업과 쿨다운, 스트레칭. 달리는 사이에 다른 운동으로 필요한 근력을 기른다.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오래 달리는 게 중요한 거다. 평생의 취미로 즐거움을 최대한 오래 누리기 위해서는 느리게, 오래 달리는 연습이 중요한 거였다. 그리고 달리기 하나에만 몰두하는 것보다 적절히 쉬며 다른 곳에 눈도 돌릴 줄 아는 여유가 달리기에 필요한 근력을 만드는 거였다. 그 근력은 달리기라는 습관을 오래 지탱해 준다. 건강한 습관은 삶을 한 뼘이라도 더 의미 있게 만들어 준다.
아침이 제법 선선하다. 발목을 돌리고 골반을 풀어주며 달릴 채비를 한다. 푸른빛으로 해가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