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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맞는 걸음걸이

케이던스와 발 딛기, 속도를 고민하다

by 잡념주자

3월, 발과 발목을 다치고서야 달리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반년 이상을 뛰었는데 몸이 이렇게 형편없었나, 잘못된 방법으로 몸을 괴롭히기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난생처음 '달리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케이던스라는 것에 대해 처음 알게 됐다. 스마트 밴드로 달리기를 모니터링하면 나오던 여러 가지 지표 중 가장 낯설었던 것. 1분에 두발이 땅을 치는 횟수(shoot per minute)라고 했다. 그때까지 내 1분당 발구름 횟수는 160~170 사이, 모두가 권장하는 것은 180 이상. 이게 뭐가 문제였을까.

분당 케이던스가 낮다는 것은 지표면에 발이 닿는 시간이 길다는 것이고 그럴수록 발과 발목, 무릎과 같은관절에 부하가 더 크게 주어진다는 것이었다. 최소 1분에 180번 이상 발구름이 되어야 부하를 줄일 수 있고 그래야 덜 지치고 덜 다치며 오래 뛸 수 있다는 것. 엘리트 마라토너-엘리우드 킵초게나 이봉주 같은-들은 분당 200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또 하나, 발을 디딜 때 뒤꿈치가 먼저 닿게(리어 풋 또는 힐 스트라이크 주법) 하지 말고 발 중간 부분, 그러니까 발 전체가 같이 지면에 닿게 하는 것(미드 풋 주법)도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생각해 보니 맞는 말 같았다. 나처럼 족저근막염이 있고 아킬레스건에 통증이 있는 사람이 가장 많이 아파하는 곳이 발 뒤꿈치인데 거기를 뛰면서 계속 자극한다는 게 좋을 건 없어 보였다. 차라리 발 전체로 충격을 나눠 주는 게 더 오래 뛸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그렇게 머리에서 뛰는 모습을 상상하며 통증이 없어질 때까지 한 달을 보내고, 러닝머신 위에서 또 몇 주를 보내고 목감천변으로 나섰다. 두근두근하며 발을 디뎠다. 다행히 딱딱한 노면에서도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머리에서 상상한 달리는 모습대로 뛰어보자. 한 달 동안 그려왔던 내 뛰는 모습은 킵초게가 뛰듯이 가볍고 탄력 있게 뛰는 모습이었다. 1킬로미터를 채 못 갔던 다리 아래, 옆에서 뛰던 아내가 물었다. "발이 아직 불편해?"

이게 아닌데, 상상하던 대로 뛰기 위해 발 끝에 모든 감각을 집중했다. 발을 더 빠르게 움직이고 땅에 닿을 땐 발바닥으로, 최대한 무게를 앞으로 옮기고. 500미터를 못 가서 멈춰 섰다. 아픈 적 없던 정강이와 고관절이 아프기 시작했다. 아, 이렇게 뛰면 안 아프다고 하더니. 그건 풀 코스 마라톤을 해본 사람들의 알은척이었구나.

뛰던 대로 뛰는 것도 못할 일이었다. 아파봤으니까. 할 수 있는 만큼 멀리 가야 한다, 적응해야 한다. 도저히 더 길게 뛸 수는 없었고 어느 순간 내 발은 평생을 뛰고 걸어왔던 것처럼 발 뒤꿈치를 먼저 내밀고 있었다.

나는 풀코스 마라톤은 어렵겠구나. 한 번은 뛰어보고 싶었는데. 단축이라도 나가보자. 일생을 그래온 것처럼 마음을 접었다. 그래도 미련이 남았는지 취한 밤에 핸드폰 전화번호부에서 구 여친 전화번호를 찾듯이 뛰는 방법을, 나를 교정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내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은 쉽게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느리게 뛰세요." 동영상 썸네일에 쓰여있던 말이었다. 느리게 뛰며 자신에게 맞는 속도를 찾으라고, 그러면 달라질 거라는 말이었다. 빨리 뛰며 괴로워하지 말고 느리게, 주변을 둘러보며 옆자리 누군가와 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즐겁게 뛰라고도 했다. 자신을 바꾸라는 말보다 강박 없이 그저, 느리게, 느리게.

주말 아침, 아내와 나란히 서있었다. 처음으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며 달리기 시작했다. 발 딛는 방법은 잠깐 놓고, 그냥 느리게 달리며 바뀐 계절과 풍경을 이야기했다. 아이와 같이 뛰어도 좋겠다는 바람도 이야기했다. 훨씬 가벼운 상태로 달리기를 멈췄다. 스마트워치 기록을 살폈다. 케이던스에는 180이라는 숫자가 찍혀있었다.

황영조 아저씨는 '달리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했다. '걷고 뛰는 것을 배운 적이 없는데 우리는 뛰고 있지 않나. 걷듯이 뛰어라, 그게 당신에게 맞는 달리기 방법이다.' 즐거워지는 방법을 배워서 즐거운 게 아니듯 그냥 이제까지 내 걸어온 대로, 내 속도대로 달리면 어느새 저만큼 멀리 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 못난 몸뚱이에게 위로가 된다.

새벽에 달리며 고개를 들었는데 초승달 주위로 인공위성인지 모를 밝은 별들이 네 개, 다섯 개쯤 보였다. 가을은 슬그머니 오고 있었다.


- 사족

근데 나 이제 미드 풋으로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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