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주로에서 달리기 2
여름이 지독하게도 뒤끝을 보이던 추석, 울산엘 갔다. 말하자면 나름 고향인 곳인데 그래봐야 태어난 곳도 아니고 아주 먼 선대에서부터 뿌리를 내린 곳도 아니다. 아버지 일터를 따라 터전을 옮기며 정착하게 되어버린 곳, 내가 떠나고도 다른 가족들은 여전히 머무르고 있는 곳에 다름 아니다. 내 시간만 기준으로 둔다면 태어나 가장 짧게 머무른 곳, 지금의 내 고향이다.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사귐이 좋지도 못해 친구들과 드나들던 곳이 따로 있지도 않았다. 심지어 내가 자라던 무렵-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극 초반까지의 울산에는 정말 뭐가 없었다. 공원도 없었고 박물관도, 미술관도 없었다. 구시가지 좁게 자리 잡은 번화가는 코너로 돌아가기만 하면 부모님 안부를 물으며 소지품 검사를 하던 무서운 형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대형서점도 찾기 어려웠고 지린내 나던 단관극장 몇 개가 전부라 영화를 볼 수 있는 곳도 마땅치 않을 만큼 기호나 취향을 충족시킬 장소도 없었다. 다행인 건 살던 곳 가까이 있던 공업탑 로터리에 제법 큰 음반가게가 있어 '판'구경은 그래도 넉넉히 할 수 있었다는 거다. 매 주말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한 시간을 넘게 구경하고-그나마 손에 쥘 수 있는 건 분기당 테이프 한 두 개가 전부였지만, 그래도 핑크 플로이드나 레드 제플린 같은 밴드의 음반 표지를 구경하며 소도시 '락 키드'로서 나름의 로망은 부풀릴 수 있었다. 음반가게 옆, 악기점에서 치지도 못하는 기타를 만지며 언젠가는 내 방에 걸어두리라, 생각하기도 했다. 이게 내가 기억하는 울산의 거의 전부다.
대학을 다니느라 열아홉 살에 상경한 뒤, 집으로 내려가는 건 거의 연례행사였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난 뒤 그보다는 자주 내려가기는 하지만 일 년에 두세 번도 쉽지 않은 일이다. 당연하게도 울산은 기억과 같은 모양으로 남아있는 것보다 변한 것이 훨씬 많다.
없던 공원이, 박물관이 생겼고 번화가도 더 늘어났다. 멀티플렉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영화볼 곳도 많고 시간 보낼 만한 곳도 더 많이 생겼다. 트라우마 때문에 번화가 안쪽 골목을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무서운 형들도 이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음반가게는 모두 사라졌다. 음반을 사서 듣지도 않지만 그나마 사는 것도 인터넷을 통하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다만, 음반가게 옆 악기점은 그대로 남아 여전히 기타를 걸어두고 있었다.
기억하는 것 중 가장 큰 변화를 꼽으라면 태화강으로 해야겠다. 내 기억 속, 그러니까 90년대 중반의 태화강은 수질면에서 뒤에서 수위를 다투던 곳이고 악취 때문에 주변에 사람이 거주하며 시간을 보낸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친구들끼리 쓰던 표현 중에 '태화강 똥물에 빠트려 죽일 놈'이라는 관용어구도 있었을 정도이니. 시간이 더 지나 군대를 다녀오고 복학하기 전 몇 개월 울산 집에서 지낼 시기였다. 그 무렵 태화강 주변에는 주상복합건물이 지어지고 있었다. 타워크레인으로 자재를 옮기는 광경을 보고 사람이 못 살 곳에 집을 지어 팔면 어쩌자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2015년 추석, 아이와 아내가 나보다 며칠 먼저 울산으로 내려갔던 적이 있다. 내려갈 준비를 하던 저녁, 아내와 통화를 하는데 낮에 태화강변 십리대숲을 다녀왔다고 했다. 태화강? 대숲? 냄새 안 났어? 애는 괜찮아? 아내가 보내온 사진의 태화강, 강변, 대숲은 제법 그럴듯한 모습이었다.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던 건 어린 날 강변을 달리던 버스 창으로 들어오던 강의 악취가 견디기 쉽지 않았던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이었을 거다.
올해 추석, 아내와 어디를 뛰어볼까 얘기를 나누다 문득 태화강 생각이 났다. 올해는 가봐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연휴 첫날, 새벽을 달려 울산에 도착해 아이를 부모님께 던져두고 태화강으로 향했다. 뜨겁다 못해 따가운 햇살 사이로 조용하게 강바람이 불었다. 물비린내도 없이 상쾌한 공기가 좋았다. 가볍게 걷다 말했다. 올해는, 여기다.
적당히 흐렸다. 늦잠을 잔 덕에 감당 못할 해가 나와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뛰기 적당한 날씨였다. 아내가 열심히 뛰라며 선물한 새 러닝화, 미즈노 네오비스타를 신고 끈을 꽉 묶었다. 천천히 뛰는 주변으로 우리처럼 뛰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다. 어린 시절의 풍경이 생각난다. 난 뭐가 될까, 빨리 이 시간이 지나고 어른이 되고 싶다, 어린 만큼 괴로워했던 시간, 집으로 돌아가던 버스 옆으로 천천히 흐르던 강이 생각난다. 페이스를 올려볼까, 발을 조금 더 빨리 구른다. 있는지 몰랐던 억새들이 아직 푸른 기운으로 흔들거린다. 낯선 풍경을 담느라 뇌도 바쁘게 움직이는지 평소보다 빠르게 심박이 오른다.
헐떡거리며 명촌교 어디쯤 와서 다시 발을 돌린다. 지나온 길에 낚시를 하는 두 사람이 있다. 초로의 남성과 소년이 강물에 낚시를 드리우고 앉은 풍경을 본다. 갈 길이 많이 남아 바쁜 마음이 발구름을 재촉한다. 뒤에서 불어온 강바람이 부드럽게 뒤를 밀어준다.